대안의 사회과학

[세계지성대담] ③베르나르 카생 '세계화 종점은 암울'

DemosJKlee 2007. 3. 27. 13:54
 

[세계지성대담] ③베르나르 카생 '세계화 종점은 암울'

편집시각 2000년02월03일17시44분 KST


때 : 1999년 12월17일

곳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주필실




*베르나르 카생은 1937년 생이며 <르 몽드>의 월간지 <르 몽드 디플로마틱>의 주간이고 동시에 파리 8대학 유럽연구소 교수이기도 하다. 카생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98년 6월 창설된 `시민지원을 위한 금융거래 과세실현행동'(아탁․ATTAC)의 회장직을 맡아 반세계화운동의 선두에 나서면서부터다. 그는 ꡒ금융세계화는 경제불안정과 사회불평등을 악화시킬 뿐 아니라 국민의 선택, 민주주의 제도, 일반이익의 수호자로서의 주권국가를 해체하는 것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제임스 토빈의 투기성 자본에 대한 과세론에서 영향을 받아 이 운동을 시작하였으며 이제 세계화 전반에 대해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정성배=시민지원을 위한 금융거래 과세실현행동(아탁․ATTAC)은 세계화 반대운동의 최첨단에 서서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하나의 시민운동 모델로 간주되고 있는 것 같다. 더구나 지난해 12월 초 미국 시애틀에서 세계무역기구 뉴라운드 협상을 사실상 무산시킨 데 일역을 하여 그 명성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아탁의 회장에게 먼저 질문하고 싶은 것은, 아탁의 세계화에 대한 인식, 세계화에 반대하는 이유 등이다.


카생=주지하다시피, 세계화란 레이건과 대처시대의 미국과 영국에서 시작된 탈규제정책이 유럽연합의 단일시장 창설정책 속에서 자본이동의 자유화 형태로 나타났고, 그것이 이제 전세계적으로 번진 것이다.


세계화의 본질은 금융시장의 완전 개방이며, 미국의 이익에 알맞게 꾸며져 있는데, 세계자유주의 질서의 세 가지 기본틀에 입각하고 있다. 곧, 자본이동 자유, 투자 자유, 자유무역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자본이동의 자유는 아시아․브라질․러시아 등에서 금융위기를 일으켜 그 파괴력을 온 세계에 과시한 동시에 취약성도 드러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한 자원의 최적배분 현상은 나타나지 않은 반면, 자본은 이윤창출이 가능한 10개국 정도에만 집중되었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다른 나라들로는 이동하지 않았다. 자본이동이라는 것이 매우 불안정하여 장기적 전략이 부재하고, 언제든 들어왔다 나갔다 하며 불안전 상태를 악화시키고, 직접투자는 적고 대부분이 투기성 투자다.


이러한 투자를 거부한 말레이시아에 대해 국제통화기금(IMF)은 치명적 오산이라고 하였으나 그 뒤 결과를 보면 말레이시아에 건실한 투자가 증가했고, 아무 일 없이 경제성장을 하고 있다. 두 번째 투자의 자유는 투자에 관한 다자협정(MAI)안이 프랑스 정부의 거부로 수포로 돌아갔다.


정=신자유주의 세계화론자들은 세 번째 자유무역을 그들 전략의 핵심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카생=사실 그렇다. 그것는 그들이 자유무역을 세계 재구조화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계화를 완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국가들의 개입을 막아내기 위한 하나의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평등한 세계시장을 창조한다는 것을 구실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들은 통상의 자유를 수단으로 해서 세계시스템을 다시 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시애틀에서의 세계무역기구 회의 저지운동이 우리에게 중요했던 것이다.


정=회장은 세계화는 거부하지만 국제화는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화와 국제화는 어떻게 다른가?


카생=세계화와 국제화는 다를 뿐 아니라 상호 모순된 개념이다. 국제화에서는 시민들이 국내에서 집단을 형성하여 연대하고 나아가서 외국의 집단과도 다자적 시스템 아래서 협조하고 손잡는다. 또한 정부가, 적어도 민주국가에서는, 사회와 시민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 그러나 세계화에서는 시민은 없어지고 소비자만 존재한다. 또한 세계화에서는 의사결정 중심으로부터 시민을 완전히 분리하여 시민은 단순히 결정을 적용하는 대상일 뿐이다. 이러한 세계화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저항해야 한다. 국제화는 보편화의 한 단계로서 모든 인간사회 간의 협력을 증진하는 것이다.


정=미국과 국제통화기금은 아시아 국가들에 미국식 자본주의의 시스템과 관행을 강요하고 있다. 이것이 미국 자본의 아시아 침투를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은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아시아 국가들에 중요한 것은 다시는 금융위기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미국식 자본주의를 따르는 것이 과연 금융위기를 모면하는 길이라 보는가?


카생=국제통화기금의 정책은 한국 등 아시아국가를 돕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것이 명백한 사실이라고 본다. 국제통화기금은 100% 미국의 산하기관이다. 미국은 기금의 17%밖에 부담하지 않고 있지만 모든 중요한 결정권을 독차지하고 있다. 미국이 내건 조건, 곧, 시장개방, 외국자본 도입 완전자유화 등은 명백히 한국의 이익과 무관하며, 프랑스를 포함한 주요 국가들의 은행, 다국적 기업들의 이해와는 밀접한 관계가 있음도 자명한 사실이다.


국제통화기금은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기구가 아니라 채권자를 구출하기 위하여 행동하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은 어떤 점에서는 공산주의 체제와 흡사하다. 일종의 자본사회보장제도 같은 것이다. 그 목적은 무모한 빚쟁이가 그의 행동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것이다. 소위 구제금융이라는 것은 빚쟁이에게 빚을 갚게 하기 위한 것이며, 계산서는 그 나라의 시민이 치르게 하는 시스템이다. 미국은 이러한 과정에서 공기업 민영화, 구조조정, 공공예산 지출감소 등의 조건을 붙인다.


많은 정부가 세계화를 신념, 또는 불가피한 것이라는 인식 아래서 받아들였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아시아의 문화적 특징 중 하나가 장기적 안목으로 사물을 본다는 것이다. 좀더 원대한 목표를 위해서는 5~10년 손해를 보더라도 참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무슨 방법으로든 당장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금융시스템과는 양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장개방을 함으로써, 세계화를 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특수성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세계화의 결과를 보면 파국적이다. 이것은 유엔 기구들의 보고서만 보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다. 이중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부가 늘어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빈곤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가 세계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은 다시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정=미국의 이른바 `신경제론자'들은 현 미국의 경제가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경제호황은 계속된다고 낙관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클린턴 행정부의 노동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같은 사람은 대형 불경기가 반드시 온다고 비관론을 펴고 있다. 이 논쟁을 어떻게 보는가?


카생=나는 주저하지 않고 후자 쪽을 택을 택한다. 월스트리트의 거품경기 현상은 숙명적으로 교정되기 마련일 것이다. 금융제도의 불안정성은 그 제도 자체와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금융위기로부터 안전할 수는 없다. 월스트리트에 공황이 일어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미국 소비자들의 주권에 대한 태도도 달라지며 미국의 수입 물량도 축소된다. 수입 축소는 곧 아시아 제국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내가 정부에 있는 사람이라면 세계화를 조금도 신용하지 않을 것이며, 국가 차원 또는 지역 차원의 모든 수단을 총동원할 것이다. 가령 유럽의 예를 들면 프랑스 단독으로 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 앞서 말한 `투자에 관한 다자협정'을 좌절시킨 전례가 있으며, 또 세계무역기구와 같이 만장일치제가 적용되는 분야에서 결정적인 구실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유럽연합 차원에서는 상당한 행동수단이 나올 수 있다.


또 알아야 할 것은 이제 세계 각처에서 세계화 반대세력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려면 미국 신문을 읽으면 된다. 미국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국제여론이 반세계화쪽으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여론의 반항'은 시애틀에서 구체화하였으며, 우리들에게도 매우 고무적이었다. 왜냐하면 승리는 승리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시애틀에서 나타난 시민운동 이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시민운동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정=마지막으로 아탁의 앞으로 활동계획에 대해 알고 싶다.


카생=이번 시애틀의 경험을 살려 앞으로 국제 연대투쟁에 주력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일종의 `저항인터내셔널' 같은 것을 창설하도록 노력하겠다. 세계 주요 금융기관들이 우리를 무시하고 함부로 투기행위를 하는 것을 막아내기 위하여 애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