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의 사회과학
지구화한 자본주의의 위기(월든 벨로)
DemosJKlee
2007. 3. 27. 14:06
www.hani.co.kr
기사섹션 : 국제홈 등록 2002.12.01(일) 20:44
지구화한 자본주의의 위기
폴 크루그먼과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명사 반열에 오른 경제학자들인지 모르지만, 지구화한 자본주의의 요즘 위기를 가장 폭넓고 정확히 해명하는 학자는 이들이 아니라 신마르크스주의 경제사학자 로버트 브레너다.
'닷컴현상'의 실체
1998년 <지구적 혼돈의 경제학>을 발표해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인 그의 최신작 <호황과 거품>은 생산과 시장이 지구적으로 통합된 1980년대 이후 시대의 과잉생산 또는 과소소비의 동학과 결과를 선명히 제시하고 있다. 브레너는 2차 대전 이후를, 지구 전반의 경제성장이 나타난 50∼70년대초와 지속적인 위기와 불균형한 성장을 특징으로 하는 그 이후 시기로 나눈다. 전반기에 미국·유럽·일본은 확장을 통해 함께 이익을 얻었으나, 그 이후 상황은 한쪽이 성장하면 다른 쪽이 침체를 겪는 제로섬 게임이 되고 말았다. 70년대 이후 중심 경제권은 만성적인 과잉설비와 수익성 하락에 시달렸고 그래서 낡은 자본 처분과 생산성 및 수익성 향상이 필요했으나, 이 작업은 기존 독점세력과 노조, 강력한 경쟁상대국의 반대에 부닥쳤다.
70년대초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달러의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달러 가치를 떨어뜨림으로써 경쟁국을 기습했다. 하지만 경쟁력 회복은 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 가서야 이뤄졌다. 그것도 △임금하락을 위한 노조 파괴 △외국 자본을 끌기 위한 이자율 인상 △일본과 독일 제조업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게 될 엔과 마르크의 대폭적인 가치 상승을 위한 ‘플라자 합의’를 통해 달성됐다. 세계경제가 설비과잉에 짓눌린 상황에서 이 조처는 일본과 독일의 침체를 불렀고, 미국의 경쟁력 회복 기반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 조처는 양날의 칼 같아서, 긴 침체에 빠진 일본과 독일의 미국 제품 수입이 줄면서 여파가 미국 제조업계로 돌아왔다. 결국 90년대 중반 빌 클린턴 행정부는 ‘역 플라자 합의’를 꾀하게 된다. 일본 경제 회복을 위해 엔에 대한 달러의 가치를 높인 것이다. 그런데 이 조처는 일본 경제를 되살리지 못했다. 위기에 직면한 일본 대기업들이 노동집약적 산업을 중국과 동아시아로 대거 이전하면서 과잉설비 문제가 더 확산된 것이 실패의 주 원인이다. 게다가 역 플라자 합의는 자국 통화가 달러에 연동되어 있는 동북·동남아시아의 경쟁력까지 떨어뜨렸다.
지구적 생산체제·시장과의 통합과 경쟁이 동시에 강화되는 상황에서 미국 제조업의 수익성은 97년 이후 상승을 멈췄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자료를 보면 올해 생산설비와 실제 생산의 격차는 1920년대 대공황 이후 최고 수준이다. 제조업과 기타 ‘실물 경제’가 수익성을 보장하지 못하게 되자, 자본은 투기 부문으로 흘러들어갔다. 저리 정책과 ‘신경제’론으로 부추겨진 ‘닷컴 현상’은, 첨단기술 기업의 미래 수익성이라는 환상을 바탕으로 약 2년 동안 계속됐다.
그러나 금융 부문의 수익성은 실물 제조분야의 수익성에 의존하기 때문에, 금융 주도의 성장은 결국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미국 증시의 비금융 기업 시가총액이 94년 48억달러에서 2000년 3월 15조6천억달러로 급팽창한 것은, 브레너의 표현대로 “서류상 가치와 실물생산 특히 수익성간의 어리석은 단절”을 보여준다. 또 2000년 3월부터 시작된 7조달러 규모의 주식평가 손실은 과잉설비·과잉생산·수익성 결여로 무력해진 세계 경제의 현실을 확인시켜준다. 브레너가 표현하는 전후 팽창과 쇠락은 소련 경제학자 니콜라이 콘드라티에프의 50∼60년 장기 파동설과 너무나 흡사하다. 하지만 브레너는 콘드라티에프의 결정론적 해석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는 듯하다.
그런데 브레너는 한가지 중요한 요소 곧 중국이라는 존재를 빼먹었다. 중국은 과잉설비 위기 탈출 전략에 크게 기여할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아직은 수출주도 생산에 초점을 둠으로써 전세계적 설비과잉에 한몫하고 있지만, 내수 구매력 신장으로 전략을 바꾸면 ‘전세계적인 침체’라는 망령을 물리칠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위기국면은 생산 위기와 체제 재생산 위기가 겹쳐있는 독특한 상황이다. 체제 재생산이란 지구적 자본주의의 지속과 성장에 필수적인 정치·문화적 재창조(리크리에이션)를 뜻한다. 브레너의 분석에 빠져 있는 △세계 정치구도 △문화 헤게모니 △기존 주체간 상호관계라는 3가지 요소가 과잉설비 위기의 여파를 차단할 수 있을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상부상조의 3가지 위기
그런데 현재의 생산 위기와 동시에 3가지 ‘상부구조’의 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첫번째는, 지구적 자본주의의 ‘정통성 위기’다. 지구적 자본주의의 유효성을 역설하는 신자유주의 이념은 날로 설득력을 잃고 있다. 두번째는, 자유 민주주의의 위기다. 미국이나 영국식 자유 민주주의는 지구 남쪽에서 체제 안정화 도구로서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치-군사적 ‘과잉확장’이 유발하는 전략적 위기가 있다. (군 주도로 수요를 창출하는) ‘군사 케인즈주의’ 신봉자들이 자리잡은 워싱턴이 최근 군사작전을 확대하고 있지만 쉽사리 승리를 굳히지 못하고 있다. 이슬람권의 반감이 커지면서, 미국의 정치-군사적 움직임은 중동에서 미국의 전략적 위치를 개선하기는커녕 악화시킬 뿐이다. 브레너의 분석엔 이 3가지 위기 분석이 덧붙여져야 한다.
월든 벨로/필리핀대 교수·사회학
http://www.hani.co.kr/section-007000000/2002/12/007000000200212012044040.html
기사섹션 : 국제홈 등록 2002.12.01(일) 20:44
지구화한 자본주의의 위기
폴 크루그먼과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명사 반열에 오른 경제학자들인지 모르지만, 지구화한 자본주의의 요즘 위기를 가장 폭넓고 정확히 해명하는 학자는 이들이 아니라 신마르크스주의 경제사학자 로버트 브레너다.
'닷컴현상'의 실체
1998년 <지구적 혼돈의 경제학>을 발표해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인 그의 최신작 <호황과 거품>은 생산과 시장이 지구적으로 통합된 1980년대 이후 시대의 과잉생산 또는 과소소비의 동학과 결과를 선명히 제시하고 있다. 브레너는 2차 대전 이후를, 지구 전반의 경제성장이 나타난 50∼70년대초와 지속적인 위기와 불균형한 성장을 특징으로 하는 그 이후 시기로 나눈다. 전반기에 미국·유럽·일본은 확장을 통해 함께 이익을 얻었으나, 그 이후 상황은 한쪽이 성장하면 다른 쪽이 침체를 겪는 제로섬 게임이 되고 말았다. 70년대 이후 중심 경제권은 만성적인 과잉설비와 수익성 하락에 시달렸고 그래서 낡은 자본 처분과 생산성 및 수익성 향상이 필요했으나, 이 작업은 기존 독점세력과 노조, 강력한 경쟁상대국의 반대에 부닥쳤다.
70년대초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달러의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달러 가치를 떨어뜨림으로써 경쟁국을 기습했다. 하지만 경쟁력 회복은 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 가서야 이뤄졌다. 그것도 △임금하락을 위한 노조 파괴 △외국 자본을 끌기 위한 이자율 인상 △일본과 독일 제조업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게 될 엔과 마르크의 대폭적인 가치 상승을 위한 ‘플라자 합의’를 통해 달성됐다. 세계경제가 설비과잉에 짓눌린 상황에서 이 조처는 일본과 독일의 침체를 불렀고, 미국의 경쟁력 회복 기반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 조처는 양날의 칼 같아서, 긴 침체에 빠진 일본과 독일의 미국 제품 수입이 줄면서 여파가 미국 제조업계로 돌아왔다. 결국 90년대 중반 빌 클린턴 행정부는 ‘역 플라자 합의’를 꾀하게 된다. 일본 경제 회복을 위해 엔에 대한 달러의 가치를 높인 것이다. 그런데 이 조처는 일본 경제를 되살리지 못했다. 위기에 직면한 일본 대기업들이 노동집약적 산업을 중국과 동아시아로 대거 이전하면서 과잉설비 문제가 더 확산된 것이 실패의 주 원인이다. 게다가 역 플라자 합의는 자국 통화가 달러에 연동되어 있는 동북·동남아시아의 경쟁력까지 떨어뜨렸다.
지구적 생산체제·시장과의 통합과 경쟁이 동시에 강화되는 상황에서 미국 제조업의 수익성은 97년 이후 상승을 멈췄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자료를 보면 올해 생산설비와 실제 생산의 격차는 1920년대 대공황 이후 최고 수준이다. 제조업과 기타 ‘실물 경제’가 수익성을 보장하지 못하게 되자, 자본은 투기 부문으로 흘러들어갔다. 저리 정책과 ‘신경제’론으로 부추겨진 ‘닷컴 현상’은, 첨단기술 기업의 미래 수익성이라는 환상을 바탕으로 약 2년 동안 계속됐다.
그러나 금융 부문의 수익성은 실물 제조분야의 수익성에 의존하기 때문에, 금융 주도의 성장은 결국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미국 증시의 비금융 기업 시가총액이 94년 48억달러에서 2000년 3월 15조6천억달러로 급팽창한 것은, 브레너의 표현대로 “서류상 가치와 실물생산 특히 수익성간의 어리석은 단절”을 보여준다. 또 2000년 3월부터 시작된 7조달러 규모의 주식평가 손실은 과잉설비·과잉생산·수익성 결여로 무력해진 세계 경제의 현실을 확인시켜준다. 브레너가 표현하는 전후 팽창과 쇠락은 소련 경제학자 니콜라이 콘드라티에프의 50∼60년 장기 파동설과 너무나 흡사하다. 하지만 브레너는 콘드라티에프의 결정론적 해석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는 듯하다.
그런데 브레너는 한가지 중요한 요소 곧 중국이라는 존재를 빼먹었다. 중국은 과잉설비 위기 탈출 전략에 크게 기여할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아직은 수출주도 생산에 초점을 둠으로써 전세계적 설비과잉에 한몫하고 있지만, 내수 구매력 신장으로 전략을 바꾸면 ‘전세계적인 침체’라는 망령을 물리칠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위기국면은 생산 위기와 체제 재생산 위기가 겹쳐있는 독특한 상황이다. 체제 재생산이란 지구적 자본주의의 지속과 성장에 필수적인 정치·문화적 재창조(리크리에이션)를 뜻한다. 브레너의 분석에 빠져 있는 △세계 정치구도 △문화 헤게모니 △기존 주체간 상호관계라는 3가지 요소가 과잉설비 위기의 여파를 차단할 수 있을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상부상조의 3가지 위기
그런데 현재의 생산 위기와 동시에 3가지 ‘상부구조’의 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첫번째는, 지구적 자본주의의 ‘정통성 위기’다. 지구적 자본주의의 유효성을 역설하는 신자유주의 이념은 날로 설득력을 잃고 있다. 두번째는, 자유 민주주의의 위기다. 미국이나 영국식 자유 민주주의는 지구 남쪽에서 체제 안정화 도구로서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치-군사적 ‘과잉확장’이 유발하는 전략적 위기가 있다. (군 주도로 수요를 창출하는) ‘군사 케인즈주의’ 신봉자들이 자리잡은 워싱턴이 최근 군사작전을 확대하고 있지만 쉽사리 승리를 굳히지 못하고 있다. 이슬람권의 반감이 커지면서, 미국의 정치-군사적 움직임은 중동에서 미국의 전략적 위치를 개선하기는커녕 악화시킬 뿐이다. 브레너의 분석엔 이 3가지 위기 분석이 덧붙여져야 한다.
월든 벨로/필리핀대 교수·사회학
http://www.hani.co.kr/section-007000000/2002/12/0070000002002120120440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