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의 사회과학
혼돈의 기원(로버트 브레너) 서평 및 소개
DemosJKlee
2007. 3. 27. 14:12
왜 {월스트리트 저널 Wall Street Journal}은 이 책에 격찬을 보냈는가? 그렇다면, 왜 {신좌파평론 New Left Review}은 이 책을 특집호로 발행했는가? 상식적인 수준에서, {월스트리트 저널}이 격찬한 책이라면, 의당 {신좌파평론}은 비판했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저널}의 격찬과 '더불어' {신좌파평론}은 한 권 전체의 지면을 이 책에 기꺼이 할애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이 두 상징적인 사건이야말로 로버트 브레너가 쓴 이 책의 현재적 의미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 책은 오늘날의 '혼돈의 기원,' 즉 자본주의의 장기 침체의 원인을 (단지 이론적으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밝혀내고 있으며, 따라서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경제 인사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고, 현재의 위기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던 주류 경제학자와 맑스주의자들에게도 '이론적 무기력'을 극복할 수 있는 신선한 '돌파구'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뉴욕의 언론들은 이 책이 노벨상감이라고 호들갑을 떨었고, 전세계의 쟁쟁한 맑스주의자들과 경제학자들은 즉각 이 책에 논평을 가하며 진지하고 격렬한 논쟁에 뛰어들었다. 국내에서도 브레너에 대한 관심이 이제 본격적으로 표출되고 있는데, 이번 주에 발행된 {창작과 비평}(겨울/2001)에도 브레너와 정성진 교수의 대담이 [자본주의의 기원과 위기](200매)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 문제는 '노동'이 아니라 '자본'이다! 이 책이 1998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1997년 이후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 금융위기가 몰아치고, 모두들 그 원인과 세계 경제에 끼칠 파장을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을 때, 로버트 브레너는 전후 50여 년에 걸친 세계 경제의 역사적 과정을 추적하여 오늘날의 경제 위기를 일목요연하게 해명해냈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의 위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브레너가 던지는 충고는 단순하다. 맑스주의, 케인스주의, 신자유주의를 막론하고, 모두들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서 위기를 발견하고자 했으며, 그 때문에 존재하지도 않는 강력한 노동운동을 신봉하거나, 아니면 이미 무력해진 노동의 힘을 약화시켜야 위기를 탈출할 수 있다고 강변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브레너에 따르면, 문제는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자본의 관계'에 있다. 곧 유한한 세계시장을 둘러싸고 각 국가의 자본들이 무계획적인 무한 경쟁을 벌이기 때문에 과잉생산이 유발되어 결국 이윤율이 하락하고, 또한 이윤율이 하락함에도 불구하고 각 국가의 자본들이 기존의 세계시장에서의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 '퇴출'을 거부함으로써 경쟁은 더욱 격화되고, 그에 따라 위기는 더욱 심화되어간다는 것이다(아래의 각 장별 개요 참조. 또한 브레너 자신의 간략한 설명으로는 로버트 브레너/정성진, [대담: 자본주의의 위기와 기원], {창작과 비평}, 2001년 겨울, 408∼410쪽 참조). ♣ 명쾌한 대안, 그러나 과연 이 대안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장기 침체를 극복하는 대안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고비용 저이윤의 생산수단'을 퇴출시켜서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이란 문제를 해결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미 신기술과 고정자본에 엄청난 비용을 지불한 상태에서 각 국가의 기업들은 스스로 '퇴출'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며, 차라리 '퇴출'의 압력에 저항할 수 있을 때까지 저항할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자신의 경쟁자들을 '퇴출'시키기 위해 자신의 가격 하락을 감내하면서도 해외 경쟁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위기의 대안은 명쾌하지만, 어떤 국가의 어떤 자본도 이 대안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바로 이런 과정이 지난 50여 년 동안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이며, 오늘날의 장기 침체를 초래한 이유이다. -------------------------------------------------------------------------------- 저자 소개 로버트 브레너 Robert Brenner 1943년 뉴욕에서 태어나 1970년 프린스턴 대학에서 "Political Conflict and Commercial Development: The Merchant Community in Civil War in London"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8년부터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역사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미국의 트로츠키주의 정치조직인 <연대 Solidarity>에서 활동하면서, 이 단체의 격월간지인 {시류를 거슬러 Against the Current}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봉건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분석하는 주요 논문들을 발표하여 '이행 논쟁'(이른바 '브레너 논쟁 Brenner Dabate')을 주도했으며, 영국의 좌파 이론지인 {신좌파평론 New Left Review}(제229호, 1998)의 전체 지면을 채운 바 있는 이 책에서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이론적, 역사적으로 분석하여 전세계 맑스주의 학자들 사이에서 '제2의 브레너 논쟁'을 촉발시키고 있다. 국내에 소개된 저서로는 {자본주의의 이행 논쟁}(한겨레 1985)과 [조절 접근: 이론과 역사]({사회경제평론} 제5호, 1992)가 있으며, 곧 출간할 The Boom and the Bubble: The US Economy Today(Verso 2002)에서 보여지듯, 주로 역사학과 경제학을 결합시킨 연구성과들을 내고 있다. 옮긴이 전용복·인천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경제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백승은·고려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경제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