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와 국제 정세

한반도를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의 허브로

DemosJKlee 2007. 6. 13. 02:09
한반도를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의 허브로

이준규(평화네트워크 운영위원)/ 2004년 10월 1일


동아시아가 주목받고 있다. 이는 20세기 성공과 실패의 극적인 ‘반전드라마’를 연출했던 동아시아의 경제에 대한 관심과는 다르다. 전환기에 놓여 있는 동아시아는 EU(유럽연합)와 대등한 혹은 그 이상의 정치경제적 잠재력을 가진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환기에는 기회와 도전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동아시아의 경제, 문화가 급격히 가까워지고 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동아시아의 정치적 협력의 진전 속도가 경제적 통합과 문화‘상품’의 초국경적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그로인해 아직 평화적 공존의 질서가 창출되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동아시아의 초점이 되고 있는 동북아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 지역은 정치적, 군사적 협력질서가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특히, 동북아시아 지역은 탈냉전 이후 다자간 협력적 질서는 형성되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미·일·한 동맹이 군사적으로 일체화하고 공격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미국이 한국과 일본을 끌어들여 미사일방어(MD)와 같은 군비증강 계획을 추진하고 동맹의 군사화를 강화하는 과정이 북한의 핵·대량살상무기, 그리고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경계론에 기반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은 동북아 정세를 불안하게 하는 것 뿐만아니라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태동하고 있는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ASEAN+3(한국, 중국, 일본),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와 같은 다자적 협력안보틀이 동아시아 차원으로 발전함에 있어서 장애가 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동북아 갈등의 불씨인 중국, 대만의 양안문제와 최대현안인 북한 핵문제와 한반도문제는 동아시아 미래의 불확실성을 고조시키는 핵심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문제들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따라 동아시아의 미래가 좌우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북핵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진지한 협상을 통해 한반도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찾으려고 하지는 않고 ‘북한위협론’을 근거로 군비증강에 나서고 있고 북한인권법을 통해 대북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에 대해 ‘폐연료봉 무기화’ 선언이라는 강경대응으로 맞서고 있다.

한편, 대만의 독립 움직임에 대해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무력으로라도 막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 등거리외교를 하고 있는 미국은 중국이 무력을 사용할 경우 대만을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하고 있다. 미·일·한 동맹이 군사작전의 유기적 일체성을 더해가고 있음을 염두에 둔다면 북미대결과 양안충돌은 동북아 전체를 파국적 상황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영토와 역사문제가 시시때때로 불거져 나와 한·중·일 ‘국가주의+민족주의’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도 동북아와 동아시아의 협력적 질서 창출에 있어 방해가 되고 있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중화사(中華史)에 편입하려는 ‘동북공정’과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는 일본의 정치군사대국화 추구,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기도는 동북아 3국의 감정적 충돌을 초래하고 있다. 또한 중일간의 경쟁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미묘한 신경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여기에 미국의 일방주의와 미·일·한 군사동맹의 강화가 더해지면 중국의 중화민족주의를 자극하게 되고, 그것은 다시 동아시아 국가들의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을 가져오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한반도의 선택

동북아시아는 미국의 일방적 군사주의와 그에 기반한 동맹정치의 강화, 한반도문제와 양안문제,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정치군사대국화 추구, 영토와 역사문제, 그리고 ‘국가주의+민족주의’간 갈등이라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동아시아에 정치군사적 협력의 질서가 창출되는데 중요한 저해요인이 되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시장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화와 지역화의 흐름에서 동아시아 역시 예외가 될 수는 없고 그것은 이미 지적한 것처럼 경제와 문화‘상품’의 초국경적 흐름의 가속화로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적자생존의 시장 논리가 주도하는 ‘통합’은 또다른 분열과 갈등의 씨앗을 배태할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환경, 인권 등의 문제, 역내 국가들간의 불균등, 국가 내부의 ‘이득을 취하는 이들’과 ‘소외당하는 이들’ 사이의 분열과 갈등은 여전히 숙제로 남을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는 역내 국가간 정치적 협력과 국경에 제약받지 않는 사회적 연대를 통해 해결해 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에는 그런 여건이 조성되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한반도가 남북한 대립과 미국과의 동맹에 대한 집착으로 요약할 수 있는 현재에 안주하면서 갈등과 대결의 ‘진앙’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비전을 세워 평화와 인권의 가치가 살아 숨쉬는 동아시아를 창출하는 ‘허브’(hub)가 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이것은 당위가 아니라, 북한의 핵문제와 대량살상무기, 그리고 한반도평화체제 구축과 통일이라는 ‘한반도문제’ 전반이 동북아(동아시아) 수준 더나아가 세계적 수준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전략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를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의 허브로

한반도가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의 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정에서 다자적인 대화의 틀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하며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체로 발전시켜가야 할 것이다.

이것은 현재 진행 중인 6자회담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이를 기반으로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해 갈 필요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는 동북아평화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남북한 모두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우선 남한은 미국과의 ‘군사적’ 동맹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여러 영역에서 이미 한국과 미국은 이해관계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오히려 동맹에 집착한 대가로 원하지 않는 이라크전쟁에 동참해야 했고 테러 대상국으로 지목되는 위협에 직면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미국이 자국의 이해관계를 위해-그것이 강경파 혹은 군수산업의 이해관계라 할지라도-북한과 중국의 ‘위협’을 필요로 하는 측면이 엄존하고 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과의 동맹에 집착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명확히 보여 주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강경정책에 또다시 강경함으로 반응하는 것을 자제해야 함은 물론, 군사적 이슈의 해결을 위해 미국에 ‘올인’하는 전략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북한이 남북대화나 다자간 대화를 외면하고 대미관계에 사활을 걸면 걸수록 스스로 대미관계에서 지렛대를 상실하게 되는 역효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점이다. 뿐만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한반도문제 해결의 과정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시킬 뿐이라는 것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역동적인 시민사회는 평화와 인권의 허브로서의 한반도를 실현함에 있어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한국 사회는 동아시아의 현대사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었고 그 바탕은 시민사회였다. 또한, 분단을 극복하고자 하는 통일의 열망은 시민사회의 중요한 에너지원이었음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제 민족주의의 열정은 평화와 인권이라는 인류보편적 가치와 만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체제에 살았던 사람들을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는 통일코리아를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 시민사회의 에너지를 동아시아 차원의 사회적 연대로 확산시켜 전쟁만이 아니라 모든 폭력의 제거를 추구하는 ‘적극적 평화’ 혹은 인권의 가치를 전파하는 허브로서 역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세대 대학원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