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수교와 한일협정
이 글은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교과서운동본부) 웹진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링크
지난 5월 고이즈미 수상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만해도 급물살을 탈 듯했던 북일 수교회담이 답보상태다.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한 북일 실무협의가 성과를 보이지 않자 5월의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식량, 의약품 같은 대북 인도주의적 지원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지난달 27, 28일 요미우리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8%가 “납치문제 협상에 진전이 없을 경우 대북 경제제재조치를 취해야 한다”, 70%가 “북일 정상회담에 따른 대북 인도지원에 대해서도 반대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뿐만아니라, 일본은 향후 실무협의에서 새로이 제기된 후지타 스스무(藤田進)등의 납치의혹에 대해서도 북측에 설명을 요구할 방침이고 탄도미사일 문제까지 거론할 예정이어서 북한의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 미국의 '북한인권법' 성립, 북한의 ‘폐연료봉 무기화’ 선언 등으로 인해 복잡하게 꼬이고 있는 동북아의 최근 정세도 북일간 회담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난관에도 불구하고, 북일 수교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정착에 기여할 효과를 생각한다면 그 절실함은 분명하다. 우선, 북일 수교는 90년대 이후 지체되고 있는 동북아 교차승인 구도를 완결 지을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이것은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동북아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과정이며, 미국의 정권교체이후 중단되어버린 ‘한반도평화프로세스’에 돌파구가 마련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북한과 일본의 국교 정상화는남북한과 일본, 그리고 동북아에 새로운 질서가 등장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시말하면, 제국주의, 전쟁, 냉전과 강대국간의 이전투구로 얼룩졌던 동북아가 ‘과거사’를 청산하고 협력과 평화의 동북아 질서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북일관계의 최대 난관 : 납치문제와 반북감정
1991년 이후 북일 수교회담은 총 12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1991년 1월부터 1992년 11월까지 총 8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던 회담은 핵의혹과 '이은혜'(KAL기 폭파사건의 용의자 김현희의 일본인 일본어 선생으로 추정)의 존재가 불거지면서 중단되었다. 2000년 4월부터 2000년 10월까지 3차례 열렸던 수교회담은 양측이 각각 전제로 제기한 '납치문제와 북한미사일문제' 그리고 '과거청산'과 '전후보상'이 합의를 보지 못하고 결렬되었다.
2002년 9월 평양에서의 극적인 북일 정상회담 이후 재개되었던 회담이 납치문제에 대한 일본 내 여론의 악화에 의해 좌절되었다는 것은 두루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에 미국 켈리특사의 ‘북한 핵개발프로그램 시인’ 폭로 파문이 겹쳤다. 이러한 일들은 ‘대포동미사일’ 발사와 ‘공작선 침투’ 사건으로 악화되어있던 북한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감정에 기름을 부었다. 재일교포들에 대한 린치, 폭행, 집단따돌림은 이러한 상황에서 나타난 공격적 행동이었다. 이러한 일본국민들 일반에 만연되어 있는 반북감정은 현재까지도 납치문제를 통해서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 국민들이 가진 반북감정이 유동적일 수 있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마저 쉽지 않은 것은 일본 정당과 정치권에도 ‘반북’의 목소리가 팽배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올해 2월 대북경제제재법을 통과시킬 당시 자민당, 공명당 두 연립여당 뿐만아니라 제1야당인 민주당과 사민당까지 찬성했었다는 것은 이 점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작년11월의 중의원 선거와 올해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약진하면서 ‘정권교체’의 가능성까지 내다보는 민주당이 현 고이즈미 내각보다도 때때로 강경한 대북입장을 보이는 것도 이러한 측면에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민주당은 지난 5월 고이즈미 수상의 방북을 반대했으며 북일 수교 협상에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참고로 민주당은 작년 유사법제 통과와 자위대 이라크파병에는 반대했었다.
동북아 정세의 불확실성과 두 번의 북일 정상회담
납치문제와 일본 국내의 반북여론에 못지않게 북일 국교 정상화에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은 불안정한 동북아의 안보환경이다. 특히, 핵을 둘러싼 북미 대결은 최대의 장애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입장에서 북한의 핵보유는 미사일과 함께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오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태평양전쟁에서의 ‘피폭’과 ‘대공습’의 정신적 상처를 자극하는 심리적 문제이기도 하고, 또한 탈냉전이후 어느덧 그들 앞에 성큼 다가선 ‘직접적인’ 안보위협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지난 9월말 일본발(發) 보도로 인해 촉발되었던 북한 미사일 발사 ‘소동’은, 일본열도가 북한 미사일의 사정권에 들어있다는 두려움의 발로라고 할 있는 것이다. 물론,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문제가 납치문제에 못지않게 일본의 매스미디어와 정치권의 행태에 의해 증폭되고 있다는 것도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역설적인 것은 동북아의 불확실성은 북일 수교의 어려움과 함께 그 가능성도 함께 제기한다는 점이다. 두 차례에 걸친 북일 정상회담의 성사는 동북아의 불확실한 정세 속에서도 북한과 일본의 이해관계가 맞는다면 언제든지 양국 관계의 진전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올해 5월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고이즈미 수상의 평양방문은 납치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열어줬을 뿐아니라 6자회담의 재개에 결정적 역할을 했었다. 그리고, 2002년 9월의 1차 북일 정상회담은 ‘9.17. 북일 평양선언’이라는 성과를 남기기도 했었다. 북일 평양선언은 양국이 국교 정상화를 위한 협의를 시작한 이후 양국 정부가 최초로 합의서명한 문서였고, 이후 북일간 수교과정의 원칙과 동북아의 청사진을 제시한 의미 있는 공식문서였다.
북일 수교가 한일회담의 오류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여기서 우리가 꼭 짚어야 할 문제가 있다. 북일 수교협상이 한일회담의 재판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일협정과 일련의 한일회담 과정에 의해 왜곡되어버린 전후의 한일관계가 북일관계에도 그대로 반복된다면 북일 수교가 한반도와 일본, 그리고 동북아의 새로운 미래를 창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북일교섭은 한일회담을 모델로 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체결될 북일‘기본조약’, 북일청구권 및 경제협력 협정 등은 한일기본조약과 한일청구권 및 경제협력 협정 등과 마찬가지의 내용이 될 가능성도 높다. 이는 2002년 북일 평양선언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과거사에 대한 사과의 표현은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과(お?び)”로 처리되었고 배상 방식도 한일국교 정상화 과정과 마찬가지인 경제협력 방식으로 합의되었기 때문이다. 한일협정에서는 언급되지도 않았던 과거사에 대한 사과 표현이 들어간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그 표현은 ’사죄‘(謝罪)가 아니라 통상 사과로 번역되는 ’오와비‘(お?び)였다. 이 표현은 1995년 무라야마 수상의 표현을 답습한 것이다.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은 대공산권 봉쇄를 위한 미-일-한 동맹의 구축이라는 미국의 냉전 전략에 입각한 구상과 압박, 후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에 부응하여 일본 쪽에서는 기시 노부스케라는 A급전범과 그 인맥들, 한국 쪽에서는 일본군장교출신의 박정희와 정당성 없는 군부독재세력의 전횡에 의해 체결된 것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한일협정에는 일본의 식민침략에 대한 언급과 사죄가 포함되지 않았고 전후배상과 청구권 문제도 경제협력방식으로 국한되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면죄부를 받은 셈이고, 한일협정은 오히려 이후에 일본정부에 대해 전후보상을 요구하는 태평양전쟁 피해자들의 보상요구 재판에서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시민사회단체와 언론에 의해 박정희정권과 일본 기업들 사이에 검은돈의 뒷거래가 있었다는 회담과정의 흑막이 폭로되고, 회담 초기에 일본정부가 피해자들에 대한 직접보상을 제안했지만 한국 정부는 국가가 대신 보상받는 형식을 택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뿐만아니라, 한일협정이 재일코리안(재일동포)의 지위문제에 대해서도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한일 국교정상화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대한민국 국적자)은 “일본에서 영주하는 것”이 가능해졌지만(‘재일동포의 법적 지위 및 대우에 관한 협정 1조’), 그것은 ‘대한민국 국적자’에 한정된 것이었다. 그 외의 재일코리안들은 배제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후 재일코리안을 보호하고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어떠한 실질적 조치들도 행해지지 않았다.
북일 수교를 한반도와 일본의 새로운 관계 정립의 계기로
북일 수교회담이 재개된다면, 과거사 청산과 배상 문제 그리고 재일코리안의 지위 문제가 다시 거론될 것이다. 북일 국교정상화 과정이 한일회담의 재판(再版)이 된다면 그 의미는 반감될 것이다. 오히려, 한반도와 일본이 과거를 정리하여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고 동북아 평화를 위한 동반자로 나가는데 있어 장애가 될 지도 모른다. 이것은 북일수교가 시급한 과제라는 것과 표면적으로는 충돌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북일 수교를 한반도와 일본의 바람직한 관계정립의 계기로 만들지 못했을 때에 닥칠 후과를 생각하면 결코 회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북일 수교를 주어지는 외적 환경으로 보지 않고 우리의 과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반도의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로 삼고, 또한 한반도와 일본의 왜곡되었던 관계를 바로잡아 동북아에 평화협력적 질서를 창출하는 계기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남북 정부간, 사회단체간의 대화는 필수적이다. 또한, 한일 시민사회 연대는 북일수교를 계기로 한반도와 일본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단순히 민족적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동북아 평화에 기여하는 과정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꼭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