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관계 정상화 협상 전망 (상)
이준규(평화네트워크 정책실장)/2006년 1월 25일
1월 말에 개최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북일 정부간 협상이 2월로 미루어 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북일 양국 정부는 작년 12월말의 정부간 대화에서 가능한 한 1월말까지는 협의를 재개하자고 합의했고, 그에 따라 조기 개최를 위해 양국간 조정을 계속해왔다. 그러나, 산케이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북한과 개최 예정지인 중국이 1월 하순이면 음력 정월의 연휴에 들어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협의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 1월22일에는 일본 언론들이 국교정상화(수교) 협상, 납치문제, 핵 및 미사일 문제 등 3개 분야에 대한 <병행협의>가 2월4일부터 5일 정도의 예정으로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일제히 보도한 바 있다. 일본 정부측이 2월 상순경에 북한과 정부간 대화를 갖기 위해 비공식 접촉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일수교 회담 2월 재개로(?)
북일 양국 정부는 작년 12월말 베이징에서 열린 북일 정부간 접촉에서 일본 정부가 제안한 3개 분야 <병행협의> 방식에 대해 합의하고 납치문제, 핵과 미사일 등 안보현안을 국교정상화를 위한 협상과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이것은 일본 정부가 제안한 안을 북한이 수용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일본의 언론도 11월 베이징 북일 접촉에서 일본측이 병행협의를 제안한 것은 “납치문제 협의가 진전되지 않으면 외교전체가 정지해버리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외무성 간부의 말을 인용보도 한 바 있다(쿄도통신 11월13일).
북한이 새해 들어 송일호(宋日昊) 외무성 아시아국 부국장을 북일 국교정상화 협상담당대사로 김철호(金哲虎) 외무성 일본과장을 납치문제담당으로 임명함으로써 북일 협상은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송일호와 김철호는 모두 북한 내의 일본통으로 알려져 있는 인물들이다.
이러한 진행과정에 비추어 당장 2월에라도 북일 양국 정부사이의 <협의>가 본격적으로 가동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북일 국교정상화를 위한 협의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3년 4개월만의 협상 재개라는 의미를 갖는다. 지난 2002년 10월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서의 12차 회의를 끝으로 그동안 북일간에는 국교정상화를 위한 정부간 협상이 중단되어 온 상태이다.
지금까지 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회담은 2002년 10월의 회담을 포함해 총 12차례에 걸쳐 열렸다. 1990년 9월 자민당의 가네마루 신(金丸信)부총재를 비롯한 자민당, 사회당 양당 대표단의 방북으로 시작된 북일 수교회담은 1991년 1월부터 1992년 11월까지 총 8차례 개최되었다. 그리고 중단되었다가, 다시 2000년 4월부터 2000년 10월까지 3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의 북일 수교회담 과정에서 KAL기 폭파사건의 용의자 김현희의 일본인 일본어 선생 ‘이은혜’의 존재가 알려지고 일본인 납치문제가 제기 되었다. 또한, 북한 ‘핵 의혹’ 파문으로 수교회담은 좌초했다. 2000년에는 일본이 전제로 제시한 ‘납치문제’와 ‘북한 미사일 문제’ 그리고 북한이 제시한 ‘과거청산’과 ‘전후보상’의 줄다리기 게임으로 또다시 결렬되었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수상의 극적인 평양방문 이후 열렸던 2002년의 12차 회담도 납치문제로 인한 일본 내 여론의 역풍과 미국의 대북 특사 켈리가 제기한 ‘핵프로그램 시인’ 파문으로 중단되었다.
지난 2004년 5월 고이즈미 수상의 방북 이후 재개되었던 정부간 공식대화는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실무회담이었다. 그것마저도 북한이 일본측에 보낸 요코타메구미의 유골을 일본 정부가 ‘가짜’라고 주장하면서 회담이 난파한 바 있다. 바로 그러한 선례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국교정상화협상과 납치문제관련 협상을 동시에 진행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독립변수가 될 수 있는 북일관계
그러나, 2월에 북일 국교정상화 협의가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은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작년 9.19 공동성명 이후 경수로 제공 논의 시점에 대한 논란,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에 대한 금융제재 조치,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의 범죄정권 발언 등 연이은 ‘미국발 악재’로 인해 다음 6자회담의 재개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게다가, 최근 ‘대북한 선제타격능력의 제고’를 함축하고 있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한미가 합의한 마당에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도 초미의 관심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일 정부간 공식대화채널이 가동될 수 있을지 의문인 것이다. 역으로 북한이 일본 정부와의 협상에 나서 새로운 길을 뚫어 보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사 협의가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외적 환경이 받쳐 주지 않는 한 성과 없는 협상이 지루하게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의 사이클을 돌이켜 본다면, 북일 협상이 진전되지 않으면 ‘대북제재론’을 주장하는 강경파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협상파들의 입지가 급격히 축소되곤 했다. 또한 협상이 진전되지 않는 경우, 납치문제를 대북한 협상의 유일한 지렛대로 여기고 있는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는 납치문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고 싶은 유혹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북일관계에도 좋지 않는 결과를 낳게 되겠지만 납치피해자 당사자와 가족들에게도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또한, 일본의 언론들은 북한이 아직 핵 및 미사일 등 안보현안 협의의 담당자를 내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안보현안 관련 협상은 6자회담이 진전되지 않는 한 북한이 이 문제에 관해 북일 양자대화에서 ‘성의’를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혹은 억측으로 치부해 버릴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북한은 안보현안에 관한 한 북미 양자간의 문제로 환원시켜왔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일본은 핵문제의 관련 당사자로서, 특히 북한의 미사일에 대해서는 직접적 위협을 느끼고 있는 당사자라는 인식으로부터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문제는 양국의 이러한 인식의 비대칭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이다. 여기서 두 개의 전례(前例)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2002년 9월17일의 북일 평양선언이다. 일본은 북일 평양선언에서 “핵문제와 미사일문제를 포함한 안전보장상의 제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의 명기(明記)와 북한의 "미사일발사 모라토리움(moratorium) 연장"을 받아낸 바 있다. 두 번째는 2004년 5월 고이즈미 수상이 방북을 통해 4차 6자회담의 성사에 촉매제 역할을 한 바 있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북미간의 ‘중재자’ 역할을 한 셈이다.
이 두 가지의 사례는, 그 이후 정세의 변화에 의해 한계가 드러난 것도 사실이지만, 북일관계가 동북아 안보현안의 종속변수만이 아니라 독립변수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일관계 개선은 한반도문제 해결의 ‘기회의 창’
고이즈미 수상이 북일관계 개선에 대해 의욕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스스로가 공식석상에서 여러 차례 그와 같은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일본 내 대북강경파들은 수상과 수상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대북한 유화정책(appeasement) 지지자들이 북일수교에 집착하고 있다는 비판을 하고 있을 정도다.
2002년 북일 평양선언의 성사를 이루어낸 다나카 히토시(田中均) 전 외무성 심의관도 <론자(論座)> 2005년 11월호에 기고한 수기(手記)에서 “고이즈미 수상 자신은 물밑교섭을 하던 때(2002년 북일정상회담을 위한 물밑교섭을 뜻함)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인 방침에 있어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있으며 외부로의 발언도 변함이 없다. 만일 수상이 감정적인 여론에 영합하였다면 일본의 북한정책과 나아가서는 한반도의 정세가 크게 바뀌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또한,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로 국내외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고이즈미 수상이 외교적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서 북일 정부간 대화채널의 유지를 고수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러한 분석은 일본 정치권과 외교안보라인 중에서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역사문제로 고립되고 있는 현실을 우려하는 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으로 확대해서 해석할 수도 있다. 2006년 자민당 차기총재선거, 2007년 4월의 전국 지방선거와 7월 참의원 선거 등 중요한 정치일정을 앞둔 고이즈미 수상의 입장에서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계속하면서 북일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선택을 할 것이라는 국내외 전문가들의 예측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러한 상황은 납치문제 등의 현안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일관계 개선에 있어 긍정적인 요인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북일관계 개선은 한반도문제의 해결을 위한 기회의 창을 제공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에게는 북일관계에 대한 전략적이고 적극적인 대처가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전략적이고, 적극적인 대처’는 한일 정상회담을 재개할 것인가 말 것인가와 같은 단순한 질문으로 환원되는 문제는 아니다. 한일간의 현안 중에서 한국 정부가 물러설 수 없는 사안에 대한 대처와 북일관계에 대한 적극적 대처는 별개의 문제이다. 지금까지 확인 한 것처럼, 북일관계는 한일관계 이외에도 다양한 변수에 의해 좌우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9.19 공동성명 합의 발표 이후, 북일간 대화를 위한 분위기가 무르익자 정동영 당시 통일부장관은 여러 차례에 걸쳐 공식적인 발언을 통해 북일 국교정상화에 대한 지지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핵심은 발언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정부가 북일 국교정상화를 우리의 과제로서 접근하고 있는가이다. 즉, 북일수교를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더 나아가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한 중요한 한축으로 사고하면서, ‘외교전략’을 세우고 있는가라는 질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