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와 국제 정세

북일관계 정상화 협상 전망(하)

DemosJKlee 2007. 10. 8. 15:19
북일관계정상화의 최대난제 ‘일본인 납치문제’



이준규(평화네트워크 정책실장)/2006년 3월 14일


지난 2월8일, 5일 동안 진행되었던 북일 정부간 협의가 서로의 입장차를 확인한 채 끝났다. 일본 정부 측이 북한에 국교정상화협상, 핵 및 미사일 문제, 납치문제 등 3개 분야의 ‘병행협의’를 제안하고 이를 북한이 받아들인 형태로 시작된 3년만의 정부대화가 별반 성과없이 끝난 것이다. 굳이 성과라고 한다면, 양국 정부가 향후에도 회담을 계속하겠다는 합의에 이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북일 양 정부의 견해차이는 3개 분야 모두에서 명확히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북한에 대해 6자회담 복귀를 요구했지만, 북한은 (미국에 의해) 자국에 취해지고 있는 금융제재 해제를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일본 측에 ‘미국에 금융제재 해제를 요청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북한의 송일호 협상대표는 "미국과의 관계가 조선보다는 일본이 더  가깝기 때문“에 제기한 것이라고 하면서, 북한이 일본과의 정부대화를 ‘대미 외교적 시그널 전달창구’로 활용하고자 하는 ‘속내’의 일단을 드러내기도 했다.  


북일관계 최대의 난제가 된 납치문제


또한, 국교정상화협의에서 일본 정부는“북일 평양선언에 기반 해 납치문제 등을 해결하고 국교를 정상화한 다음, 과거 청산을 경제협력 방식으로 일괄 해결 한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이것은 한일협정을 통해 한일간에 합의했던 방식이다. 그러나 북한은 “그러한 방법만으로는 어렵다”고 거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국교정상화를 위한 과거청산의 문제에서도 쌍방의 의견 차이가 다시 한번 확인된 것이다.

일본의 언론들은 이러한 북한의 입장에 대해 “일본으로부터 구체적인 자금 원조를 조기(早期)에 받아내고자 하는 의도를 강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산케이(産經)신문(2월7일)은 “북일 평양선언을 이탈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일본의 반응을 억지로 치부해 버릴 수만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북일 평양선언’에서 국교정상화 이후 과거청산 문제를“무상자금 협력, 저금리 장기차관제공이나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주의적인 지원 등 경제협력”을 통해 처리한다고 양보한 것은 바로 북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이번 회담에서도 최대의 난제는 일본인 납치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2002년 9월17일, 북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특수 공작기관이 일본인을 납치”했던 사실을 인정하고‘사과의 뜻’을 밝히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면서 해결될 듯 보였던 납치문제는 오히려 극적으로 증폭되어 버렸다. 특히, 매스미디어들의 선정적인 보도와 감정적 여론, 정치인들의 선동적 행태에 의해 일본 국내의 대북강경여론이 폭발했던 것이다. 북한과 일본 양국 정부가 치유 조치로서 생존자 5인을 일시적으로 귀국 조치시키기로 합의했지만, 이들 5인은 그대로 일본에 눌러 앉아버렸다.

전후 상황을 감안하고, 혹은 결과론적으로 인도주의적 조치였다고 할지라도 ‘일시귀국’이라는 양국 합의를 어긴 것은 분명했다. 북한 측의 입장에서는 일본이‘선의(善意)’를 악용한 것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납치문제가 복잡하게 꼬인 것은 이때부터이다. 일본인들에게 북한은 ‘범죄정권’으로 낙인찍혔고 납치피해자가족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단체들은 일본외교안보정책에 있어 가장 막강한 압력단체가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전문가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총리의 ‘계산착오’였다는 평가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납치문제 해결이 진전을 보이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2004년 5월22일의 2차 북일 정상회담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2차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에 눌러 앉아버린 5인의 생존자 가족들 8인이 일본으로 귀국하게 된 것이다. 또한, 2차 북일정상회담은 답보상태에 놓여 있던 6자회담에도 영향을 끼쳐 그해 6월 3차 6자회담이 열리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납치‘실행범’인도 VS 유골감정결과 재규명


북일 관계가 최악의 대립관계로 돌아선 것은 요코다메구미씨의 유골감정결과였다. 요코다메구니씨는 1977년 13세의 나이로 납치되었으며, 북한측은 사망으로 통보한 바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정부도 가짜유골이라는 과학적 확증없다] 바로가기['가짜유골'논쟁 2라운드 시작되나] 바로가기를 참조)

2005년 연말 북한측은 요코다메구미씨의 유골을 일본에 인도했다. 그러나,유골의 DNA의 감정결과 유골이 ‘다른 사람의 유골’이라는 감정결과가 나온 것이다. 일본의 여론은 또다시 들끓었고, 북한은 ‘사자(死者)를 두고 거짓말을 하는 파렴치한 국가’가 되었다. 이에 대해 북한은 감정결과가 일본측의 “완전한 날조”라고 반발하면서 북일관계는 또다시 난파했던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3년4개월 만에 재개된 이번 북일 정부대화에서는 이 유골감정결과 논란에 대해 북한이 공세적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북한은 일본 정부에 대해 납치피해자 요코다메구미씨의 것으로 건넨 유골을 다른 사람의 것이라고 감정한 문제에 대해 결론을 지을 것을 일본측의 생존자 귀국, 진상규명, ‘실행범’ 인도 요구에 대처하는 조건으로 제시한 것이다. 2월5일 협의에서 김철호 납치문제협상담당이 “감정결과에 대한 의문에 해소되지 않는 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일본이 감정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 납치문제의 재조사등에 응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북한의 대응은 실행범 인도, 특정실종자로 분류된 사람들에 대한 진상규명 등 일본이 요구하고 있는 과제에 대한 ‘맞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그동안 경찰과 공안기관의 조사를 통해 신광수, 김세호, 우오모토 3인을 납치 실행범으로 지명하고 북한에 이들의 신병인도를 요구했다. 특히, 신광수는 일본인 납치사건에서 상당한 역할을 수행해왔다는 것이 일본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제 막 협상을 재개한 상황에서 한쪽의 일방적인 조사결과에 기반 해 3인의 신병을 인도하라는 것은 제3자가 봐도 상식에 어긋난다.

게다가, 일본의 산케이신문이나 보수적인 언론들은 신광수가 납치실행범 중에서 거물급에 해당됨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가 북한에 송환해버려 문제를 풀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감정적 반응도 서슴치 않고 있다. 참고로 신광수는 1980년대 남파되어 간첩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가, 김대중 정부 시절에 밀레니엄특사(2000년)로 석방되어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으로 송환되었다.  

북한의 대응이 ‘맞물’이라는 평가가 가능한 것은 요코다메구미씨의 ‘유골감정결과 논란’의 진행 양상을 되돌이켜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이 일본측에 건넨 “유골은 가짜”라는 결과에 대해 영국의 과학잡지인 네이처(Nature) 2005년 2월2일자가 그 ‘유골이 가짜라는 것에 대해 일본 정부도 확증을 갖고 있지 않다’는 반론을 제기한 뒤, 논란이 일자 일본 정부는 감정을 담당한 연구원을 경시청에 특채하고 DNA샘플도 모두 써버렸기 때문에 제3자에게 감정의뢰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는 ‘석연찮은’ 대응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후 사정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북한이 오히려 역공을 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북한은 “탈북자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반공화국 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신병인도를 요구하기도 했다.  
    

다시 힘을 얻고 있는 대북제재 움직임


북일 정부대화가 진전이 없이 끝나자 일본 내에서는 다시 대북제재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일본 내의 대북제재 움직임은 크게 두 가지의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는 북한을 타겟으로 현행법을 엄격히 적용함으로써 북한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일종의 북한을 상대로 한 ‘불이익조치’라고 할 수 있다. 일본 경찰은 지난 2월17일 17일 세균무기 제조에 이용할 수 있는 동결건조기를 북한에 불법 수출한 일본 무역회사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을 받은 무역회사 2곳이 북한에 불법 수출한 동결건조기는 주로 식품 보존에 이용되지만 생물학 무기에 사용할 수 있는 세균을 보존하는 데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은 “불법 수출을 의뢰한 것은 북한 군수(軍需)산업 관련 기업으로 보인다”며 “세균류 보존에 활용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한 바 있다.

또한, 2월 초에는 이미 미쓰비시은행과 토쿄UFJ은행, 그리고 미즈호은행이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과의 거래를 중단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BDA는 북한의 자금세탁과 위폐제조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은행이다.

또한, 조선총련(조총련)의 시설에 대한 면세혜택을 철회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2월 초 후쿠오카 고등법원은 조선총련의 시설에 대해 면세조치를 취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계기로 아베신조 관방장관은 총무성에 ‘준외교공관시설’로서 면세조치를 받고 있는 조선총련 건물과 관련 시설 등에 대한 면세조치를 재검토하도록 지시했다.

두 번째는 인권법안의 추진이다. 이미 작년 초에도 자민당과 민주당은 북한인권법안을 추진한 바 있다. 이번에 집권자민당이 추진하는 인권법안에도 “납치문제 등 북한의 인권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정부가 특정선박입항금지법 등에 기반 해 인권침해 억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명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민당의 대북시뮬레이션팀은 2월 국회에서의 통과를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북한을 상대로 한 경제제재를 위해 개정, 제정된 외환무역법이나 특정선박입항금지법의 발동은 유보상태에 있다. 아직 경제제재관련 법을 발동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공식입장이다. 구체적인 제재조치에 임하면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6자회담의 전망이 불투명하고 북일 정부대화에도 진전이 없다면 인권법안의 추진 뿐만아니라 경제제재 관련 법안의 발동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다시 열기로 한 북일 정부대화와 차기 6자회담의 재개 여부가 주목받은 이유이다.  

*월간 [통일한국] 3월호에 기고한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