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제주 비핵-평화지대를 위한 제안

DemosJKlee 2007. 12. 4. 01:21

'무기의 섬'인가 '평화의 섬'인가

 

이준규(평화네트워크 정책실장)

 

1. 제주‘비핵-평화 지대’제안의 배경

 

6자회담이 재개되고, 그동안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남북관계의 복원을 위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지난 2월의 ‘2.13합의’는 2005년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에 대해 구체적으로 합의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여정이 새로운 동력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낙관적 전망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이다.

 

그러나, 한미동맹 재편과 주한미군 재편 과정은 한반도의 중장기적 비전에 있어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미국의 동맹재편 전략 하에서 추진되고 있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화’는 오히려 한반도와 한반도 주민들의 입장에서 평화의 새로운 위협요소이며, 한반도 주변의 군비경쟁을 촉발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동맹의‘재편/강화’는 이 지역의 평화와 안보 환경의 새로운 불안요소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불안정한 평화와 안보 환경은 바로 주민들의 평화로운 삶과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지역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2006년 2월2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공개한 청와대의 내부문건 ‘주한미군 지역적 역할관련 논란 점검’은 전략적 유연성을 병력이동, 기지사용, 장비 등 3가지 항목으로 구분해놓고 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장비 유연성과 관련한 부분인데, 미군의 MD구축과 핵무기 배치 등에 대해 우리 측이 포괄적 양해를 해주는 결과를 초래하는 지에 대한 검토와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한미군의 유연화가, 단지 분쟁지역에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투입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는 한반도 내 주한미군의 MD시스템 구축, 핵무기 배치 가능성 등 매우 민감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1).
 
또한, 최근 미일동맹 재편 과정과 연동되어 주목받고 있는 일본 요코스카의 원자력 항모 모항화(母港化)는 서태평양상 미국 핵전력의 전진배치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또한, 전후 반세기가 넘게 지속되어왔던 일본 ‘비핵3원칙’- 핵무기를 갖지도, 만들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원칙 -의 무력화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한반도와 한반도의 주민들 또한 이와같이 전진, 증강 배치된 미군의 핵전력의 영향권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요코스카를 모항으로 하고 있는 미 태평양 제7함대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전역을 작전반경으로 삼고 있다.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 때문에 제주에 한국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미군 함선이 출입하게 된다면 핵 탑재 혹은 핵추진 미군 함선과 잠수함이 들락날락하게 된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평화의 섬’을 핵탑재 군함과 잠수함, 핵추진 항공모함과 잠수함이 중간기착지로 활용한다면 그것을 ‘평화의 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뿐만이 아니다. 동북아시아에는 기존 강대국(특히, 미국)의 행태를 추종하는 일부 국가들의 움직임과 이에 대한 견제 심리가 충돌하는 퇴행적인 흐름도 존재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미사일방어(MD) 시스템의 구축은 사실상,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것으로서 동북아시아 지역 분쟁의‘불씨’가 되고 있다. 미국의 MD구축에 대해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것이다. 최근 러시아 군부의 실력자가 폴란드와 체코가 미국의 MD망에 참가하면 러시아의 전략미사일 부대가 폴란드와 체코를 공격목표로 삼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섬으로서 MD를 둘러싼 강대국 간 이전투구 양상이 표면화되고 있다(<연합뉴스>, 2007년 2월17일). 동북아시아 지역도 이러한 강대국 간 이전투구가 언제든지 수면 위로 부상할 수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제주 해군기지를 둘러싼 최근의 일련의 논란도 이상과 같은 맥락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논란은 평화의 섬이라는‘브랜드’를 제시해 놓고도 그 실내용에 대해서는 여전히 공백상태로 남겨 놓고 있는 중앙정부의 무능력과 무책임의 지표이다. 또한 온전한 의미의‘평화의 섬 제주’ 만들기에 제주 도민들과 한국의 시민사회가 ‘직접’ 나서지 않는다면‘평화의 섬 제주 구상’이 군사안보 논리에 잠식되어 버리게 될 것이라는 경종(警鐘)이기도 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상과 같은 맥락에서 제주도야말로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와 마을을 ‘비핵과 평화의 지대’로 만듦으로써 그 지역에서 핵개발과 핵무기 배치, 핵관련 물질의 이전 등을 거부하는 비핵평화 자치단체운동 실험을 적극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비핵평화자치체 운동’은 그 명칭의 맨 앞에 ‘비핵’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핵(무기) 문제만을 다루고 있는 듯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뒤에서 해외의 몇몇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비핵평화 자치단체’는 핵과 평화(특히, 비군사/비무장)가 같은 비중으로 다뤄지고 있다.


2. ‘세계 평화의 섬’ 제주와 군사기지 건설 강행 추진

 

얼마 전부터 해군은 제주 시민들과 사회단체들의 반대로 중단되었던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고 있다. 제주도에 대규모의 해군기지를 건설하면 제주도의 안전이 증진되고 국가적 차원에서는 군사전략적 유리함과 해상 교통로 확보에 도움이 된다는 ‘국익론’과 ‘안보론’을 주장하고 있다.

 

1) 군비증강과 국제분쟁에 연루될 위험성이 증가하는 제주

 

그러나 제주에 건설될 해군기지는 한미 해군의 중추 기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해군 측도 화순항의 해군기지는 미군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게다가, 해군의 계획에 따르면 제주도에 건설될 해군기지에는 미국의 이지스함과 잠수함 ,혹은 항공모함도 정박할 수 있도록 대규모의 부두를 만들 예정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대만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MD체제에서 탄도미사일 요격이 가능한 SM-3 미사일을 장착한 이지스함을 대거 동아시아에 배치하려는 미국의 계획과 맞물려 있다. 이미 미국은 해상MD시스템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이지스함을 동해에 실전배치해 운용하고 있다. 제주도가 가지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를 본다면, 제주도 해군기지는 미군 해상MD의 전개를 위한 전초기지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MD에 참여하라는 요청도 받지 않았고, 참여도 하지 않는다는 한국 정부의 공식입장과도 충돌하는 것이지만,‘평화의 섬’제주라는 이름과도 모순되는 것이다. 제주도는 ‘평화의 섬’이 아니라,‘군사기지의 섬’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수원과 오산평택, 광주 등에 배치 증강되고 있는 PAC3 미사일과 연계되어 제주도는 한반도 남서지역 MD벨트에 편입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해군은 정부의 공식적 입장-미국의 MD에 참여하지 않고, 한국 독자의 한국형 MD를 개발한다-을 제시하면서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해군이 나서서 아니라고 한다고 ‘아닌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정부가 비공식적으로, 내용적으로는 이미 MD에 편입하고 있다는 의혹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이와 관련된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논란이 되어 왔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그렇게 된다면, MD망 구축을 둘러싼 동북아 강대국 간 갈등구조 속에 제주도가 연루(entrapment)될 수밖에 없게 된다. 러시아가 미국의 MD가 배치될 체코와 폴란드의 기지를 미사일 공격 대상으로 삼겠다고 경고한 것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제주도가 미국 MD망의 중요 구성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면 제주도는 항상적으로 공격의 위협에 노출되는 셈이다.
 
그러나,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MD를 둘러싼 논란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제주 해군기지에는 이지스급 구축함 KDX-3를 주력으로 하는 전략기동함대가 배치될 예정이다. 전략기동함대는 연근해 작전을 위주로 편성된 기존 함대와 달리 제주도 남쪽에서 인도네시아 말라카 해협으로 이어지는 해상 수송로를 보호하는 원해 작전을 담당할 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3개 전단 규모로 각 전단은 7000톤급 한국형 이지스 구축함, 4800톤급 한국형 구축함, 대형 수송함(LPX)·중잠수함(SSX) 등 대양에서도 무리 없이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함정으로 편성될 것으로 전망된다(<국방일보>, 2005년 4월7일).

 

이것은 대양해군을 열망하는‘대한민국 해군의 꿈’이 실현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제주도 지역사회와 주민들의 안전과 평화로운 삶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역으로 그 지역에 단순히 군부대가 들어서는 것을 넘어 -제주에는 이미 해군 제주방어사령부가 배치되어 있다- 대규모의 군사기지가 건설된다면 그 만큼의 위험도 증가함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2) 핵무기와 핵전력의 출입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설사, 제주의 해군기지를 한미 양군이 공동으로 사용하지 않는다하더라도 미 해군(특히, 태평양함대)이 제주 해군기지를 활용할 것은 분명하다. 또한 제주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미군의 함선과 잠수함이 들어오게 됨을 해군 측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해군이 인정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미군은 한국 영토 어디든지 기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코스카에 모항을 두고 있는 미 태평양함대가 제주도 남쪽(화순이든, 위미든)에 건설될 한국군의 해군기지를 군사 전개에 활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제주도는 미 태평양 함대의 해상교통로의 중요한 길목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만과 오키나와군도 등 미일 양국의 공동 작전계획 상 중국과의 잠재적 분쟁지역(난세이 제도와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대만해협 등)으로 상정하고 있는 해역과 최근거리에 위치해 있다.
 
2006년 5월17일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2003년 미일 양국 해군(일본의 해상자위대)의 공동훈련 문건을 폭로한 바 있다. 이 훈련은 사실상 중국과 북한이 일본을 겨냥해 탄도미사일 발사준비에 들어가고, 난세이(南西) 제도의 'S제도'-센카쿠열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있다. 'S제도'(센카쿠열도)는 중일이 영토 분쟁을 빚고 있다. 문건에 따르면, 해상자위대의 주력부대인 자위함대는 작전해역으로 향하는 항공모함 등 미 해군부대를 호위하는 동시에, S제도에 육상자위대 부대를 상륙시키기 위한 해상 수송작전을 단행한다. 미 해군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작전을 전개하는 한편, 동해에서도 해상저지행동(MIO) 등을 행한다(<朝日新聞>, 2006년 5월17일).
 
특히, 미일 해군 공동작전구역의 한 가운데에 제주도가 위치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즉 제주도가‘미일VS중국, 중국VS일본’의 국제분쟁 한 가운데에 놓이게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 해군이 사용하게 될 제주도 해군기지가‘균형자 역할’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뿐만아니라, 한미관계의 극심한 비대칭성과‘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남북공동선언’ 등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한 제반의 논의들을 감안할 때, 제주도에 출입하게 되는 미군의 선박에 의한 핵무기 반입을 막을 수 없게 된다.‘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남북공동선언’의 경우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해 합의를 하고 있지만, 미국의 핵우산과 미군의 핵무기 반입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2). 또한, 미국은 NCND(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정책에 따라 자국의 함선과 항공기의 핵무장 여부를 공표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미군의 핵을 탑재할 수 있는 함선과 항공기는 핵무기를 탑재하는 경우가 아니라, 핵무기를 탑재하지 않는 경우가 예외라는 점이다. 이는 핵무기를 탑재하고, 내리는 과정이 상당한 기술을 요하고 인적, 물적 비용을 필요로 한다는 군사기술학적 이유 때문이다. 미국이 일본과 사전협의 제도 운영을 합의해 놓고도 이 부분을 예외로 해 놓은 밀약을 체결한 것은 대표적인 예이다.‘비핵고베 방식’이 채택되게 된 계기도 그러한 사실들이 드러나면서였다.

 

이러한 전례에 비추어 봤을 때, 한국에 출입하는 혹은 한국에 정박하는 미군의 함선과 한국에 출입하는 혹은 한국에 이착륙하는 전폭기 등에 핵무기가 탑재되어 있을 것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오히려, 핵탑재가 가능한 선박(군함과 잠수함)과 항공기(전폭기와 전투기)는 핵무기를 탑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현실에 가깝다.
 
즉, 제주에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미 해군이 그 기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우리는 ‘핵과 함께 살아가는 세계 평화의 섬’이라는 희극적 결과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3. 제주‘비핵평화지대화’: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권과 명실상부한 평화의 섬을 위해

 

제주를 비핵과 비군사의 평화지대로서 제도적(평화조례 제정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으로 보장하는 것은 공백 상태에 놓여 있는‘평화의 섬 제주’구상의 취지를 온전히 살려가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 제주 지역사회에 닥칠 미래의 불안정과 위험요소를 사전에 차단하는 예방적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본다면, 제주 비핵평화지대화는 제주 지역사회와 주민들의‘평화적 생존권’의 문제이다. 즉, 제주 주민들이 자기의 의사에 반하여 무력분쟁이나 전쟁에 휘말리지 않고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확보하는 과정인 것이다

 

또한, 비핵평화 자치단체 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운동이다. 가장 많은 도시와 지방이 참여하고 있는 지역은 유럽과 일본이다. 또한, 뉴질랜드와 미국에도 비핵평화 선언을 한 지방자치단체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미국의 경우에도 비핵(평화) 자치단체는 200여개 정도에 이른다. 다만, 미국의 지자체들은 대부분 1980년대에 비핵평화 선언을 한 후 별다른 활동을 보이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캘리포니아주에는 아직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비핵평화 지자체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세계평화시장회의(Mayors for Peace)'라는 국제적인 조직이 있다. 평화도시 선언을 한, 혹은 평화도시를 표방한 도시의 시장들의 국제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다. 세계평화시장회의는 비핵평화 지자체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 회의에 참여하고 있다고 해서 모두 비핵평화 도시라고는 할 수 없다. 그중에는 형식적으로 이름만 걸고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때로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정치적 동기가 작동하기도 한다.

 

따라서, 세계시장회의는 세계 비핵평화 도시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되는‘장’이기는 하지만, 세계평화시장회의에 참여한다고 해서 그 도시(혹은 지방자치단체)가‘비핵평화지대’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제주시장이 세계평화시장회의를 제주에 유치하겠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명실상부한 정책이 수반되지 않으면 ‘보여주기식 일회성 이벤트’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세계평화시장회의는 그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세계의 비핵평화 지자체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우선, 법률적 한계를 들 수 있다. 어느 나라나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지방정부는 중앙정부가 특정 지역에 미사일이나 핵폐기물 등을 배치하려고 할 때 그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위계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국가의 법적 체계에서 중앙정부의 법률은 지방정부의 법률보다 상위에 위치하고 있다. 지방분권과 민주주의가 상당히 발전된 유럽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국제사회에서도 국제사법재판소(ICJ)가‘핵무기의 사용은 국제법적으로 위법’이라는 권고적 의견이 국제사회 ‘반핵의 규범’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도, 특히 지방정부가 핵무기 혹은 그와 관련된 핵물질들에 대해 법적 조치(legal measures)를 취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둘째, 유럽의 지방자치단체들과 일본의 고베시는 (준)법적 조치’(시의회 결의와 행정조치를 통해 비핵증명서 제출을 요구)를 취하고 있는가 혹은‘선언(혹은 결의)’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가에 대해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비핵평화 자치단체들이 상대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비핵평화‘선언’을 한 후 그 선언을 실천하기 위한 과정에서 NGO와 지방자치단체가 긴밀히 협력을 했다는 점과 비핵평화 선언 지방자치단체들이 네트워크를 구성해, 중앙정부와 국제사회를 향해 자신들의 견해를 밝히고 관철시키기 위한 활동을 해왔다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셋째, 영국의 비핵평화 자치단체들의 사례에서 보이는 것처럼 거부와 반대의 대상이 핵무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국의 경우 비핵평화 자치단체들은 영국의 군사기지가 미국의 MD기지로 사용되는 것을 반대하기도 하고, 핵관련 물질(혹은 방사성폐기물)의 처리나 통과도 반대하는 광범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는 비핵평화 도시가 조건에 따라서는 평화 전반에 관련된 문제로 그 영역을 확장시켜 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말해서, 비핵평화 도시가‘평화지대’(비핵/비군사/비무장)로서의 온전한 의미를 담보해 가는 과정은 지역사회의 행위자들의 의지와 실천 여하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4. 제주‘비핵-평화지대’를 위한 행동과제

 

제주도가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비핵평화지대를 선언하는 것을 계기로 다른 지역사회에도 그 영향을 파급시키게 된다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라는 한반도 미래 비전에도 기여하는 더 큰 의의가 있다. 해외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지금껏‘비핵평화 선언’을 법적 조치로까지 이뤄낸 사례가 없다. 고베의 경우도 법적 조치에 가깝기는 하지만 여전히 행정조치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 의지에 따라 좌우되는 한계도 존재한다. 따라서, 제주도가 특별자치도의 조례를 통해‘비핵평화’의 내용을 담아낸다면 세계 비핵평화자치단체(도시)의 전범이 될 것이다.   
 
제주도는 4.3 항쟁 당시 무자비한 국가폭력으로 인해 3만명이상이 희생당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4.3 항쟁의 진상규명과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약속하고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지정한 것은 그러한 역사를 교훈으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제주도는 ‘평화의 섬’으로서, 그리고 ‘비핵의 섬’으로서 세계적인 비핵평화 흐름에 참여하는 것이 ‘명실상부’한 선택일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제주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비핵평화 자치단체 운동은 해당 지역의 지방자치단체가 비핵평화선언을 하도록 하는 과정에서도, 그리고 그 이후에 비핵평화선언을 지키도록 하는 과정에서도 그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의 역할이 지대하다. 말을 바꾸면, 제주도가 명실상부한 평화의 섬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은, 한국 사회 지방정치의 새로운 실험이라는 의미도 갖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제주지역과 한국의 시민사회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과제를 공동으로 기획하고 실천해갈 필요가 있다. 첫째, 제주도에 군사기지(해군기지든, 공군기지든)의 추가적 건설을 반대하는 것과 함께, 제주 평화조례 제정(군사기지반대 포함)에 대한 전국 지지선언을 추진하는 것이다.

 

두 번째, 세계평화시장회의 혹은 세계평화포럼 등 국제적인 평화행사를 유치하고 그 과정에서 NGO발언 공간을 확보한다. 특히, 이와같은 지역-민간 외교의 장에서 ‘제주 비핵평화지대’의 국제적 승인을 요청하도록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북아시아 지역과 세계의 평화/비핵 도시(자치단체)들과 교류와 협력을 추진하면서, 제주도를 국제적인 ‘평화와 인권’의 발신지로서 자리매김해 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1) 또한 이 문건은 병력이동 유연성과 관련해서, 대만의 급변사태 시 주한미군 투입가능성과 함께 군산 미군 항공기의 대중국 초계활동에 대해 미국이 포괄적 양해요청을 할 가능성이 있으니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기지사용 유연성과 관련해서는 미국의 동북아 패권유지를 위한 군사기지 제공 논란을 초래, 한미상호방위조약 등 전면적 개정 여론이 비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적시했다.『연합뉴스』, 2006년 2월22일. 정부는 이 문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2) 남북한이 1992년 1월20일 합의, 서명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제1항은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 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또한, 2005년 9.19 공동성명 직후인 9월28일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힐 차관보가 미 평화연구소가 주최한 강연에서 “미국의 한반도 내 핵 반입은 한반도 비핵화의 내용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6자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한반도에 비핵화가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핵 탑재 군함과 항공기의 한국 내 기항, 착륙, 영해와 영공 통과 등에 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이 글은 지난 2007년 4월9일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실과 제주서귀포시남원읍연합청년회 공동 주최의 토론회에서 발표한 원고를 바탕으로 다시 작성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