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일본 정치
불확실성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는 일본 정치 : 도전 혹은 기회 (?)
이준규(평화네트워크 정책실장, minoritylee@hanmail.net) *월간 '말' 12월호 기고문
후쿠다 야스오 정권이 지난 9월25일 출범했다. 일본 언론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베 전 수상이 ‘정권을 내던진’ 이후 후쿠다 전 관방장관은 강경 우파인 아소 다로 자민당 간사장을 누르고 자민당 총재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수상 선출을 국회가 담당하는 의원내각제에 의해 국회에서 수상으로 지명됐다. 민주당은 참의원 다수라는 이점을 발판으로,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당수를 수상으로 지명했지만 ‘중의원 우선’ 원칙에 따라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이 수상으로 결정된 것이다. 이상과 같은 수상 선출 과정에 후쿠다 내각의 험난한 앞날이 오버랩되었다는 것은 과장된 표현이 아닐 것이다.
지난 7월29일 실시된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수상이 이끌었던 자민당은 말 그대로 참패했다. 선거를 실시한 121석 중에서 37석을 획득하는데 그친 것이다. 일본의 참의원 의원은 임기가 6년이지만, 3년마다 의석의 2분1씩을 새로 선출한다(개선 의석(改選議席)이라고 한다). 자민당이 개선 의석에서 당선시킨 의석수는 ‘비개선 의석수’를 더하더라도 제1야당인 민주당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의석이었다. 참의원에서 자민당이 제1당 자리를 민주당에게 내 준 것이다. 자민당이 참의원에서 제1당 자리를 뺏긴 것은 1955년 자민당 창당 이래- 이때부터가 이른바 '55년 체제'의 시작이다 -처음이다.
반면, 제1야당인 민주당의 약진은 두드러졌다. 민주당은 121개의 개선 의석 중 60개의 의석을 차지했다. 다른 야당들과 공동전선을 펼친 선거구까지 포함한다면 여당을 30석 가까이 앞섰다. 참의원에 있어 여대야소의 정국이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이 여소야대 정국의 도래는 최초의 전후세대 수상으로서 “아름다운 나라(美しい国へ)”로의 전진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야심차게 출발한 아베 정권을 낙마시킨 것이다.
후쿠다 내각의 3대 과제
그러나, 아베 내각의 뒤를 이어 등장한 후쿠다 내각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다. 후쿠다 내각은 아베 내각이 남겨 놓은 대내외 정책적 현안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후쿠다 내각이 극복해야 할 과제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참의원 선거의 패배와 아베 내각 붕괴의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거 참패와 아베 내각 붕괴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아베 정권의 신뢰도 상실이었다. 우선, 아베 전 수상 측근 인사들의 부패와 추문들이다. 게다가 이번 선거전을 전후해 터져 나온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어쩔 수 없었다"(큐마 후미오 당시 방위상), "알츠하이머병 환자라도 알 수 있는 이야기"(아소 다로 당시 외상) 등 각료들의 실언이 이어졌다. 큐마 후미오 방위상은 결국 사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두 번째로는, 제1야당인 민주당이 지난 5월, 정부가 5,000만 명의 연금 기록을 분실한 사실을 폭로하면서 아베 정권의 신뢰도가 급락했다. 허술한 연금관리, 국민이 납부한 연금을 착복한 중앙과 지방 관료들의 비리는 2007년 일본 사회의 가장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사회와 마찬가지로 일본에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회오리가 몰아치면서 일반 국민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미래에 대한 불안정성의 문제가 되었는데, ‘때마침’ 연금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후쿠다 내각으로서는 '정치인들과 관료들의 정치자금과 부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리고 '연금 부실관리와 연금 횡령 등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최대의 현안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고이즈미 내각 시기에 강행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여파로 '격차사회(隔差社會)'- 한국에서 보면, 양극화 -가 심화되고 있는데, 연금문제와 정치인들과 관료들의 부패, 정치자금 문제까지 겹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 두 가지 문제들은 후쿠다 내각의 입장에서도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없는 난제 중의 난제라는 점에서 어려움이 있다. 정치자금 문제는 일종의 '판도라의 상자'같은 것이라서 단번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고, 연금문제는 일본 관료체제의 '부조리'가 응축된 문제이기에 이 또한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선거 참패와 아베 내각 붕괴의 훨씬 근본적인 이유는 아베 내각의 보수주의에 입각한 ‘정체성의 정치’가의 ‘약발’을 다했다는 점에 있다. 아베 총리는 취임 초부터 고이즈미 전 총리와 자주 비교되곤 했다. ‘경제 개혁’, ‘정치개혁’이라는 브랜드를 내세운 고이즈미 전 총리에 비해 뚜렷한 색깔도 없고 콘텐츠도 약하다는 비판이었다. 이에 대한 아베 총리의 대응 방식은 '강력한 우경화 드라이브’였다. 작년 연말부터 이어진 교육기본법 개악, 방위성 출범,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법안 강행처리는 대표적인 예이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입장과 '북한 때리기(North Korea Bashing)'의 지속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러나, 아베의 ‘정체성의 정치’는 더 이상 유권자들을 움직이지 못했다. 선거 내내 "아름다운 나라로"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면서, 전후체제로부터의 탈피를 통한 '새로운 나라 만들기'라는 거시적 국가프로젝트를 제안했지만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특히 아베 총리는 선거 막판의 가두연설에서 "아베의 패배를 가장 바라고 기뻐할 사람은 북한의 김정일"이라는 등 자신의 장기(長技)인 '반북의 정치'를 통해 일본 국민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반북감정을 동원하고자 했다. 그러나, 선거에서 '자민당의 패배', 내각의 '정권 장악력 상실'이라는 결과를 막지는 못했다.
후쿠다 내각 정책 변화의 가능성과 한계
오히려, 일본 국민들은 “연금법 전면 수정, 공교육의 무료화, 지방과 도시의 생활격차 해소” 등 민생 문제에 착목한 민주당의 '생활정치'의 손을 들어주었다. 고이즈미 정권 시절부터 지속된 구조조정, 민영화, 복지축소, 노동자의 비정규직화 등에 의해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보통의 시민들에게 보수적 정체성에 기반 한 아베의 '나라 만들기(国づくり)' 공약보다는 삶의 문제가 더욱 절박했던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아베 전 수상의 대외정책은 외교무대에서 일본을 고립시키고 있을 뿐이라는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대표적인 예가 미 의회에서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채택, 그리고 6자회담을 비롯한 동북아 정세의 급변이었다.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2007년 7월)는 아베 내각의 '강경한 우경화 드라이브'가 일본 최대의 외교적 후원국인 미국과도 충돌할 수 있음이 분명히 드러난 것이다.
게다가, 6자회담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납치문제 진전 없이 대북지원 없고, 납치문제 해결 없이 북일 수교 없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대북 중유지원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목록에서 삭제하려는 것도 반대했다. 이것이야말로 아베 내각이 동북아시아의 데탕트 분위기를 읽지 못한, 아니 어쩌면 아베 내각의 태생적 한계로 인해 동북아 데탕트에 대처할 수 없었던 외교적 실패였다.
후쿠다 내각의 입장에서는 정치자금과 부패문제, 연금문제에 이어 외교무대에서 고립되어 버린 일본의 위상을 재정립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된 것이다. 물론 후쿠다 수상 개인을 본다면 일본의 대외정책이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 후쿠다 수상이 중국, 한국 등 주변국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중시하는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민당 총재 경선 과정에서부터 야스쿠니 신사 참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한일, 중일 양자관계에서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아시아 중시 외교로의 전환'과 같은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다. 후쿠다 야스오 또한 보수적 정치인이며, '미일동맹을 기축으로 해서 보통국가로 나아간다'는 일본 외교의 큰 틀은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대북관계에 있어서는 변화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예측해 볼 수 있다. 일본은 납치문제를 이유로 여전히 대북 에너지․경제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지만, 10월30일 개최된 '경제․에너지 실무단(working group) 회의'에서 "북일 관계 진전에 따라 중유 지원에 동참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또한, 11월 초에는 북일 양국 정부가 비공식접촉을 재개한 바 있다. 후쿠다 내각이 단순한 '선거관리 내각', '정권연장용 내각'이라는 비아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업적'을 필요로 한다면 북한과의 전격적인 협의 진전을 도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전격적 결단에는 상당한 리더쉽이 필요하다. 1970년대 초 미국을 앞지른 전격적인 중일수교는 다나카 수상이라는 정치거물의 리더쉽이 있었고, 고이즈미 내각 시절 두 번에 걸친 북일 정상회담도 고이즈미 전 수상의 '헨진(變人, 특이한 사람)'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개인적 성향과 대중적 인기에 기반 한 리더쉽이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후쿠다 수상에게서 그와같은 리더쉽을 기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대중들에게 만연된 반북정서와 그에 편승한 보수적․상업적 매스미디어, 그리고 반북으로 표를 만들고자 하는 정치인들까지 감안한다면 대북정책 변화의 폭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일본의 대북정책 변화의 추동력은 일본 국내정치의 유동적 상황과 외부에서의 충격이 맞물리는 과정에서 찾아 올 것으로 보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북한 핵문제의 해결이 진전을 보이고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진척된다면 일본의 대북정책 변화 목소리가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대연립 제안 '해프닝(?)'
이 와중에 지난 11월2일 하루 동안 자민-민주 대연립 '해프닝'이 드라마틱하게 진행되었다. 후쿠다, 오자와 당수회담에서 논의된 것으로 알려진 '대연립 구상'은 인도양에서 해상자위대가 미군에 대해 급유활동을 하기 위한 '신법(新法)' 제정과 연금문제 등 산적한 국내 문제 해결을 위한 돌파전략(breakthrough strategy)의 차원이었다. 특히, 인도양에서 미군에 대한 해상급유 활동을 뒷받침해 온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의 연장, 혹은 새로운 법적 근거로서 신법 제정 문제는 아베 전 수상이 사임 할 때, 그 문제 해결이 난항에 빠진 것을 사임의 첫 번째 이유로 제시할 정도로 최대 쟁점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공식적인 거부로 무산되었다.
한편, 이 회담 과정에서 분명한 거부입장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동감을 표해버린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당수는 당대표 사임을 표명했다. 이 해프닝은 단순히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에는 의미심장하다. 후쿠다 수상에게, 실제로 대연립의 의사가 있었는가를 불문하고 민주당을 들쑤셔놨고 무엇보다도 미국에 대해서는 미국의 '대테러 전쟁' 지원을 위해 일본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아베 전 수상이 돌연 사임한 결정타는 '테러지원국 목록에서 북한을 삭제하는 것과 납치문제를 연계하는 것에 대한 미국의 비토', '미군에 대한 인도양 급유활동의 지속에 대한 강력한 압박'이었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좀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아베로는 안될 것 같다는 판단 속에서 미국이 사실상 낙마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정치권 주변에 나도는 풍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자민당은 미국의 대테러 전쟁 지원 지속 여부는 대미 외교의 지렛대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참의원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는 민주당은 인도양과 이라크에서 자위대를 철수시킨 뒤 자위대의 해외활동에 대한 포괄적 원칙을 다시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자민당은 이미 시한이 만료되어버린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을 대체하는 신법 추진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그 전망이 밝지 않다. 국회 의사일정은 공전(空轉)을 거듭하고 있다.
'중의원 해산, 조기총선'(?)
그렇기 때문에, 일본 국내외에서는 중의원 해산과 조기총선 밖에 선택지가 없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자민당도, 민주당도, 공산․사민 등 야당들도 그에 대해 대비를 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중의원 해산과 조기총선이 현실화될지, 현실화된다면 언제일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자신 있는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자민당도 민주당도 조기총선의 결과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참의원 선거 직후와 아베 내각의 퇴장을 계기로 '조기 총선'의 기치를 올렸던 민주당도 후쿠다 내각의 안정된 지지율과 국회 공전, 대연립 '해프닝'등을 경과하면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당대표의 사의 표명은 민주당을 포함한 정치권 전체를 뒤흔들어 새판을 짜기 위한 '승부수'라는 분석도 있다. 1980년대 말, 일본 정치권의 '빅뱅'을 주도한 오자와 이치로가 무언가 꿍꿍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하나도 분명한 것은 없다. 그리고, 이러한 불확실성은 '자민-민주 보수 양당체제'의 불확실성에 기인하고 있다. 공산․사민 혁신정당의 '몰락', 자민당 내 '일본 네오콘'의 부상과 후퇴, 미국식 민주당을 지향하겠다는 애초 창당 정신과는 달리 '잡탕 정당'이 되어버린 민주당의 좌충우돌. 일본 정치에 있어, 현재의 국면은 기회일까 도전일까?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추진, 연말의 대선과 새로운 정권의 등장, 미국 대선이라는 정치일정을 맞이하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도, 일본의 정치변동은 남의 일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기회일까 도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