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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 영화 <색, 계> 다시 보기

DemosJKlee 2008. 1. 27. 23:42

2007년에 가장 잘못 읽혀진 인물 - 리안(李安)

2007最被誤讀的人物

추리번(邱立本)

『亞洲週刊』 21권 51기, 2007년 12월 30일

 

리안의 영화 『색, 계(色, 戒)』는 정치적 스펙트럼의 양 극단에 있는 집단들의 반응을 불러왔다.

중국대륙의 좌파에 의해서는 ‘한간문예(漢奸文藝)’라고 지적을 받았으며,

타이완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에 의해서는 ‘타이완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사실 그는 민진당(民進黨), 공산당 및 국민당의 역사담론을 뒤집었으며,

또한 성애(性愛)라는 판에 박힌 인상과 장아이링의 원작소설을 뛰어넘어, 정밀하게 가공된 문화 반지를 만들어서

전세계 중국인들의 마음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2007년 말에 『아주주간(亞洲週刊)』 편집부에서 그 해의 풍운인물(風雲人物)을 선정할 때 가장 먼저 나의 뇌리를 스친 사람은 리안(李安)이었다. 그러나 내부의 ‘브레인스토밍’ 회의를 거친 뒤에 리안은 단지 ‘풍운인물’일 뿐만 아니라 풍운인물 가운데 다양한 세력들에 의해서 잘못 읽혀진 인물임을 발견하였다. 따라서 『아주주간』은 최종적으로 ‘2007년에 가장 잘못 읽혀진 인물’이라는 말로 지난 1년 동안의 리안을 표현하기로 결정하는데, 나는 이것이 보다 정확한 해석이며 그가 창조한 문화현상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

 

1954년 타이완에서 출생한, 장시성(江西)이 원적(原籍)인 이 영화감독은 2007년에 영화 『색, 계(色, 戒)』를 출품하자마자 매우 격렬한 문자의 포화 속에 빠졌다. 중국대륙, 타이완, 홍콩 및 전세계 중국인사회는 리안을 비판하여, 그가 ‘한간(漢奸)의 앞잡이’라거나 ‘문단의 조사(祖師)인 장아이링(張愛玲)을 왜곡시켰다’고 하였다. 중국대륙 좌파의 중진 사이트인 유토피아[烏有之鄉]는 리안을 공격하는 글을 게재하였으며, 『체게바라』극본을 쓴 황지쑤(黃紀蘇)는 “중국은 이미 서 있고, 리안 그들은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다”라고 말하였다. 베이징의 ‘대학생농촌봉사자원자’라고 자칭하는 몇몇 사람들은 심지어 연명으로 문화부(文化部)에 글을 올려 ‘한간의 문학인 『색, 계』를 엄중하게 추방하라’고 요구하였다. 타이완 녹영(綠營)과 타이완 독립을 주장하는 언론매체는, 리안은 단지 ‘중국인의 항전(抗戰) 이야기’를 촬영한 것이라고 하였으며, 그는 ‘대중국(大中國) 정서’를 가지고 있고 ‘타이완을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아마 한 편의 영화가 이렇게 서로 다른 정치적 문화적 스펙트럼의 양 극단으로부터 반응을 불러일으킨 적은 아직 없었을 것이다. 통속잡지와 많은 관객들에게 ‘애로틱’하고 ‘음탕한’ 영화로 보여진 이 영화는 사실 심오한 역사와 섬세한 감정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민진당(民進黨), 공산당 및 국민당 권력자들의 오랫동안의 역사서술을 뒤집고, 관객의 눈에 비치는 ‘정사장면’의 한계를 뛰어넘었으며, 장아이링의 원작소설의 틀을 더욱 초월하여 찬란하게 빛나는 『색, 계』를 만들어내었다.

 

리안은 2006년에 『브로크백 마운틴[斷背山]』으로 아카데미감독상을 수상하여 국제적인 감독으로의 위상을 굳혔다. 그러나 그는 2007년의 『색, 계』에서 비로소 그의 재능과 감정을 최고조로 발휘하였다. 그는 개인관계의 가장 친밀한 부분인 성애(性愛)의 차원인 ‘소서사(小敍事)’ 가운데에서 국가와 시대의 운명이 뒤섞인 ‘대서사(大敍事)를 표현하여,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을 증명하였으며, 영화를 하나의 인문광속(人文光束)으로 만들어 역사의 맹점을 비추고 또 인성(人性)의 은미한 부분을 조명함으로써 신기하게도 계몽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2006년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아카데미상을 들고 타이완으로 돌아온 리안은 천수이볜(陳水扁)총통을 접견하고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2007년에 『색, 계』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고 타이완으로 돌아왔을 때, 정부측의 접대를 받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부 녹영(綠營) 매체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이 매체는, 그의 영화는 단지 ‘중국인의 영화’일 뿐으로, 영화 속에서는 보통어, 광둥어, 상하이어, 영어로 말하고 있지만 타이완어로 말하고 있는 장면은 없다고 하면서, 그 때문이 이 영화는 ‘타이완인의 영화’가 아니라고 하였다.


녹영이 두려워하는 중국의 슬픔[中國悲情]

 

사실 녹영과 타이완의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의 『색, 계』에 대한 두려움은 이 영화의 중심이 8년 항전시기, 즉 전세계 중국인사회에 응어리진 ‘중국의 슬픔’이라는 데 있다. 영화는 그 시대의 분위기를 재현하여 많은 중국인들의 마음에 충격을 주고 심금을 울렸다. 이 영화는 1940년대 항일전쟁이 시작된 지 3년이 지난 시점으로 이미 중국영토의 절반이 함락되었으며 일본군대가 홍콩을 침략하기 1년 전이 그 배경이다. 영화에서는, 여주인공 탕웨이(湯唯)가 홍콩대학의 루여우탕(陸佑堂)에서 연출한 연극에서 ‘중국은 망하지 않는다’라는 구호를 외치자 극장 내에 있는 관중들이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일어나서 ‘중국은 망하지 않는다’라고 외쳤다.

 

이것은 당연히 일반적인 정치구호가 아니라 당시 수 억 중국인의 운명과 관계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일본군이 한 걸음 한 걸음 압박해 오고 있는 상황 하에서 중국은 전 국토가 함락될 운명에 직면하여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이에 이어서 상하이 점령지역의 장면들이 펼쳐졌다. 상하이 주민들은 와이바이뚜교[外白渡橋]를 건널 때마다 일본군인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해야만 했으며, 탕웨이가 극장에서 헐리우드 영화를 볼 때에도 일본황군(日本皇軍)의 선전필름을 보아야만 했다. 대학에서 수업을 할 때에도 일본어를 강제로 공부해야 하였다. 이러한 ‘망국노(亡國奴)’의 심경과 체득이 지금은 이미 희미해진 ‘중국의 슬픔’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이러한 ‘중국의 슬픔’은 오늘날 타이완의 집권세력들의 정치담론에서 강조하는 ‘타이완의 슬픔[台灣悲情]’을 초월하여, 역사적 진실을 되돌리고 또 타이완문제의 근원을 되돌려서, 전세계 관객들이 당시의 역사를 다시 복습하도록 하고 수 억 명의 중국인들이 일본군국주의 압제 하의 상황을 이해하도록 해 주었다. 일부 타이완인들이 극구 찬양하는 일본의 식민통치는 수많은 중국인들의 저항을 받았으며, 항전에서의 최종적인 승리를 통하여 타이완은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수 억 명 사람들의 ‘중국의 슬픔’은 사실 일본식민통치와 국민당철권통치를 받은 1,2천만 명에 달하는 타이완 민중의 ‘타이완의 슬픔’과 함께 모두 시대적 비극이었다. 그러나 만약 ‘중국의 슬픔’이 존재함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오늘날 대륙과 타이완 관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고, 전세계 중국인사회가 왜 타이완의 독립을 반대하는 지를 이해할 수 없으며, 타이완섬에 살면서 ‘중국의 슬픔’을 몸으로 느끼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왜 타이완의 독립을 반대하는 지를 이해할 수 없다.

 

리안은 영화 밖에서는 정치에 관하여 말을 한 적이 거의 없다. 그러나 타이완의 금마장(金馬獎)영화제에서 『색, 계』로 ‘최우수감독상’, ‘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 등 많은 상을 받고 소감을 말할 때, 리안은 타이완은 반드시 문화전통을 중시해야 하며 자신도 ‘중국영화’를 위하여 노력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몇 마디 말로써 그의 중화문화의 정서를 모두 표현하였으며, ‘문화중국’을 추구함을 보여주었고 또 그의 ‘타이완정[台灣情]’과 ‘중국심[中國心]’이 결코 충돌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타이완인’이라는 정체성과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은 공존할 수 있으며 서로 보완될 수 있다. 이는 마치 많은 ‘홍콩인’과 ‘상하이인’의 자아정체성과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이 터럭만큼도 충돌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것도 당연히 타이완 독립의 담론을 뒤집는 것이다. 왜냐하면 타이완 독립의 담론은 ‘타이완인’은 ‘중국인’이 될 수 없으며, 타이완섬에 있는 ‘중국인’들은 모두 ‘중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이완섬의 극장을 붉게 달군 『색, 계』는 은막에서 강렬한 메시지를 보내었다. 즉 ‘중국의 슬픔’은 잊을 수 없는 것이며 중화민족주의의 정서는 왜곡시키거나 감출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었다.

 

그러나 리안의 『색, 계』는 사실 공산당의 담론도 뒤집었다. 영화 속의 인물들은 탕웨이와 왕리훙(王力宏)부터 중통특무(中統特務, 중국공산당중앙집행위원회조사통계국의 구성원)의 우두머리인 ‘오영감[老吳]’ 역할을 연기한 퉈쭝화(庹宗華)까지 모두 공산당이 아니며 오랫동안 공산당 선전부서로부터 공격을 받던 ‘국특(國特)’이다. 또한 전선으로 가는 군대의 모든 차량에는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滿地紅旗)를 나부끼는 국군(國軍)이다. 탕웨이의 학우는 “네가 이기고 돌아오면 나는 너에게 시집가겠다!”라고 고함을 쳤다. 이것도 당연히 항전사관의 변화와 관계된다. 갈수록 많은 중국대륙의 출판물과 특히 인터넷 상의 글들이 국민당군대의 ‘정규전’이 큰 공헌을 하였음을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또 8년의 항전기간 동안 국군 가운데 200명의 장군이 전사하였으나 공산당은 겨우 2명의 장군이 희생되었음을 발견하였다. 최근 중국대륙의 영화와 텔레비전은 국군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표현하기 시작하였으나 『색, 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공산당의 공식적 담론을 완전히 뒤집었다. 극 중에서 국민당의 부정적 인물이었던 사람들, 즉 『지혜롭게 위호산을 취하다[智取威虎山]』의 ‘쭤산댜오(座山雕)’, 『샤자방(沙家浜)』의 ‘댜오더이(刁德一)’부터 『장제(江姐)』 속의 ‘쉬펑페이(徐鵬飛)’까지 모두 리안의 『색, 계』에서 이미지가 바로 잡혀져서 일약 대의를 위하여 활동한 늠름한 중통특무가 되었다. 이 영화에서는 탕웨이, 왕리훙 혹은 오영감을 막론하고 모두 자신을 희생하여 적을 상대하면서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자들이다. 이는 반세기 동안 더렵혀졌던 국민당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로잡은 것으로 역사적 진실을 되돌리고 공산당의 담론을 뒤집은 것이다.

 

리안의 『색, 계』는 또 왕정위(汪精衛)정권에 대한 국민당의 오랜 담론도 뒤집고 왕정위정권의 회색지대를 발견하였다. 즉 ‘한간(漢奸)’이라는 단순한 꼬리표로 5년의 역사를 가진 정권을 말살하여 국민당과 왕정위정권 사이의 비밀관계를 탐구하지 않거나 왕정위정권 통치 하의 일본점령지역 국민들의 삶의 실상을 깊이 고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량차오웨이(梁朝偉)가 연기한 ‘이모청(易默成)’은 사실 당시 왕정위정권의 우두머리인 딩모춘(丁默邨)과 장아이링의 전 남편인 후란청(胡蘭成)을 융합해 놓은 인물이다. 리안은 매우 세밀한 역사적 고증을 거쳐 역사의 현장을 재현하였다. 과거 왕정위정부의 깃발(중화민국국기에 노란색 삼각형을 덧 댄 깃발)을 재현하였으며,  왕정위정부 고위층이 손중산(孫中山)의 정치에 대하여 인정한 부분도 재현하였다. …… 이 영화는 오랫동안 국민당에 의해 닫혀 있던 역사의 대문을 열고, 관중들이 량차오웨이의 배경을 따라 국민당(내지 공산당)에 의해 가려지거나 단순화된 역사를 찾을 수 있도록 하였다.

 

사실 중국어인터넷세계에서는 최근에 이미 왕정위정부를 연구하는 역사열풍이 일어났다. 린쓰윈(林思雲)이 쓴 『왕정위의 진실[真實的汪精衛]』(바이두(百度)에서 검색가능하다)은 기존 연구의 공백을 메우면서 국민당과 공산당에 의하여 ‘죄가 너무 커서 용서할 수 없다[十惡不赦]’고 간주된 정치인물을 인성(人性)의 차원으로 되돌려놓았다. 그밖에 자오우�(趙無眠)이나 싸쑤(薩蘇) 등 인터넷 상의 작가들의 글은 모두 항전시기 국민당과 공산당 양측이 오랫동안 은폐하였던 측면을 서술하였다.(당국에 의해 삭제되지 않았다) 싸쑤가 쓴 『나라는 망하여도 강산은 그대로이다 - 일본 측 사료를 통해 중일항전의 비사를 파헤치다(國破山河在 - 從日本史料揭秘中日抗戰)』는 2007년에 중국대륙의 서점가에서 인기를 누렸다. 이 책은 중국근대사연구에 더욱 다원화된 해석을 하도록 해주었는데, 이른바 ‘정치정확(政治正確)’에 코를 꿰어서 끌려가지 않았고, 스스로 정의를 부르짖는 ‘분청(憤靑)’이나 혹은 신구 ‘좌파’에 의해 좌우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정치는 일시적인 것이고 문화와 역사의 참된 모습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성(人性)은 아직 단절된 적이 없음을 발견하다

 

사실 리안이 더욱 주목하였던 것은 인성의 참된 모습으로, 시대의 분위기를 재현하여 단절된 적이 없었던 인성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가 영화를 촬영하기 전에 배우들을 모아놓고 시킨 훈련은 ‘리안학교(李安學校)’로 여겨질 정도이다. 그는 탕웨이, 량차오웨이, 왕리훙 등의 배우들에게 장아이링의 원저 『색, 계』를 읽도록 하였고, 장아이링의 전 남편 후란청의 작품을 읽도록 하였으며, 왕정위정부의 관리였던 진슝바이(金雄白)가 쓴 『왕정위정권의 시작과 몰락[汪政權的開場與收場]』이라는 책도 읽도록 하였다. 그는 그의 예민한 예술적 감각을 통하여, 사람들이 권력과 시대의 틈바구니 속에서 서로 다른 능력을 발휘하여 인생무대에 다양한 극적인 긴장감을 조성함으로써 인생무대를 무한히 매력적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색, 계』의 매력은 성애(性愛)를 초월하여 존재한다. 영화개봉 전에 통속잡지들은 모두 영화에 나오는 ‘클립처럼 몸을 구부린’ 곡예식의 정사장면에 대하여 흥미진진하게 서술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본 후에 이것이 섹스영화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암울하고 망국적인 시대의 전환점에서 침대 위의 유희가 아무리 격렬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두 사람만의 도박과 운명이었으나, 『색, 계』의 배경은 수 억 중국인이 망국노로 전락되어 가던 시기의 도박과 운명의 궤적이었다.

 

한 명의 아리따운 여대생이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희생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위험의 길로 나아간다. 그녀는 거의 성공할 뻔하였으며, 거물급 한간이자 특무 우두머리의 감정을 흔들리게 하였다. 그녀는 그 특무가 침대 위에서 자신과 몸을 섞도록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정신까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 특무는 사람을 죽이고 포로를 심문할 때 사방이 온통 피비린내가 나는 상황 하에서 그녀의 아리따운 모습을 떠올리고 그녀의 냄새를 맡는다. 그러나 그 또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아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가 일을 달성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녀는 두려움과 통한 속에서 정욕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또 사랑이라는 환영 속으로 빠져들며 결국 죽음으로 그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 사실 리안은 정사라는 술잔을 빌려 역사와 인성에 대한 울분을 표출하였으며, 두려움 속의 정사와 정사 속의 두려움을 표현하였다. 이것은 또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오싱젠(高行健)의 『한 사람의 성경[一個人的聖經]』 속의 주제로서, 성애와 두려움이라는 인류의 두 가지 가장 큰 감정동력 사이의 변증관계를 표현한 것이다.

 

리안은 또 장아이링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28쪽에 불과한 원작소설은 사실 단지 이야기의 뼈대에 불과하다. 리안과 극작가인 왕후이링(王蕙玲)과 제임스 샤머스(James Schamus)가 함께 만든 극본은 피와 살이 되는 세부적인 부분과 장면들을 대거 보충하여 이야기를 더욱 입체적이고 풍만하게 만들어 전세계 관객들의 심금을 더 잘 울리도록 하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리안의 영화는 장아이링의 소설보다 더 많은 역사적 공간과 사고의 공간을 드러내보였으며 인성의 다툼과 충돌을 더 잘 표현하였다는 점이다. 극본 상의 많은 멋진 대화들은 원작 소설을 뛰어넘었다. 예를 들어 탕웨이와 량차오웨이가 일본군이 운집해 있던 한 일본식당에서 약속을 하였을 때, 탕웨이는 일본군관의 성희롱을 받아넘긴 뒤에(그들은 아마도 그녀가 몸을 파는 여자라고 오해하였을 것이다) 두 사람만 있는 방에 들어가서, “나는 당신이 왜 나를 여기로 데려왔는지 알고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나를 창녀로 여기기 때문이다”라고 하자, 량차오웨이는 “내가 당신을 여기로 데리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창녀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내가 당신보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대화는 ‘한간’으로서 량차오웨이의 내심세계를 잘 드러내어 주고 있으며 또한 서로를 아껴주는 두 사람의 감정을 잘 드러내고 있는데, 이는 원작소설이 가지지 못한 극적인 긴장감이기도 하다.

 

리안의 『색, 계』는 전세계 중국인의 문화현상이다. 그는 억압되고 망각된 역사의 단편을 찾아내어 장아이링의 엉성한 줄거리를 정밀하게 가공된 문화 반지로 만들어 전세계 중국인의 마음의 손가락에 끼워주어 하나의 문화 전기(傳奇)를 창조하였다. 그는 영화가 가진 감화력을 이용하여, 세 정당의 역사담론을 뒤집었으며, 성애물(性愛物)이라는 판에 박힌 인상과 장아이링의 원작의 한계도 뛰어넘었다. 그는 2007년에 가장 잘못 읽혀진 인물이며 또한 시대의 비밀을 가장 잘 읽어낼 수 있었던 인물이다.

 

<출처> 서남포럼 http://image.postman.co.kr/Check.html?TV9JRD0xMjk0MzY5MzQ5&U1RZUEU9TUFTUw==&TElTVF9UQUJMRT1FQkFEMDE2MA==&UE9TVF9JRD0yMDA4MDEyNzEwMDAwMDM0NTU5Mw==&VEM9MjAwODAyMDM=&S0lORD1D&Q0lEPTAwNg==&URL=http://www.seonamforum.net/newsletter/view.asp?idx=1450&board_id=16&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