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와 메모, 스크랩 등

새로운 진보정당에 대한 박노자 선생님글

DemosJKlee 2008. 2. 13. 18:26

<간단한 메모 by 이준규>

 

- 사실 박노자 선생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한 예로, 민족주의와 관련해서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서유럽의 특정국가를 제외하고, 세계적으로 민족주의적 정향과 좌파 혹은 진보가 공존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던가.

-  특히, 한반도처럼 좌절된 근대화의 역사(근대국가 건설)를 갖고 있는 경우에는 민족주의가 어느정도 좌파 혹은 진보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3세계 민족해방 운동이 '반체제운동'의 중요한 한 축이었던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 그러나, 문제는 민족주의가 참으로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남근주의나 가부장주의와 친화성이 있고, 우익적 동원이데올로기와도 친밀하며, 무엇보다도 '현실사회주의 붕괴'로 소비에트 블록이 해체된 이후 고립무원이 된 '잔존사회주의 국가들'에 있어서는 탈냉전기 '체제생존'을 위한 동원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수령제 사회주의'체제, '강성대국' '선군정치' 구호가 그렇고, 중국의 '중화주의', '대국주의'(그것이 화평굴기 혹은 다른 무엇으로 표현되든)도 마찬가지이다. 

 - 뿐만아니라, 탈냉전과 중첩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시대의 도래는 시장, 경쟁(력), 개발과 선진화 등과 같은 시장주의적 이념의 관철을 위한 '도구'로서 민족주의가 활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장주의자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국가'의 힘을 빌어 민중들을 시장으로 몰아부치고 있는 것, 특히 '국가경쟁력'이라는 조어는 그 과정에서 탄생한 모순적이면서도 한편 필연적인 산물이다.  

 - 그러나, 한반도의 통일을 지향하는 '운동'이 그토록 단순한 정향들만을 내포하고 있었다고는 보지 않는다. 민족주의적 '통일운동', 혹은 '반미자주 운동'이 남북을 통일하고 미국을 몰아내고 '우리끼리 잘먹고 잘살자'라는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 분명, 그 기저에는 한반도 민중을 억누르고 있는 모순과 억압의 한 축에 대한 투쟁이었던 것이라는 점이다. 

 -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민족주의에 대한 부정이나, 통일운동(혹은 통일을 위한 제반의 움직임) 혹은 그와 긴밀한 연관을 맺어왔던 반미자주 운동의 흐름이 담고 있었던 '한반도 분단체제'와의 투쟁이라는 에너지를 지금의 시대정신과 시대적 과제에 걸맞는 가치들로 전유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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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주의" 환상들과 결별해야 했던 이유 


만감: 일기장 2008/02/05 01:59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11549  
 
 어제 하루 종일 컴퓨터로 민주노동당의 임시대회를 중계방송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루어져 가는 역사를 보고 있는 일종의 "사관" (史官)의 심정으로요. 물론 이제 뚜렷해진 진보정당의 분당에 아쉬운 측면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장 지원해야 할, 이랜드 투쟁과 같은 싸움들에 과연 이제 개입할 여유가 있겠는가 라는 문제도 있고, 또 갓 태어난 진보신당이 과연 두달 밖에 남지 않은 총선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라는 걱정도 큽니다. 사무실 임대 등 가장 기초적인 사무적인 부분들이 해결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백지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커다란 부담일 것입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아주 힘들어도 조금 더 긴 안목으로 봐서는 저는 이 번의 분당이 역사적으로 필요한 - 적어도 불가피한 - 일종의 "수술"이라고 보고, 이 "수술" 직후에 한국 진보 운동이라는 환자가 생명까지도 위험할 수 있지만 결국 끝에 가서 더욱 건강해지리라고 믿고 싶습니다. 북한에 대한 고질화된 환상, "민족"과 "통일"에의 주박이라는 환부를 언젠가 어차피 잘라야 됐을 것이고, 이는 결국 한국 진보 운동의 성숙의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함께" 등 일부 당내 급진 의견 그룹들은 "종복주의", "친북주의"와 같은 용어 그 자체에 반대하더랍니다. 모든 "좌파 민족주의자"들이 이북의 모든 것들을 다 무조건 긍정하는 것도 아니고, 이북의 "지령"을 꼭 따르는 것도 아니고, 또 그들과 이북의 지배자들을 동일시하는 것 자체가 방법론적 오류라는 논리지요. 글쎄, 틀린 말이야 아니지요. '좌파 민족주의자'들이 다양하다는 사실, 즉 "위수동"을 받들고 그의 끄나풀들과 연계를 모색하는 "골수"들 이외에도 단순히 군복을 입은 양키놈들이 모조리 다 물러나고 백의배달민족들끼리 서로 뜨겁게 포옹하여 하나의 통일된 강성대국을 이루는 것을 꿈에서 꾸는 등 각종의 이채롭고 다양한 그룹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저도 인정합니다. 사실, 신채호부터 민경우까지의 한국 민족주의의 다양한 변종들을 한 번 다 함께 조명해보려는 것은 연구자로서의 저의 꿈 중의 하나이기도 하지요. 또는 제가 "악취나는 양키들이여, 물러나라!"를 마음에 새기신 분들을 사실, 어떤 인간적인 차원에서 얼마든지 이해할 수도 있는 부분도 있지요.

 

문약한 성격 탓에 무슨 액션을 취했을 것 같지 않지만, 만의 하나에 제가 레닌그라드에서 자랐을 때에 제 고향이 미군의 군사적 보호령이 되어 엘미타주 박물관 위에 그 놈의 성조기가 펄럭이었다면 정말이지 저도 한 번 테러리스트되는 꿈 정도 꾸었을 것입니다. 군복을 입은 "남"의 남성이 "나"의 곳에 침입하는 것을 혐오하는 마음이란 인지상정이 아닌가요, 특히 남성들에게 말씀이지요?

 

그래서 제 논지는, "좌파 민족주의자"들과 확실히 갈라서야 할 필요성이란, 저들이 다 김정일 아저씨의 꼭두각시라서도 아니고, 인격적으로 무슨 문제라도 있는 사람들이라서도 아닙니다. 반대로, 저들의 민족주의란 "민족"과 "국가", "국난극복"에 대한 박정희주의적 교육을 받은 대한민국의 선량한 국민으로서 어떤 특수한 계기를 맞아 (예컨대 운동권 선배와 가까워져 그에게 "의식화 교육"을 받아서) 걸리기가 아주 쉬운, 대한민국 국민들이 면역성이 많이 부족한 이념적인 "전염병"이지요. 김구와 박정희 대신에, 또는 김구와 마찬가지로 "수령님"을 "나라를 지키신 영웅", "나라를 일으키신 영웅"으로 받들면 되니까요 (참, 1946년에 김구 계통의 일군의 정치인들이 김일성을 죽이려고 이북에 자객까지 보내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이 부분을 아시고 관심을 가지시는 "좌파민족주의자"들이 거의 안계시는 것 같아요).  그러나 바로 그러기에 "좌파 민족주의자"들과의 "거리두기"가 너무나 절실히 요구됩니다.

 

대중 정치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이미지의 생산과 보급이며, 대다수의 경우에는 이 이미지는 현실과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예컨대, 이명박씨가 이야기했던 "경제 바로 잡기", '실용주의, 경제 대통령', 즉 "나라를 바로 세울 CEO"의 이미지와, 우리가 곧 처할 태심한 경제 위기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합니다. 일종의 혹세무민인데, 이는 특히 우파 포퓰리즘에서는 거의 핵심적 부분입니다.

 

"좌파 민족주의자"들의 문제는, 저들이 생산, 유포하는 이미지들의 비현실성이란 이명박 류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점입니다. 이북을 "사회주의 사회"로 보거나 "경제난 때문에 어려워졌지만 원래 대단히 진보적이고 평등한 사회이었다"고 보는 가장 심한 부류를 논외로 하고, "온건"으로 분류되는 "통일 지상주의자"만 보지요. 개성 공단 등 남한 자본의 북한으로의 침투가 통일에의 디딤돌이라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는 가장 원초적으로 남한 자본의 국제적인 저임금 무권리 노동력 착취 행위지만, 이 행위가 곧 "통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은 참 순진한 상상이 아니면 의도적인 기만입니다. 지금 이북 관료 집단이 중국 자본과 한국 자본 사이에 균형을 잡아 양쪽이 서로 견제케 하려고 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부분, 그리고 나아가서 미국 자본과 (언젠가, 일본 정치인들이 정신을 차리고, "납치" 타령 그만하면) 일본 자본을 많이 끌어들이려고 하는 부분을 보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지금도 "이이제이" 전략으로 중국과 한국을 맞부딛치게 하지만, 체제가 위기에 처해 궁극적인 "선택"을 하게 될 때에 (즉, 김정일 아저씨가 황천에 가서 그 치하에 아사한 사람들의 원귀를 만나게 될 때에) 남한보다 중국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 많은 관측통들의 예상입니다. 왜 그런가 에 대해 나중에 별도의 글에서 상론하겠습니다만, 한 마디로 그게 저들의 자본 축척 행위 차원에서 더 안전되니까요. 어쨌든 이남의 지배자들만큼이나 그 이상으로 이북의 지배자들도 "통일"을 매우 냉정하게 도구시하는 것이지요. 불필요하다는 판단이 서면 얼마든지 안할 수도 있는데, 이는 "악취 나는 양키놈"들과 하등의 관계도 없습니다. 이북에서 판단이 설 경우에는, "양키놈"들이 청진에서 기지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까지도 쉽게 나돌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 쪽과의 거래에서 자기 몸값을 자꾸 높여야 하니까요.

 

어쨌든 눈물 모르는 자본주의의 냉정한 현실을 갖고 "좌파 민족주의자"들이 "반미", "통일" 등 아무런 현실적 내용도 없는 낭만적 구호들을 외쳐대는 것은 이명박 류의 혹세무민과 뭐가 다르나요? 혹세무민에 투입되는 투자 금액과, 혹세무민에 걸려 믿어버리는 순진한 피해자들의 수야 물론 다르지요. 그런데 하는 일 그 자체가 거기에서 거기까지입니다. 그러면서도 - 역시 이명박 류와 마찬가지로 -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 저하 경향, 대학 등록금의 폭발적 인상과 학생, 학부모의 금전적 위기, 사채 피해의 지속적 확산 등 우리들의 진짜 문제들에 대한 그 어떤 현실적인 대책도 "좌파 민족주의자"들이 내놓지도 않고 논의하지도 않습니다. 그들과 정당을 같이 한다는 것은 애당초부터 진정한 좌파들에게 자기 모순이 아니었을까요?

 

하여간 양쪽에 부담이 되는 "동거"는 드디어 끝납니다. 이제는 "구호의 시대"를 뒤로 하고, 점차적 의료, 교육 무상화, 중소기업인을 위한 저이자/무이자 공공 금융 도입, 용역화/외주화의 법률적인 금지 등등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성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