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의 사회과학

이행의 시대를 위한 좌파정치학-이매뉴얼 월러스틴, 먼슬리 리뷰 2002년1월

DemosJKlee 2008. 2. 20. 18:17

이행의 시대를 위한 좌파 정치학
(A Left Politics for an Age of Transition)


이매뉴얼 월러스틴 (by Immanuel Wallerstein)


먼슬리 리뷰 200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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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뉴얼 월러스틴은 경제학, 역사체제와 문명 연구를 위한 페르낭 브로델 센터(Fernand Braudel Center)를 이끌고 있으며 [리뷰]의 편집인인 동시에 예일대학의 수석연구원이다. 그의 최근 저서에는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말: 21세기를 위한 사회과학] (미네소타대학 출판부, 2001)과 [사회과학 다시 생각하기: 19세기 패러다임의 한계들] (템플대학 출반부, 2001)이 있다. 이 글은 2001년 4월13일 뉴욕시에서 열린 사회주의 학자 회의(the Socialist Scholars Conference)에서 연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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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전인 1999년 나는 요즘의 좌파 정치학에 대해 '새 정치학을 위한 회의'에서 발언한 적이 있다.1) 그 때 나는 현재 세계 상황을 이렇게 요약했다. (1) 500년을 지속한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사상 처음으로 진정한 체제 위기에 빠져 있으며 우리는 이행의 시대를 맞고 있다. (2)그 결과는 본래 불확실하지만, 그럼에도 500년만에 처음으로 진정한 근본적 변화의 전망이 있으며, 그 변화는 진보적일 수는 있지만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다. (3) 현재 이 시점에서 세계 좌파의 근본 문제는, 19세기부터 발전시켜온 세계 변혁 전략이 이제 누더기가 됐으며, 불확실하고 허약하며 대체로 약간 침체된 채 아직까지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 세가지를 전제로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 전제에 대해서는 이미 길게 언급한 바가 있으며 여기서는 다시 논할 여유가 없다.2) 그리고 이 전제가 암시하는 앞으로 10~20년간 좌파의 전략이 무엇인지 물을 것이다.

 

 이 전제가 암시하는 첫번째 점은, 우리가 전세계적으로 패배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소련의 붕괴는 전세계 좌파의 재앙은 아니었다. 이걸 후퇴라고 불러야 할지도 자신이 없다. 더 이상 유용하지 않은 레닌의 전략과 수사학의 걸림돌로부터 우리가 해방됐다. 또 세계 자유주의 중도세력은 엄청난 부담을 떠안게 됐다. (그들이 부담을 안게 된 것은) 레닌주의 운동의 조직적 지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레닌주의 운동은 오랫동안 레닌식 개발주의의 선물에 대한 믿음을 통해 "빛나는 미래"를 보장함으로써 대중적 급진주의를 억제해 결과적으로 자유주의를 지원한 꼴이다.3)

 

 신자유주의와 이른바 지구화의 전세계적 공세 또한 우리의 가능성을 없애버리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그것의 상당수가 눈앞의 가치하락(디플레이션)을 견뎌낼 수 없는 거품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것이 독소를 키워왔고 앞으로도 키울 것이기 때문이다. 세번째로, 세계 자본주의는 "신 경제"를 향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잘못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시간과 공간의 제약 때문에4), 내 견해를 논증하지 않고 단지 요약하도록 하겠다. 자본은, 레닌주의의 붕괴와 냉전의 종식에 따른 정치적 어려움뿐 아니라, 자본축적 능력을 회복할 수 없게 만드는 세가지 구조적 점근선(漸近線, asymptotes)까지 맞닥뜨리고 있다. 이 세가지는 (1) 전세계가 만드는 총 가치 대비 노동력 비용의 지속적 증가를 막을 수 없게 하는 세계의 탈농촌화 (2) 투입비용의 지속적 외부화를 통한 비용 절감을 제약하는 환경 오염과 자원의 재생 불가능성 등 생태적 제약 (3) 세계 총가치 대비 세금의 비중이 꾸준히 늘게 하는 요소인 건강, 교육, 생계보장을 위한 (공공) 지출 요구의 압력이 강해지는 것으로 확인되는 세계 민주화의 진전이다.

 

 확실히, 자본은 언제나 이런 구조적 압력을 줄이려고 애쓴다. 지난 20년동안 벌어진 신자유주의 공세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러나 장기 곡선은 상승하는 듯하다. 그들은 주기적으로 이 압력을 감소시키는 데 성공하지만, 언제나 이 감소 폭보다는 다음번 상승 폭이 크다. 여기에 맞서기 위해서 그들은 '대안이 없다'고 설교한다. 저항의 정치적 의지를 감소시키려고 말이다. 이는 새로운 것도 아니다. 개리스 스테드먼 존스(Gareth Stedman Jones)는, 19세기 후반 영국의 상대적 정치 안정을 설명하는 시도로써, 안정이 "자본주의의 명백한 불가피성"과 "명백한 확고함" 탓이라고 주장했다.5) 1차 세계대전은 이런 정서를 적어도 상당 기간 없애 버렸다. 이런 정서가 지금 다시 살아나고 있거나, 적어도 우파가 되살리려고 시도하고 있다.

 

 21세기 좌파의 전략을 내다보려면, 먼저 과거 좌파의 전략을 상기해야 한다. 좌파의 전략은 19세기 후반에 개발됐으며 20세기 하반기(상징적이게도 1848년부터 1968년까지)에는 어느 정도 거부됐다는 게 명백하다. 이는 이른바 2단계 전략이었다. 먼저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이어 세계를 변혁시킨다는 것이다. 이 전략에 대해서는 다음의 세가지를 지적해야 한다. (1) 이는 당시 가능한 유일한 전략이었던 것같다. 다른 전략의 운동은 국가권력을 활용해 간단히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2) 이 전략은 모든 주요 운동 곧 민족해방운동뿐 아니라 다양한 세계 사회주의운동, 사민주의와 공산주의가 모두 채택한 것이었다. (3) 이 전략은 성공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세가지 운동세력 모두는 1945년에서 1970년 사이에 거의 전세계에서 권력을 잡았고, 그 가운데 무엇도 세계를 바꾸지 못했다. 그 결과 지금 이 전략에 대한 깊은 환멸이 이 전략과 나란히 존재하게 됐고, 그 사회심리적 결과인 심각한 반 국가주의도 나타났다.6)

 

 1968년 이후 신, 구 좌파 등 다양한 운동이 수많은 대안을 시도해봤으며, 반체제 운동간의 관계에도 건강한 변화가 나타났다. 건강하다는 것은, 과거의 서로를 죽이는 식의 비난과 사악한 투쟁이 상당히 완화되고, 우리가 과소평가하고 있는 긍정적인 발전이 있었다는 측면에서다. 나는 대안의 전략을 더 발전시킬 수 있게 해주는 몇가지 노선을 제안하고 싶다.

 

 (1) 포르투 알레그레(Porto Alegre) 정신을 확장하라. 이 정신이 무엇인가? 나는 이를 이렇게 정의하겠다. (a) 지적 명료함 (b) 인민들의 삶에 즉각적으로 유용한, 대중적 동원에 기초한 전투적 행동 (c) 더 장기적이고 더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주장의 제기 시도, 이 세가지를 추구하기 반체제운동의 다양한 분파가 위계질서 없이 통합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포르투 알레그레 정신에는 세가지 결정적인 요소가 있다. 하나는 제시 잭슨 목사가 "무지개 연합"이라고 부른 것과 어느 정도 유사한 느슨한 구조다. 또 다른 하나는 단순한 상징 이상으로 세계의 남과 북 모든 지역에서 시작된 전세계적 운동이 모이는 구조이다. 마지막으로 지적으로(이는 다보스 정신과 공감대를 찾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1968년의 운동이 전투적이었다는 의미에서) 전투적이다. 물론 우리는 느슨한 구조의 세계 운동이 어떤 진정한 의미에서 통합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수단을 통해 투쟁의 전술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튼 바로 그 느슨함은, 중도 세력의 마지못한 중립적 태도를 억제하기도, 그렇다고 재촉하기도 어렵게 만든다.

 

 (2) 방어적 선거전술을 사용하라. 세계 좌파가 느슨하게 조직된 의회 밖의 전투적 전술을 사용한다면, 곧바로 선거 절차에 대해선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선거가 결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둘다 진퇴양난에 빠지는 일이다. 선거의 승리는 세계를 변혁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선거 승리를 무시할 수는 없다. 선거의 승리는 세계인이 이미 확보한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게 보호하는 데 필수적이다. 우파가 세계의 정부를 통제함으로써 입게 되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선거 전술을 순전히 실용적인 문제로 만든다. 국가권력 장악을 세계 변혁의 방법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면, 언제나 차악의 문제가 남게 된다. 무엇이 차악인가 하는 결정은 사안별로, 때에 따라 내려야 한다. 이는 부분적으로 선거제도에 의존하게 된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 제도는, 두쪽이 나눠 갖는 제도나 비례대표권이 유지되는 제도와 다른 형태로 다뤄야 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규칙은 현재 프랑스에서 제기되고 있는 "다수의 좌파 세력"(plural left)이 되어야 한다. 이를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프렌테 암플리오(frente amplio)라고 불러왔다. 세계 좌파들 사이에는 다수의 당과 당 내부의 여러 분파라는 전통이 있다. 이 전통의 대부분은 지난 시기의 유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이 전통에 따라 투표한다. 국가의 선거가 실용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실용적으로 계산해 51%를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이 전통을 존중하는 연합체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승리했다고 거리에서 춤출 일은 없다! 승리는 순전히 방어적 전술일 뿐이다.

 

 (3) 끝없이 민주화를 추구하라. 국가 차원에서 가장 대중적인 요구는 "더 많은" 곧 더 많은 교육, 더 많은 의료보장, 더 확실한 평생 소득이다. 이는 단지 대중적일 뿐 아니라 인민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이로운 것이다. 이는 끝없는 자본축적의 가능성을 압박한다. 이런 요구들은 전세계 모든 지역에서 큰 목소리로 지속적으로 밀어붙여야 한다. 이에 관한 한 과도함이란 없다.

 

 분명한 것은, 이런 모든 "복지 국가" 기능의 확장에는, 지출의 효율성, 부패, 과도한 권력을 지니면서도 둔감한 관료체제 창출 문제가 뒤따른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우리가 즉각 제기해야 할 것들이다. 그러나 더 많은 기초적 요구를 약화시켜서는 안된다.

 

 대중 운동은, 이런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뽑은 중도 좌파 정부조차 느슨하게 다루면 안된다. 노골적인 우파 정부보다 좀더 우호적이라는 사실은 살살 다뤄야 한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호적인 정부를 압박하는 것은 우파 반대세력을 중도-좌파쪽으로 끌어오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들을 끌어오지 않으면 중도 좌파 정부를 중도 우파로 밀어내는 꼴이다. 이런 뻔한 말이 필요없는 특수한 상황이 종종 있지만 민주화의 일반 법칙은 좀더, 좀더이다.

 

 (4) 자유주의 중도세력이 자신들의 이론적 기호를 이행하게 만들라. 이는 자유주의의 행보를 강제하는 것이라고도 불린다. 자유주의 중도는 말과 다르기로, 내세우는 것과 실천이 다르기로 악명 높다. 이를 선명히 보여주는 것으로 자유가 있다. 자유주의 중도세력은 소련이 해외 이주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곤 했다. 그러나 당연히 해외 이주 자유의 다른 면은, 이주민의 자유로운 입국 허용이다. 어느나라에 갈 수 없는 한, 한 나라를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아무 가치가 없다. 우리는 국경 개방 압력을 넣어야 한다.

 

 자유주의 중도세력은 주기적으로 자유 무역, 더 자유로운 기업활동, 기업가들의 의사결정에서 정부의 간섭 배제를 주장한다. 이 주장의 다른 면은 시장에서 실패한 기업가를 구제하지 않는 것이다. 성공할 때 이득을 취하니까, 실패할 때도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기업을 구제하는 것은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라는 주장이 종종 제기된다. 그러나 일자리를 구하는 더 저렴한 방법들이 있다. 실업보험, 재교육, 고용 기회를 새로 제공하는 것 등 말이다. 이 어떤 방안도 실패한 기업가의 빚을 탕감해주는 것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자유주의 중도세력은 주기적으로 독점이 나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주장의 다른 면은 특허를 폐지하거나 총체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이면은 정부가 외국기업과 경쟁하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지 않는 것이다. 이 조처가 중심부 노동계급에게 해가 될까? 글쎄, 세계 임금률을 평준화하는 데 돈과 에너지를 쓴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 주장의 세부 사항은 복잡하며 많이 논의해야 할 것들이다. 하지만 요점은 자유주의 중도세력이 수사만 내세우면서 그 대가를 치르지 않고 과실을 가져가도록 놔두지 말자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중도세력의 주장을 상쇄하는 정치적 방법은 그들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그들의 이상에 호소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도적 요소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그 이념에 호소하는 방법은, 바로 그 수사학에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점은, 민주화의 혜택 상당 부분은 가장 빈곤한 계층에게 미치지 않거나 미치는 강도가 약하다는 것이다. 관료주의의 장애물을 그들이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리처드 클로워드(Richard A. Cloward)와 프란시스 폭스 피번(Francis Fox Piven)의 30년전 제안 곧 `바퀴를 폭발시켜야'(explode the rolls) 한다,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빈민층이 들고 일어나게 하라는 주장으로 돌아가게 된다.7)

 

 (5) 반 인종주의를 민주주의의 핵심 잣대로 삼으라.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을 권력, 분배, 개인적 성취 기회 측면에서 평등하게 다루는 것이다. 인종주의는 권리를 지닌 (또는 더 지닌) 사람들과 권리가 없거나 적은 이들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이다. 인종주의는 이 집단 사이를 구별하는 동시에 이런 차별에 허울좋은 정당성을 부여한다. 인종주의는 한 나라 차원에서나 세계 차원에서나 부차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는 보편적인 기준이라는 자유주의 중도세력의 약속이 조직적이고, 의도적이며, 지속적으로 약화되는 방법이다.

 

 인종주의는 현재 세계체제 전체에 스며들어 있다. 지구 어느 구석도 이것이 지역적, 국가적, 세계적 정치의 핵심 특징이 아닌 곳이 없다. 2001년 3월29일 멕시코 의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사령관 에스터(Esther)는 이렇게 말했다. "백인 (라틴족)과 부자들은 우리 원주민 여성들의 옷과 말하는 태도와 언어, 우리의 기도하는 방식과 치료 방법, 우리가 일하는 땅의 색을 똑 닮은 우리의 피부색을 조롱한다."8) 그 여성은 이어서 원주민 자치를 보장할 법률 제정을 호소했다. "원주민의 권리와 문화를 인정한다면... 이 법률은 그들의 시간과 원주민의 시간을 화해시키기 시작할 것이다... 또 오늘 우리가 원주민 여성이라면, 내일 우리는 차이 때문에 죽고, 박해받고, 투옥되는 남성과 여성이 될 것이다."

 

 (6) 탈상품화로 나아가라. 자본주의 체제에서 결정적으로 잘못된 것은, 사적 소유가 아니다. 이는 단순한 수단일 뿐이다. 진짜 문제는 자본 축적에서 핵심 요소인 상품화다.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많은 노력이 있었음에도 오늘날에조차 온전히 상품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국영이건 민영이건) 대학과 병원을 이윤을 추구하는 기관으로 바꾸는 대신, 철강 공장을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 곧, 배당금을 외부에 지불하지 않는 자립 기관으로 어떻게 바꿀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좀더 희망찬 미래의 얼굴이며, 지금부터라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7) 우리는 기존 세계체제에서 다른 어떤 체제로 이행하는 시기에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 말이다. 지구화의 수사나 '대안이 없다'는 주장에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대안은 존재할 뿐만 아니라, 가능하지 않는 유일한 대안이란 바로 현재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다.

 

 후속 체제를 둘러싼 거대한 투쟁이 벌어질 것이며, 이 투쟁은 20, 30, 50년동안 계속될 것이다. 그 결과는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다. 역사는 누구 편도 아니다. 우리가 하기에 달렸다. 한편, 이는 창조적 행동을 위한 아주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역사적 체제의 일상적인 국면에서라면, 변혁(이른바 "혁명")을 위한 위대한 노력은 평형 상태로 돌아가려는 체제 자체의 강한 압력 때문에 제한적인 결과만을 얻기 마련이다. 그러나 구조적 이행의 혼란스런 환경에서는 변동이 커지며 심지어 약간 밀어붙여도 분기점에서 자신에 유리한 쪽으로 방향을 돌릴 수 있다. 매개가 작용한다면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 때이다.

 

 조직이 중요하긴 해도 핵심 문제는 아니다. 핵심은 통찰력이다. 시스템을 바꾸되 아무런 변화도 없고 지금처럼 여전히 계층적이며 양극화한 체제를 만들려는 세력은 돈과 힘과 지력을 갖추고 있다. 그들은 멋진 겉모습으로 가짜 변화를 치장할 것이다. 아주 세심하게 분석하지 않으면 그들이 쳐놓은 수많은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들은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구호를 들고 나올 것이다. 인권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미개한 이들을 "문명화하는 임무"를 힘있는 특권층에게 영구히 보장하는 다른 많은 요소에 비춰볼 때 아주 바람직한 몇가지만 포함시킬 것이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그들의 주장을 해부해서 그들의 속임수에 도전해야 한다. 학살에 대한 국제 사법 절차가 바람직하려면 그것이 단지 약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핵무기와 생물학 전쟁이 위험하고 심지어 야만적이라면, 이런 무기의 후속 무기 또한 안전하지 못하다.

 

 세계의 본래적인 불확실성속에서, 또 역사적 이행의 순간에, 세계 좌파가 취할 유일하게 그럴듯한 전략은 기본 목표 곧 상대적으로 민주적이며 상대적으로 (인종 문제에서) 평등한 세상의 쟁취를 현명하고 전투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 세상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것이 실현될지는 결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결코 불가능하지도 않다.

 

**이 내용은 [새 정치학] 22호, 2000년 6월, 143~159쪽 "21세기를 위한 좌파 정치학? 또는 다시 한번 이론과 실천"으로 출판됐다.
1. It was published as "A Left Politics for the 21st Century? or, Theory and Praxis once Again," New Political Science XXII, June 2000, 143-159.

2. [새 정치학]에 실린 글 외에 [유토피스틱스, 또는 21세기를 위한 역사적 선택] (뉴욕: 뉴 프레스, 1998)도 보라.
2. In addition to the article in New Political Science, see Utopistics, or Historical Choices for the Twenty-first Century (New York: New Press, 1998).

3.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졸저 [자유주의 이후] (뉴욕: 뉴 프레스, 1995)에서 상세히 논했다.
3. I argue this in detail in After Liberalism (New York: New Press, 1995).

4. 나열한 사례에 대해서는 [국제 사회학] 15권, 2000년 6월, 249~265쪽, "지구화 또는 이행의 시대? 세계체제의 궤도에 대한 장기적 관점"을 보라.
4. But see, for the case laid out, "Globalization or an Age of Transition? A Long-Term View of the Trajectory of the World-System," International Sociology XV, June, 2000, 249-265.

5. [계급의 언어] (캠브리지: 캠브리지대학 출판부, 1982), 74쪽.
5. Languages of Clas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2), 74.

6. 이 분석에 대한 상세한 서술은, 지오바니 아리기, 트렌스 K. 홉킨스, 이매뉴얼 월러스틴, [비체계적 운동들] (런던: 버소, 1989)와 같은 저자들의 논문 [리뷰] 15호, 1992년 봄호, 221~242쪽의 "1989: 1968년의 연속"을 보라.
6. See this analysis in greater detail in Giovanni Arrighi, Terence K. Hopkins and Immanuel Wallerstein, Antisystemic Movements (London: Verso, 1989), plus the essay by the same authors, "1989: A Continuation of 1968," Review, XV, Spring 1992, 221-42.

7. 프란시스 폭스 피번과 리처드 A. 클로워드는 자신들의 공공복지에 관한 책에서 이렇게 결론맺고 있다. "근본적인 경제개혁이 없는 상황에선 그래서 바퀴의 폭발이 사태를 진정시키는 진정한 개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개혁을 지키고 확장해야 한다. 지금도, 수백 수천의 가난한 가정이 지원을 받을 자격이 됨에도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빈곤 통제: 공공복지의 기능들] (뉴욕: 팬시언, 1971) 348쪽. (강조는 원저자)
7. Frances Fox Piven and Richard A. Cloward conclude their book on public welfare thus: "In the absence of fundamental economic reforms, therefore, we take the position that the explosion of the rolls is the true relief reform, that it should be defended, and expanded. Even now, hundreds and thousands of impoverished families remain who are eligible for assistance but who receive no aid at all," Regulating the Poor: The Functions of Public Welfare (New York, Pantheon, 1971), p. 348 (italics in original).

8. http://www.ezln.org/marcha/2001032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