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와 국제 정세

한미FTA는 또다른 IMF(스티글리츠)

DemosJKlee 2008. 5. 24. 01:21
IMF 10여년만에…“한-미 FTA는 또 다른 위기“

스타글리츠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한국어판 출간

 

한겨레 한승동 기자
» 스타글리츠
“많은 한국인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쾌거라고, 그리고 무수한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못하다. 나는 이 협정이 한국이나 전세계에 무슨 이득을 가져다 줄지 확신할 수 없다. 아마도 이 협정이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들은 결국 낙담하게 될 것이다.”(<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IMF도 국가 투명성보다 미 주도의 자본시장 자유화 탓
양자협정 저지·세계통화 조성 등 ‘대안적 세계화’ 모색

 

2002년에 나온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세계화와 그 불만>은 미국이 주도해온 세계화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스티글리츠는 그 책에서 미국 금융업자들 이익에 복무한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외환위기 전의 ‘동아시아 경제기적’은 바로 그 체제가 앞세운 ‘워싱턴 컨센서스’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지적했다.

 

스티글리츠가 2006년에 낸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는 <세계화와 그 불만>의 후속작으로, 대안모색에 좀 더 중점을 둔 책이다.

 

영어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이 책이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21세기북스 펴냄). 스티글리츠는 이 책의 한국어판에 ‘한국 외환위기 10년, 세계화의 명암을 돌아본다’라는 제목이 달린 특별 기고문을 실었는데, 이 글에서 그는 한국 외환위기 당시를 되짚어보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또다른 위기를 부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외환위기 발생 바로 전까지 미 재무부와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은 한국에 자본시장 자유화 압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당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스티글리츠는 저축률이 높은 한국은 급한 외국자본 수요가 없을 뿐 아니라 금융 및 자본시장의 점진적인 개혁 계획을 이미 세워놓고 있는 마당에 자본시장 자유화를 다그칠 이유가 없다고 봤다.

 

“참담한 결과가 일어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급격한 자유화는 한국을 금융위기로 몰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자문위원회 쪽은 재무부와 논쟁을 벌였다. “한국의 자본시장을 자유화한다고 해서 미국에게 득이 될 게 무엇인가? …고작 일부 월스트리트 기업들의 배를 불리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한국(아마 관련 국가 모두)은 금융위기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우리가 골드만삭스나 월스트리트 기업들의 수익을 챙겨줄 이유가 없었다.” 월스트리트와 재무부(그리고 백악관마저)는 이런 반대를 무시하고 밀어붙였다. 그 결과는 스티글리츠가 예상한 것보다 더 참담했다.

 

월스트리트와 그들의 이익을 대변해온 재무부는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책임을 동아시아 국가 투명성 부족으로 돌렸지만,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도 금융위기를 겪었고 한국보다 투명성이 떨어지는 나라들이 당시 금융위기를 겪지 않았다는 것, 투명성 부족이 위기를 불렀다면 위기는 그보다 훨씬 더 전에 일어났어야 했다는 것 등을 들어 스티글리츠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위기를 자초했다는 주장에 “절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미 재무부와 국제통화기금이 강력하게 추진했던(그리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정책, 그 중에서도 특히 성급한 자본시장 자유화”였다. 스티글리츠는 세계화에 동참했지만 단기자본시장을 열지 않고 금융시장을 서서히 열면서도 자기 실정에 맞게 통제한 중국과 인도, 베트남이 외환위기를 겪지 않았다는 데 주목한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인도가 8~10%대의 고도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도 거기서 찾았다. 외환위기 이전의 한국 등 동아시아 기적도 바로 그런 환경에서 가능했고, 환경을 바꾸는 순간 위기를 맞았다. 스티글리츠의 이런 시각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가 <사다리 걷어차기>와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에서 설파한 주장과 상통한다.

 

스티글리츠는 자유무역협정이 “미국의 권력을 이용해 다자간 시스템을 파괴하려는” 부시 행정부의 횡포라면서 “전세계 민주주의와 다자간 시스템을 공격하는 부시 행정부를 다른 국가들, 특히 한국이 지원하고 용인하는 이유를 쉽게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양자협정이 지난 60년간 쌓아온 다자무역 시스템을 무너뜨리면서 세계를 ‘내 편과 적’으로 가르고 있다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이후 미국과 더욱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멕시코의 참상을 보라고 했다.

 

스티글리츠가 거부하는 것은 세계화가 아니라 잘못된 방식의 세계화다. 대안적 세계화가 가능하다고 보는 그는 양자 시스템 저지, 국제통화기금 등 국제기구의 의결방식 민주화, 강자들의 지적재산권 관련 횡포 규제와 지구온난화 대응, 빈국에서 부국으로 돈이 역류하는 글로벌준비제도의 개혁, 빈국들의 부채문제 해결, 공정무역, 달러 대신 세계통화를 만들어 기축통화로 삼을 것 등을 제안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시장정보 비대칭론으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
승자독식 세계화 비판

 

■ 조지프 스티글리츠(65)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비판하는 대표적 경제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앰허스트대학을 나와 매사추세츠 공대 대학원에서 폴 새뮤얼슨의 지도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케임브리지대에 유학했다. 매사추세츠 공대, 예일대, 듀크대, 스탠퍼드대, 옥스퍼드대, 프린스턴대 교수를 거쳐 지금은 콜럼비아대에서 가르치고 있다. 1995~97년 클린턴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 1997~2000년엔 세계은행 수석 부총재와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냈다. 2001년 구매자와 판매자 등 경제주체들간의 정보격차로 인한 시장의 불균등한 정보구조를 논한 ‘정보 비대칭성’ 이론으로 조지 에이커로프, 마이클 스펜스와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모든 걸 시장에 맡기면 시장이 알아서 할 것이라는 시장원리주의를 비판해온 스티글리츠는 그가 개척한 걸로 알려진 정보경제학이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손이 (본디)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정부 개입이 필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가 ‘워싱턴 컨센서스’를 비판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 중남미를 중심으로 한 개도국들의 외채문제 처리에 부심하던 미국 재무부와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이 대처방안으로 합의한 ‘최대공약수’가 워싱턴 컨센서스다. 재정적자 해소, 보조금 삭감 등 긴축재정, 세제 개혁, 금리 자유화, 경쟁력 있는 환율, 무역 자유화, 직접투자 도입 촉진, 국영기업 민영화, 규제완화, 소유권법 확립 등 모두 10개 항. 긴급 구제금융의 대가로 ‘작은 정부’와 규제완화·민영화를 압박한 워싱턴 컨센서스는 미국 월스트리트식 시장만능 ‘카지노 자본주의’의 세계화를 위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스티글리츠는 그런 승자독식 방식으로는 세계화도 자본주의도 불가능하다고 본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기사등록 : 2008-03-19 오후 09:4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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