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sJKlee
2008. 9. 21. 18:30
[내일신문] 강북구의 주민혁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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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구의 주민혁명
김수종 (언론인 전 한국일보 주필)
서울 강북구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주민들이 한 달에 447만9,160원을 받던 구의원의 월급을 335만6,660원으로 대폭 깎아버렸다. 나는 이걸 ‘주민혁명’이라고 부르고 싶다.
지방자치단체 의원들은 의정활동비라는 명목으로 월급을 받는다. 소위 조례제정권을 가지고 있는 의회는 조례개정을 통해 자신들의 월급을 얼마든지 올릴 수 있다. 원래 지방자치가 출범할 때 의정활동비를 고액의 봉급 개념으로 지급하지 않는 것이 그 취지였으나, 정치권이 온갖 핑계를 동원하여 의정활동비를 봉급수준으로 올리게끔 길을 텄고 2006년부터는 기초자치단체 의원들에게도 적용됐다. 기초 의회는 어떻게든 이 월급을 올리려 하는데 이것은 인간 심리이다. 문제는 도가 지나칠 때 누가 견제하느냐이다.
의정비 삭감 청원운동 성과
강북구 의원들은 염치가 없었던 것 같다. 작년 11월 의정비를 60%나 인상하기로 결정했으니 말이다. 이 과정에서 진보신당 최선의원이 “의정비가 너무 많다”며 인상에 반대했다고 한다. 전반적인 경기침체로 가게는 장사가 안 되고 젊은이들은 취직을 할 수 없어 절망적인 분위기에서 스스로 봉급을 이렇게 올려놓았으니 주민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 분개하지 않으면 민주사회 시민이 아니다.
강북구 주민은 의정비 삭감을 요구하는 청원운동을 벌였다. 의회에서 봉급인상을 막지 못한 최선의원이 청원운동에 앞장섰던 모양이다. 지방자치법은 지역주민 2% 이상이 서명하면 자치단체의 심의를 거쳐 조례안을 제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 6월 강북구민 7,138명의 서명을 받은 최 의원이 의정비 삭감을 요구하는 청구서를 구청에 제출했고, 구청은 의회에 조례안 상정을 요구했다.
강북구민의 7,138명의 서명의 위력은 대단했다. 지난 10일 강북구 의회 의원 14명은 전원 의정비 삭감 조례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의원들이 주민의 위력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표를 의식했으니 주민의사를 거부할 수는 없었겠지만 그들이 마음속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동료의원을 잘못 만나 이렇게 됐다고 분노했는지 궁금하다.
송파구도 비슷한 상황이다. 시민단체가 중심이 되어 전국 최고 수준으로 올려놓은 의정활동비를 깎는 청원에 9,700여명의 서명을 확보했다. 구의원은 삭감조례안 심의를 보류한 상태인데, 강북구 의회가 항복한 마당에 인상된 그들의 봉급을 고수할 수 있는지 관심거리다.
나는 우리나라 지방자치가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잘못된 부분이 의원들의 의정활동비다. 재정이 열악한 지역은 대부분 주민의 소득원이 빈약한 곳이다. 쉽게 말해 가난한 지역이다. 가난한 지역에서는 의원들의 의정활동비도 그에 맞게 낮게 책정되어야 한다. 그게 자치다. 주민은 전국 평균에 비해 형편없이 못사는 데 지방자치단체 의원들이 전국 수준의 봉급을 받아 챙기는 것은 자치의 정신에 위배되고 마음으로 주민을 돌볼 자세를 상실케 한다.
오래전 얘기지만 지방자치가 굉장히 발전한 미국에서는 지자체마다 의원의 의정비가 각양각색인 것을 보았다. 부유한 캘리포니아에서는 주의회 의원이 연방의원과 비슷한 수준의 돈을 받고 있었으나 뉴햄프셔주의 주의원은 회의비 명목으로 몇 백 달러만 받고 있었다. 기초자치단체로 내려가면 정말 천차만별이다. 각 지자체마다 전통과 재정형편에 따라 주민의 의사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어떤 작은 도시는 시의원가 모두 각양각색의 자기 생업을 갖고 지역에 봉사하는 차원에서 회의도 일과 후 시간에 열고 의정비도 실비 정도만 지급하고 있었다.
봉사의 차원에서 일해야
우리나라 시 군 구의 자치제도는 근본적으로 생활 자치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업정치인들이 판치는 것이 아니라 교사 경찰 농민 주부 소방관 의사 보험아줌마 일반회사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시의원이 되어 지역사회의 여론을 반영하며 봉사의 차원에서 일해야 제대로 된 자치일 것이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강북구 주민 같이 눈을 똑바로 뜨고 공직을 감시하는 유권자뿐이다. 사실 이런 일은 서울보다도 지방에서 더 절실하다. 강북구의 주민혁명이 지역에 맞는 지방자치로 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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