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원 칼럼1)기지개 켜는 오바마의 대북정책2)일본판 ‘북풍’의 허와 실
[세상읽기] 기지개 켜는 오바마의 대북정책 / 이종원
한겨레 (기사등록 : 2009-05-08 오후 07:06:42)
미국 오바마 정권이 출범한 지 100일이 지났다. 미증유의 경제위기에 대한 신속한 대처로 미국 국내에서도 평가 점수가 매우 높다. 각종 조사에서 평균 60%를 웃도는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취임 직후부터 부시 정권의 ‘힘의 외교’ 노선과의 결별을 명확히 함으로써 변화된 미국의 모습을 강하게 인상 지었다. 미국이 “악의 축” “불량국가”라는 낙인을 찍었던 이란, 시리아, 쿠바에 잇달아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반미의 선봉장’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도 악수를 했다.
지난 100일 동안 오바마 정권은 산적한 과제에 대해 강도 높은 ‘속도전’을 벌였다. 높은 지지율도 구체적인 성과가 있어서라기보다 과감하고 민첩한 대응에 대한 기대감에 기인하는 부분이 크다. 복합적인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활용해서 단기간에 대내외 정책 과제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 방법과 사고방식을 잇달아 변화시킨 수완은 놀라울 정도다.
전광석화와 같은 오바마 정권의 대응 가운데 유일하게 뒤처진 분야는 대북 정책이다.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을 선언하면서 가지고 있는 모든 카드를 동원해서 미국을 압박하는 북한에 대해 유효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방관하는 듯한 모습이다. 스티븐 보즈워스 북한 문제 담당 특별대표가 중국을 들러 어제 서울에 왔다. 조만간 표면화될 북-미 교섭을 포함한 다양한 외교의 향방을 점치기 위해서도 오바마의 대북 정책이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첫째로는 이제까지 많이 지적되어 온 대로 정책의 우선순위 문제다. 경제위기의 대응이 최우선 과제인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으며, 대외 정책에서도 아프간과 이라크, 중동 문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지난달 23일에야 겨우 커트 캠벨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국무차관보의 임명이 발표되었다. 지난 조지 부시 정권 때 제임스 켈리 차관보가 정권 출범 한 달도 못 돼 임명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둘째로 대북 정책의 전반적 재검토 작업에 일정한 시간이 걸리는 것도 사실이다. 부시 정권 때에도 대북 정책의 윤곽이 발표된 것은 정권 출범 이후 4개월 반이 경과된 6월 초였다. 오바마 정권의 경우 북핵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지향하는 입장에서 그 정책 검토는 좀더 다각적이고 포괄적일 수밖에 없다. 궁극적인 북-미 관계 정상화 등 동북아 질서 재편을 실행에 옮길 구체적인 정책 마련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됨은 물론이다.
오바마 정권은 이 준비 기간에 보즈워스 대표의 방북 등으로 분위기를 개선함으로써 포괄적인 정책 검토 작업의 추진력으로 활용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구상에 찬물을 끼얹는 북한의 벼랑 끝 전략이 단순히 북-미 협상 전략인지 아니면 핵 보유의 기정사실화를 위한 행보인지, 북한의 진의와 내부 상황에 대한 의구심이 오바마 정권 내에 점증되고 있다.
오바마 외교에도 관여하고 있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4월22일치)에서도 강조하듯이 북-미 교섭에는 관계 정상화와 핵 포기라는 최종 목표에 대한 상호 신뢰가 중요한 기반이다. 이 토대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세계적인 비핵화 추진을 정권의 중심 과제로 내걸고 있는 오바마 정권으로서는 관계 개선의 과감한 돌파구를 열기 어렵고 표류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오바마 정권의 대북 정책에 대해 북한도 이제까지 강조해 온 “전략적 결단”의 구체화로 응답할 필요가 있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세상읽기] 일본판 ‘북풍’의 허와 실 / 이종원
한겨레 (기사등록 : 2009-04-10 오후 06:43:33 기사수정 : 2009-04-10 오후 07:20:57)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로 일본 열도에 ‘북풍’이 거세다. 아소 다로 정권이 기사회생할 조짐을 보이고, 핵무장론과 적기지공격론 등 평화헌법과 전수방위의 원칙을 뛰어넘는 주장들이 거침없이 제기되고 있다. 조만간 일본의 정권 선택이 걸린 총선거가 치러지게 된다. 일본 국민이 어떤 길을 선택하는지는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 정세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불행한 역사의 반복이 아닌 바람직한 방향을 기대하는 시각에서, 압도적인 ‘미사일 광상곡’의 주선율에 가려진 몇 가지 가능성에 애써 초점을 맞추어 보자.
첫째로 보수 성향이 강한 아소 정권 내에서조차 일본의 과민반응에 대한 우려와 신중론이 제기되었다는 점이다. 일본 국민의 불안감을 배경으로 미사일 요격론이 비등하는 상황에서도 ‘정부 고관’이 요격의 기술적인 성공 가능성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했고, 나카소네 외상도 미사일 요격의 정치적·기술적 어려움을 인정했다. 미사일 방위 시스템의 첫 출동이라는 이번 결정 과정에서는 방위성과 자위대의 적극적인 강경대응론이 두드러졌다. 현재까지 1조엔이라는 거액의 예산을 투입한 미사일 방위의 정당성을 증명하고, 이를 한층 확대하려는 이해관계가 배경에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미사일 방위의 돌출은 국가 전체의 재원배분에 큰 부담이 되며, 정책이 구체화될수록 이를 둘러싼 갈등도 증폭되기 마련이다. 미국의 오바마 정권이 미사일 방위 구상 자체를 재검토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일본의 추진론도 적잖이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둘째로 이번 사태는 역설적으로 일본이 도입한 미사일 방위 시스템의 실태에 관한 현실적 인식의 계기가 되었다. 심리적 불안감을 배경으로 ‘미사일 요격’ 체제에 일본 국민의 81%가 지지를 했다.(<산케이 신문> 2009년 3월20일치) 그러나 이와 동시에 구체적인 논의 과정에서 요격 미사일의 사정거리와 방위 범위, 기술적 성공 가능성 등에 큰 한계가 있다는 사실 또한 드러났다. 예고된 ‘인공위성’ 추진 로켓 하나에도 대응이 쉽지 않은 시스템이 과연 일본 주요 도시를 사정권에 둔 노동 미사일 100~200기의 위협에 대처하는 현실적 수단이 될 수 있는지 하는 당연한 의문이다. 미사일 방위 확대론의 앞길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셋째로 정치권과 언론에 팽배한 강경론에 비해 일반 국민의 여론이 더 냉정하고 현실적인 측면이 보인다는 점이다.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전후해서 일본 민영방송사 <티비에스>(TBS)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미사일이든 인공위성이든 강경대응”이 29%, “미사일이면 강경대응, 인공위성이면 냉정한 대처”가 34%, “미사일이든 인공위성이든 냉정한 대처”가 35%로 나타났다. 표면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의외로 차분한 의견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주된 관심이 경제회복과 고용문제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 아베 정권 이래의 대북 강경정책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낮은 지지율에 고전하는 아소 정권이 총선거를 앞두고 ‘북풍’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정치적 동기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실제적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역사인식과 헌법 개정과 같은 이념적 우경화의 기치를 내세운 아베 정권이 국민의 실제적인 요구와 유리되어 공중분해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미사일 발사’의 여진이 가라앉으면 북-미 관계를 비롯한 ‘외교’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일본도 정치 외교의 방향 설정을 둘러싸고 중요한 갈림길에 접어들고 있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