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읽기

[경향]공영방송 KBS의 타락--- 김인규 사장 취임 후 KBS ‘모럴 해저드’

DemosJKlee 2010. 4. 7. 20:45

김인규 사장 취임 후 KBS ‘모럴 해저드’

 
 강진구 기자 kangjk@kyunghyang.com

 

 

ㆍ열린음악회, 협찬 받고 재벌 홍보 정권홍보 방송
ㆍ간부 10여명 ‘룸살롱 술파티’ 벌이다 보직 해임

공영방송의 역할 강화를 위해 수신료 인상을 강조하고 있는 KBS가 재벌과 정권을 홍보하는 특집방송으로 잇따라 물의를 빚고 있다. KBS는 제작진의 실수라며 파문 축소에 급급하고 하지만 언론계에서는 대통령 특보 출신의 김인규 사장이 취임한 뒤 나타나고 있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주목하고 있다. KBS 간부들이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보다 정권과 김 사장 ‘코드’에만 맞추려다 보니 1980년대 ‘정·경·언’유착 시절의 퇴행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 재벌·정권 찬양 특집방송 = KBS는 지난 4일 방영하려던 ‘열린음악회’ 부산시 편을 무기한 연기했다. 지난달 27일 부산 해운대 신세계백화점에서 녹화한 ‘열린음악회’가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탄생 100주년 기념 행사로 기획됐다는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KBS 측은 최초 논란이 확산되자 “초대권과 홍보물에 기획의도와 다른 문구가 삽입된 것은 협찬사(신세계)가 단독으로 추진한 것으로 방송에서는 관련내용이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며 애써 KBS와 무관함을 강조했다.

하지만 언론노조 KBS본부에 따르면 KBS는 신세계로부터 협찬비로 2억7000만원을 받고 담당 제작자들은 당일 녹화현장에서 출연자들에게 ‘이병철 회장’과 관련한 코멘트를 유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뺌으로 일관하던 KBS는 결국 지난달 31일 이사회에서 김인규 사장이 ‘가볍게 볼 실수가 아닌 것 같다’며 잘못을 인정하고 자체감수에 착수하는 등 뒤늦게 진상파악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KBS가 협찬금을 받고 부적절한 특집방송을 편성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한전으로부터 1억원을 받고 한전의 원전수주를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열린음악회-원전수수특집’편을 방영하는가 하면 농림수산식품부 협찬을 받아 수입 쇠고기 안전성을 홍보하는 ‘과학카페’가 전파를 타기도 했다.

‘2010 명사스페셜’에서는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비롯해 범여권 인사 5명이 출연하는가 하면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지난해 10월부터 각종 KBS 예능·오락 등 프로그램에 5차례나 출연하기도 했다.

KBS는 봄 개편에서도 현정권이 최대의 외교업적으로 내세우는 오는 11월 G20 서울정상회의에 맞춰 ‘G20 세계탐구’라는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쾌적한국 미녀들의 수다’ 등 정책홍보로 변질될 우려가 있는 예능프로그램도 추진되고 있다.

야당추천의 KBS 김영호 이사는 “김 사장이 ‘저쪽’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내부에서 경쟁적으로 충성하려는 분위기가 강하다 보니 공영방송을 무색하게 하는 재벌과 정권 홍보 프로그램이 자꾸 나오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 5공식 퇴행 조짐 = KBS는 프로그램뿐 아니라 조직문화도 5공식으로 퇴행하는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 2월 동계올림픽 당시 간부회의에 참석했던 한 국장은 “김 사장이 중계권 협상 실패에 대해 참석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특정인을 향해 30여분간 혼을 낸 뒤 선수단 환영 음악회는 KBS가 주관해서 성대하게 치러야 한다고 열을 낸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KBS가 주관방송이 돼 지난달 7일 지상파 3사 공동으로 5공시절을 연상케 하는 ‘밴쿠버올림픽 선수단 환영 국민 대축제’가 편성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사장에 반대하는 새 노조가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변호사 선임비용으로 단건에 6000만원을 지출하고 새 노조가 만들어진 후 고분고분하지 않은 성향의 라디오 PD 5명을 지방으로 발령내는 방식도 5공식 조직문화와 맥이 닿아 있다.

지난 2월 KBS의 한 국장이 서울 강남의 유명 룸살롱에서 간부 10여명과 함께 술파티를 벌이다 보직 해임된 것도 마찬가지다. 해당 국장은 “CP들과 함께 처음으로 일 한번 잘해 보자고 술자리 한 것뿐인데 누군가 허위사실을 무고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룸살롱 회식관행 자체가 5공식 ‘충성주’ 문화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이다.

또 친구 아들의 서류점수를 조작해 부정입사시킨 전력이 드러나 징계를 받은 이길영 대구경북 한방산업진흥원장을 지난해 말 감사에 임명한 것은 KBS의 내부 자정 기능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연우 공동대표는 “1980년대 5공을 미화했던 김 사장부터 권력과 자본의 감시자라는 저널리즘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보니 KBS의 각종 프로그램에 이런 분위기가 반영되고 조직문화가 퇴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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