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김정일·김정은-전체에의 통찰
[세상읽기] 김일성·김정일·김정은-전체에의 통찰 / 박명림 | |
![]() ![]() |
|
최근 중국과 일본 사이의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파동은 세계 패권, 동아시아 지역 질서 및 한반도의 미래와 관련해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100년 전 천년제국 중국은 신흥제국 일본 앞에서 허망하게 밀리고 있었다. 쇠락하는 중화제국과 부상하는 일본제국은 서로 역내 제국의 위상을 교대하였다. 그 자체가 절대적 ‘표준’이요 ‘질서’인 동시에 ‘제국’이자 ‘문명’으로서의 위용을 자랑하던 중국은 ‘국가’로서의 존재조차 풍전등화였다.
10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정확한 역전을 목도한다. 세계 차원에서 중국이 미국과 함께 G2로 부상하여 세계 질서와 표준을 좌우하는 위상에 도전하고 있다. 지역 차원에서는 일본을 제치고 역내 패권을 장악하였고, 국가 차원에서는 신생독립국가와 개발도상국가를 거쳐 제국의 위상을 회복하였다. 경제와 인적 교류 정도의 제한된 수단만 갖고도 일본을 간단히 제압하는 위용을 보여준 센카쿠열도 사건은 중국발 세계변동의 압축적 상징이다. 중국은 세계를 향해 확실한 힘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초기부터 강수를 둔 중국은, 단기적 압승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는 잃은 것이 많은 승리처럼 보인다. 주변의 대만,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중국과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는 나라들에 중국의 힘은 이제 관념이 아니라 현실인 것이다. 게다가 서방은 환율전쟁, 시장개방 압력, 인권 논란, 노벨평화상 수여에서 보듯 중국 압박 기조로서 19세기 말의 일본 후원, 중-일 관계 역전 국면의 상황과 유사하다. 흔들리던 미-일 관계 역시 다시 복원되고 있다. 일본의 고질적인 영토분쟁 야기를 고려하더라도, 거대 제국 중국은 너무 빨리 제국의 힘을 과시한 것은 아닐까?
다가오는 주요 20개국(G20) 서울정상회의는 세계표준, 동아시아 질서, 한반도 문제를 함께 상념케 한다. 100년 전 일본이 세계규칙 제정 및 글로벌 표준 논의에 참가할 때 이에서 탈락한 한국과 중국은 식민과 반식민으로 전락하였다. 당시 쇄국과 자기표준의 대가는 혹독하였다. 특별히 G20의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분계선 남쪽에서 G20이 열리는 때에 북쪽에서 진행되는 3대 세습은 보편문명으로부터의 고립과 옥쇄를 각오하지 않으면 선택하기 어려운 길이다.
G20과 3대 세습, 한국전쟁 종전 시점에 같이 출발한 남북이 오늘날 왜 이렇게 되었는가? 김일성·김정일 ‘정권’은 항상 안정적이었고 도전세력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권’의 장기안정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계속 쇠락하였다. 반면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은 항상 ‘운동’과 ‘선거’를 통해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였다. 그로 인해 ‘모두’ 강제로 또는 제도 때문에 반드시 ‘정권’을 내놓아야 했다.
거기에, 즉 참여와 민주주의에 남북을 가르는 비밀이 숨어 있었다. 쇄국과 개방의 길은 또하나의 갈림길이었다. 남한이 ‘정권의 불안’과 ‘국가의 발전’을 결합하는 동안, 북한은 늘 ‘정권의 안정’과 ‘국가의 파탄’을 결합하였다. 또 남한이 ‘정권 이양 반복’과 ‘국가발전의 지속’을 결합하는 동안, 북한은 ‘정권 세습 반복’과 ‘국가후퇴의 지속’을 결합하였다. ‘세습의 실패’는 말할 것도 없고 ‘세습의 성공’ 역시 북한 국가로서는 결코 득이 될 수 없음에도 북한은 다시 자폐와 정권세습의 자기표준을 추구하고 있다.
‘정권’세습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북한의 ‘국가와 국민’이다. 19세기 말 문명표준이 변화하는 시점에 조선왕조는 봉기나 제도를 통한 ‘정권’ 이양과 ‘국가’ ‘국민’ 구출이 아니라, 거꾸로 왕조정권 지속을 추구하다가 국가와 국민이 소멸하고 말았다. 다시 문명표준이 변화하는 시점에 북한의 내부와 남한에서, 그리고 또 세계에서 북한 국가와 국민이 발전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보편적 대안의 모색이 절실한 시점이다. 특히 북한 내부와 한반도에서 그러하다. 문명변동의 시점에 중국이 유일한 북한 후원 제국이라고 할지라도, 센카쿠열도 사건이 보여주듯, 중국은 주변에 자기 이익을 부과하는 표준 설정 역할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