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와 국제 정세

[경향 칼럼] 대서양에서 태평양 시대로 - 이성형

DemosJKlee 2011. 11. 21. 17:28

경향닷컴 기사    

입력 : 2011-11-20 21:45:41수정 : 2011-11-20


[국제칼럼]대서양에서 태평양 시대로

태평양이 점차 미국과 중국이 힘을 겨루는 갈등의 장으로 바뀌고 있다. 중국의 경제력이 아시아는 물론 라틴아메리카 대륙까지 뻗고 있고, 군사력도 강화되자 이를 억제하기 위해 미국이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을 ‘태평양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프로젝트로 중국을 포위하는 인상을 주더니, 급기야 호주에 미군을 주둔시키기로 결정했다. 일본과 한국의 미군 주둔만으로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바야흐로 새로운 형태의 태평양 전쟁이 시작됐다.

태평양은 오랫동안 ‘스페인의 호수’라 불렸다. 스페인이 필리핀을 정복하고 마닐라와 아카풀코에 정기 무역선을 띄웠던 시절이 그랬다. 16세기 중반에서 1815년 사이에 이 항로를 통해 멕시코와 페루의 은이 중국으로 들어왔고, 비단과 자기가 무역선을 통해 아메리카 전역에 퍼졌다. 식민지 아메리카에 수출된 중국자기는 1200만점이나 된다. ‘스페인의 호수’는 ‘중국의 호수’이기도 했다. 중국풍이 예술양식에 영향을 준 시누아즈리가 유럽보다 1세기 앞서 유행한 곳이 라틴아메리카였다.

하지만 미서전쟁이 있었던 1898년을 기점으로 태평양은 완연히 ‘미국의 호수’가 됐다. 이미 하와이를 비롯해 많은 전략적 거점들을 확보한 미국은 필리핀을 접수함으로써 해양대국으로서 주요 거점들을 모두 확보하게 됐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이 태평양을 노렸지만, 그 시도는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도요타와 소니가 상품으로 태평양을 공략하며 ‘일등국가 일본’의 신화를 이어갔지만, 일본의 지정학적 영향력은 늘 미국의 우산 속에서 제한됐다. 21세기에 들어와서 다시 중국이 태평양을 넘보고 있다.

중국이 공략하는 것은 중공업화에 필요한 일차산품과 시장이다. 에너지, 식량, 원자재를 확보하려는 중국의 노력은 결사적이다. 베네수엘라는 이미 원유와 부산물 50만배럴을 매일 중국에 공급하고 있다. 미국 수출물량의 절반에 해당한다. 중국은 저리의 금융과 거액의 투자를 미끼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환심을 산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21세기 초두에 불어닥친 일차산품 붐에 편승해 희희낙락한다. 올해 1·4분기의 총무역액은 479억달러로 전년도 대비 44%나 증가했다. 중국이 부가가치가 높은 공산품을 수출하고 저부가가치형 일차산품을 수입하는 전형적인 지배-종속형 패턴이 굳어졌지만, 브라질을 제외하곤 이를 교정하려는 움직임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

태평양을 향한 라틴아메리카의 물류 시스템도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파나마 운하 증축 공사에 이어 몇 개의 대안적 노선이 확장되고 있다. 올해 리마와 상파울루를 잇는 태평양~대서양 관통 도로가 완성됐다. 이제 닷새면 브라질의 상투스 항구에서 태평양 항구까지 물건과 사람이 이동한다. 칠레에서는 아르헨티나 중부와 연결되는 안데스 관통 터널을 뚫고 있다. 터널 길이는 총연장 52㎞나 된다.

콜롬비아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220㎞의 철도 노선을 건설한다. 파나마 운하에 가까운 병행 철도인지라, ‘육상 운하’ 프로젝트라 불린다. 76억달러의 공사비는 중국개발은행이 대고, 시공과 관리는 중국철도그룹이 맡는다고 한다. 약 4000만t의 물류가 이 철도선을 따라 이동할 것이다. 철도의 종착역인 카리브해의 카르타헤나는 중국산 부품을 조립하고 재가공해서 라틴아메리카 전역으로 수출하는 공단지역으로 개발된다고 한다.

모두 대서양의 시대가 저물고 태평양 시대를 알리는 신새벽의 모습이다. 이런 와중에 아시아개발은행의 2050년 시나리오가 발표됐다. 아시아의 GDP는 40년 뒤에 세계의 절반을 넘는다고 한다. 현재 라틴아메리카에서 동아시아 발전모델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이미 남미에서 워싱턴 컨센서스는 인기를 잃었고, 저성장과 불평등의 대명사가 돼버렸다. 남미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중도좌파 정부들은 시장지상주의보다는 국가가 적절한 역할을 하는 경쟁국가 모델에 관심이 많다. 태평양을 향한 라틴아메리카를 자세히 보면 미세하게 진행되는 권력이동의 모습을 가늠할 수 있다.

<이성형 서울대 라틴아메리카硏 교수>


입력 : 2011-11-20 21:45:41수정 : 2011-11-20 21:4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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