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강상중> 중에서 에드워드 사이드, 지식인, 아마추어와 관련된 부분 발췌
그(에드워드 W. 사이드)는 ‘지식인이란 무엇인가’에서 “지식인이란 항상 아마추어다”라고 잘라 말한다.
생각해 보면,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있어 분명히 아마추어였다. 왜냐하면 재일이 되었을 때, 두 분은 일본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아마추어로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일본인이라고 하는 것은 그 하나만으로 일본 사회에서는 프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가 아마추어라고 말했던 것에는 아주 깊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컨대, 언제나 인사이더 속으로 푹 잠겨들지 않고, 아웃사이더로 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점이 많다. 그러나 그것에는 망명과 같은 경우에서 사는 자밖에 알 수 없는 기쁨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부모와 아저씨는, 그저 괴로웠다, 슬펐다, 했을 뿐이 아니었다. 깊이 없는 밝은 웃음과 걸릴 것 없는 강인함이 있었다. 그것은 틀림없이, 그러한 기쁨을 알고 있던 때문이지 않을까.
아웃사이더로 사회 속에 있다는 것은 언제나 아마추어로서의 삶을 산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젓가락을드는 법이 일본인과 다르고, 말씨가 어딘지 모르게 다른 것들을 처음부터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래서만이 전문가와 숙련자가 잊고 있는 직감적인 이해의 능력이 발휘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은 아마추어라도 발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나는 이슬람과 아랍의 전문가도 아니다. 중국의 내정에 정통하지도 않고, 미국의 외교나 안전보장의 전문가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아마추어의 시선으로 사회를 정확하게 볼 수 있다. 전문가만이 말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것은 이상하다. 더구나 전문가도 어떤 경우에는 잘못을 범하거나, 권력과 손잡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에드워드 W. 사이드를 통해서, 내가 사회 속에서 발언할 근거를 갖게 되었다. 곧 전문가로서는 알고 있지 않더라도, '타자'이기 때문에 전문가보다 사회를 꿰뚫어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정치학과 사회과학의 전문가라도 삼라만상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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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법한 '화해할 수 없는' 두 민족의 갈등과 상극을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시사적인 것은, 사이드가 그 만년에 프로이트의 '모세와 일신교'를 예로 들었다. 유대인의 독자성의 시작이 모세라고 하는 '비유대인'인 이집트인에 의하여 창조되었다고 하는 프로이트의 논쟁적인 해석은 프로이트가 유대인이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극히 대담하다.
프로이트는 독자성을 통하여 국민과 종교가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 속에서 '타자'의 흔적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깊이 뒤엉켜 있는 분명히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사이드가 착안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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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W. 사이드에게서 나는 타자와 독자성의 문제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었다. 나는 1980년대까지 재일이라는 회로를 통해서만 일본을 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않다. 사이드처럼 몇 갑으로 잡아 찢겨지고, 더구나 그 어느 쪽에도 귀속되지 못하는 자신이 어떻게 해서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 그 일에 골몰하고, 실제로 행동에 옮겨 보았던 것이다.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고립되어 있는데, 발언하는 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헤매이고 있을 때 아마추어로서 발언하는 것은 지식인의 또 다른 역할이라는 그의 메시지는 내 마음에 와 닿았다. 그래서 나는 결심하게 된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자고 말이다.
결국, 가야 할 곳은 '타자'라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재일이라는 것은 일본 사회에 있어서, '타자'의 존재도 아니다. 타자라고 하기엔 너무 가깝고, 또 동시에 먼 존재인 것이다. 그것은 일본과 한반도의 관계 그 자체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