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Pivot to Asia', 속 빈 강정???
미국 ‘중심축 아시아로 이동’ 정책은 속 빈 강정?
By Andrew Browne
- European Pressphoto Agency
-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싱가포르의 석학인 베리 데스커는 미국의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 외교정책 기조의 가장 큰 허점은 “중심축이 쌍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발언은 오바마 행정부의 대표적인 외교정책 기조에 대해 일부 아시아 국가들의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적절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정책은 중국의 급부상으로 위협을 느낀 미국이 외교정책의 중심축을 안보를 책임져 주기를 바라는 아시아로 적극 이동시켜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이 다시 한번 중동, 그 중에서도 시리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가운데, 아시아 정부 관료들, 외교관들과 애널리스트들은 미국의 ‘아태지역으로의 중심축 이동’ 기조가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중심축’의 의미가 여전히 유효한지, 그리고 수십년간 자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미국의 안보 보장 울타리에 기대 온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
이에 대해 난양공대 라자라트남스쿨의 국제학 학장인 데스커는 다음과 같이 답을 제시했다. “중심축(Pivot)은 적절한 단어 선택이 아니었다.”
데스커 학장에 따르면 미국이 “우리는 대규모 병력을 아시아 국가들에 배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지역에서는 미국의 군사 정책의 균형이 아시아로 이동될 것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중심축(Pivot) 전략은 2011년 11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외교잡지 ‘포린폴리시’에 글을 기고하면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클린턴은 기고문에서 이라크와 아프칸 사태가 잠잠해지는 상황에서 이제 미국은 “외교 정책의 중심축을 이동할 수 있는 기로에 서있다”고 언급했다.
그녀는 따라서 21세기는 “미국의 태평양 세기”가 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미국이 “외교, 경제, 전략 등의 방면에 대해 실질적으로 투자가 늘어난 아태지역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기고문의 발간 이후,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중국의 위협을 특히 강하게 느끼고 있는 필리핀 순방에 나서면서 중심축 전략에 강력한 군사 정책도 포함시킬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바로 2011년 11월 16일, 마닐라만에 정박한 해군 미사일 구축함 USS 피츠제럴드함에서 열린 양국의 상호방위조약 60주년 기념행사에 필리핀 국무장관과 함께 참석한 것이다. 상호방위조약은 필리핀이 다른 국가의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이 군사적인 개입을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클린턴 장관은 공개적으로 ‘필리핀 서해’ 지역을 언급하기도 했다. 필리핀 서해 지역은 필리핀이 남중국해를 지칭하는 말로 중국이 이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사실상 확보하다시피 한 곳. 많은 이들은 그녀의 이 발언을 중국을 겨냥한 재치있는 발언이라고 평했다. 동시에 그 발언은 새로 천명한 ‘중심축’의 기조가 미국이 우방을 수호하고, 일본, 필리핀, 베트남과 영유권을 놓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는데 있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점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 CBS News
- 오바마 대통령
중국은 ‘중심축’ 전략을 냉전시대의 ‘봉쇄정책’이라고 맹비난하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중심축이라는 용어는 인기를 끌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단어의 어감을 좋아했다고 전직 관료들은 언급했다. 정치평론가들 역시 이 단어를 선호하면서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기조는 보편적인 외교 용어로 부상했다.
그러나 시리아 사태가 발발하기 이전에도 중심축의 실체에 대한 의문, 그리고 중국의 반발 앞에서 미국이 어느 정도 중심축 정책을 고수할 의지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었다.
일부 아시아와 미국의 회의론자들은 ‘중심축’ 정책 구상 자체를 인정치 않았다. 미국은 금융위기 이후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고, 중국은 브레이크 없는 고속성장을 구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스토리라인을 변경하기 위해 워싱턴 정가에서 만들어낸 마케팅 작품에 불과하다는 평이었다.
클린턴 장관의 후임인 존 케리 현 국무장관은 올 1월에 있었던 인준 청문회에서 중심축에 대한 중국의 부정적인 반응을 언급하고 이제는 전술을 바꿔야 할 시기일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이로 인해 중심축 외교 전략의 진정성에 대한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그는 “중심축 정책을 살펴본 중국이 ‘미국이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거지? 우리를 봉쇄하려는 건가? 어떻게 된거야?’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모든 행위에는 그에 따르는 반응이 존재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아시아의 많은 정치분석가들은 또한 케리 장관의 베트남 참전용사 전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시아보다는 중동에 더 많은 정책적 관심과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가 국무 장관 취임 직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자 그의 중동 편향성에 더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현재 미국 관료들은 중심축 이동 정책의 의미가 끊임없이 곡해돼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상 오바마 행정부 내에서 “아시아 중심축” 정책에서 탈피하려는 ‘중심축 이탈’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그 결과 이제는 국무부 관료들이나 외교적 성명 발표 등에서 중심축이라는 용어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관료들은 중심축 전략이 결코 군사적 증강을 위한 목적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일례로 그들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테두리 안에서 아시아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을 야심차게 추진하기 위해 미국이 이뤄 낸 발빠른 진전을 포함한 비군사적인 정책들을 강조한다.
그들은 또 힐러리 클린턴을 포함한 오바마 행정부의 관료들이 순방길에 오르는 등 이례적인 아시아 방문을 통해 챙긴 외교적 이득도 강조햇다. 예를 들어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2011년에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됐던 동아시아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조지워싱턴대 엘리엇스쿨의 국제학 교수들과 석학들은 ‘중심축’ 전략에 대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아시아 중심축 전략에 있어 군사 정책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보고서는 오바마 대통령과 고위 관료들이 아시아와의 “굳건한 협력”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듯 하다고 결론지었다.
현재 중심축 정책이 어떤 말로 정의되고 있는지의 여부를 떠나, 클린턴 전 장관이 마닐라만에서 보여준 상징적인 행보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아시아 외교정책이 군사 증강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있다는 점은 명확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의 군 병력이 아시아로 재배치 되고 있다면, 그건 아마도 아시아에서의 군사적 증강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중동과 유럽에 배치된 병력이 감축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미국의 방위 관료들이 수차례 아태지역의 안보 유지라는 방위 우선순위가 절대적이라고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예산이 감축되는 마당에, 약화된 군사적 야심이나마 과연 실현 가능할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케리 국무장관은 7월에 브루나이에서 열린 안보회의에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중심축 정책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시인하면서 “아시아 국가들이 제기하는 질문에 대해 미국의 답은 ‘예스’다. 단순한 ‘예스’가 아니라 미국은 중심축 정책을 위한 노력을 배가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 Agence France-Presse/Getty Images
- 존 케리 국무장관
그러나 등장한지 겨우 2년 된 아시아 중심축 정책이 그간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은 굴곡을 경험한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케리 장관의 발언은 급부상하는 중국에 맞서 미국이 더 적극적인 개입, 필요시에는 군사적 개입까지 해주기를 바라는 아시아 국가들을 안심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결국, 싱가포르의 석학 데스커는 ‘중심축’ 정책은 ‘알맹이 없는 속빈 강정’에 불과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는 “모두가 연설문을 보면서 연사의 발언에 자신들의 희망사항을 투영시킨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