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은 각성했다. 썩어빠진 엘리트는 필요없다’ 에 대한 촌평
‘민중은 각성했다. 썩어빠진 엘리트는 필요없다’.
개인적으로도 이번 촛불집회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슬로건 깃발.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주목했다. 나하고는 다른 느낌이었나보다.
이 모습이 '포스트 탄핵 시대' '포스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시대'의 "혼란의 조짐"으로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바로-지금-여기' 열리고 있는 가능성의 장, 그리고 향후 역사에대한 희망으로 다가왔다. 칼럼 필자가 지적하듯이 '괜찮은' '엘리트'가 있다는 사실. 굳이 걱정어린 심정으로 확인시켜주지 않아도 된다. 광장의 정치, 거리의 정치 참여자 모두가 알고 있다. 광장에, 거리에 나가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특정방송사 기자들은 쫓겨나지만 특정방송사 기자들은 격려를 받는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 또한, 기동복을 갖추고 방패를 들고 차벽을 쌓은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는 시민들이 도로에서, 광장 곳곳에서교통정리를 하고 화장실 안내를 하고 길을 찾아주는 경찰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대기하고 있는 119구급대에게는 따뜻한 캔커피를 가져다준다. 서울시공무원들과 시민들은 촛불집회, 광장의 정치에서 똑같은 주역이다.
SNS, 인터넷, 시민참여 언론공간,광장의 자유발언...'공론장' 어디에서도 포퓰리스트가 기승을 부리는 서구유럽, 영미, 혹은 일본에서처럼 반지성주의가 득세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아직도, 우리 사회의 문제점("혼란의 조짐")은 이미 오래전부터 변화해온, 그리고 비약적으로 고양된 시민들의 정치의식, 문화수준을 깨닫지 못한 이들의 구태의연한 사고, 행태, 혹은 변화 각성된 시민성civilty, 시민 문화를 '위험한 그 무엇'으로 바라보는 시선일 수 있다.
[양선희의 시시각각] “썩어빠진 엘리트는 필요없다”
입력 2016.12.06 21:42 수정 2016.12.07 06:05
‘민중은 각성했다. 썩어빠진 엘리트는 필요없다’. 지난 주말 울화통 터진 시민들이 몰려든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 집회에선 이런 글귀가 새겨진 대형 깃발이 높이 휘날렸다. 신묘한 재주로 달걀탑을 쌓으며(누란·累卵), ‘운명의 일주일’을 다음주 또 그 다음주로 넘기는 대통령의 꼼수는 이제 끝이 보인다. 하지만 이 깃발은 그 끝에서 시작될 ‘포스트 박근혜 시대’에 벌어질지 모를 혼란의 조짐을 강변하고 있었다.
‘지식인의 몰락’ ‘엘리트에 대한 불신’. 박근혜 게이트가 남긴 가장 깊은 상흔은 어쩌면 이 대목인지도 모른다. 이화여대 교수들이 대통령 최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최순실 딸의 부정한 입학과 학사편의 제공에 앞장섰고, 교수 출신 청와대 경제수석은 대통령 말 한마디에 기업으로부터 돈을 뜯어내고 협박도 불사했다. 소년등과한 고시 출신 영재들은 공조직을 사적으로 유용하는 대통령의 행동대장으로 나섰고 누구든 문제를 제기하면 조직에서 제거하는 데 앞장섰다. 알고 보니 우리 사회 최고 엘리트들이 실은 생각도 영혼도 없이 악의 평범성을 실천한 ‘아이히만의 후예들’이었다는 사실. “악의 실행자가 되지 않으려면 제발 생각을 멈추지 말라”는 해나 아렌트의 경고는 깡그리 잊혀졌다는 사실 앞에 우린 할 말을 잃었다.
‘광장정치’가 대의민주주의 사회에 등장한 건 그 자체로 국가가 실패한 것이다. 국정엔 무능하면서 부정부패의 연대를 형성한 대통령과 엘리트 관료들을 의회와 사법기관은 견제하지 못했고, 일부는 그 연대를 공고히 하는 데 부역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의 부패가 드러난 후에도 사심과 탐욕 앞에서 손익을 계산하며 우유부단해지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 ‘대통령의 명예로운 퇴진’을 운운하며 거래를 시도했고 광장의 힘에 떠밀려서야 탄핵 열차를 운행했다.
우리는 지식과 지성이라는 불평등한 자산을 많이 소유한 엘리트들에게 부와 권력이 쏠리는 것도 포용력 있게 용납해 왔다. 많이 배운 사람들은 사회의 문제를 발견하고 문제 해결 방안을 찾고 대내외적으로 공적인 영역을 안정시켜 보통 시민들의 일상이 무탈하게 굴러가도록 애쓸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나 이런 믿음은 허무하게 배신당했다. 그렇게 우리 사회 엘리트들에 대한 신뢰는 무너져 갔다.
6주째 이어진 ‘주말 촛불집회’의 질서정연함은 이런 신뢰붕괴의 반작용인지도 모른다. ‘법보다 주먹’을 마다하지 않고 다혈질로는 빠지지 않는 한국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차분함. 바닥에 처박힌 국격을 회복하려는 자존심이 다혈질 한국인에게서 무서운 인내심을 끌어낸 것은 아닐까. 지금은 너무 부끄러워서 참고 또 참을 수 있다. 하나 광장의 끝에 지도층에 대한 불신과 경멸만 남는다면 우리 사회는 또 어디로 갈 것인가.
이 즈음에서 우리는 조금만 옆을 보면 엄혹했던 시절에도 “최순실이 권력서열 1위”임을 폭로했던 박관천 경정이, 검찰 외압수사를 고백했던 윤석열 검사가, 몇 차례나 문화체육관광부 인사파동이 일어났을 정도로 부정한 세력이 꺼려했던 관료들도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엘리트가 썩은 건 아니라는 위안을 받아도 괜찮지 않을까. 지금 우린 오래 걸려도 반드시 사필귀정(事必歸正)을 이루고야 마는 대한민국의 저력을 확인하느라 이 힘든 시간을 겪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식인과 엘리트들에겐 사심과 권력이 아닌 공익에 헌신하는 윤리적 의무를 무겁게 각성하라고 주어진 시간들. 앞으로 또 생길지 모를 ‘사필귀정’의 순간에 제물로 던져질 엘리트가 다신 없길 바란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