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 정의-임혁백 칼럼
[세상읽기] 만델라식 ‘전환기 정의 세우기’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입력 : 2017.06.23 20:54:00 수정 : 2017.06.23 21:01:51
[세상읽기]만델라식 ‘전환기 정의 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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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란 독재정권이 저지른 적폐를 청산하고 적폐희생자에게 보상함으로써 사회정의를 세우고 인권을 확고히 보장하는 것이다. 전환기 정의는 민주주의가 탄생한 고대 아테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테네 시민들이 기원전 411년에 과두정을 무너뜨렸을 때 전환기 정의를 세우는 데서부터 민주주의를 재건하려 하였다. 그들은 독재자들의 재산을 몰수해서 시민들에게 되돌려주었고 독재가 부활하지 못하게 여러 법적 조치를 하였다. 그러나 제1차 전환기 정의 세우기가 미진하여 민주주의는 붕괴하였고 기원전 405년 아테네는 다시 독재 치하에 들어갔다. 기원전 403년 아테네 시민들이 다시 민주화를 이룩했을 때, 그들은 독재로의 회귀를 영구히 막을 수 있는 헌법개정을 하는 등 철저하게 전환기 정의를 세웠다.
아테네의 사례는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위해서 제일 먼저 취해야 할 개혁이 ‘전환기 정의 세우기’라는 것을 알려준다. 전환기 정의를 세우지 못하면, 귀에르모 오도넬 교수가 이야기한 바와 같이, 민주주의는 ‘급격히 사망’(quick death) 또는 ‘서서히 사망’(slow death)한다. 그러므로 전환기 정의 세우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전환기 정의를 세우지 못할 경우 구권위주의 체제의 적폐세력 잔당과 찌꺼기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와 민주정부의 개혁을 사보타주하고, 뒤집고, 무력화시킴으로써 권위주의로의 회귀의 기초를 쌓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유세에서 적폐청산이 새 민주정부의 최우선 과제라면서 적폐청산특별위원회를 만들겠다고 공약한 것이다.
현재 한국은 20년 전 남아공의 만델라가 전환기 정의를 세우려 했을 때와 매우 유사한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그러나 만델라는 이러한 난관을 뚫고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통해 전환기 정의를 세웠다. 우리는 만델라에게서 한국의 전환기 정의 세우기 모델을 발견해야 한다. 첫째, 만델라는 남아공에서 형사문제를 다루는 검찰과 법원 내에 인권유린과 침해에 책임이 있는 적폐세력이 잔존하고 있어서, 형사사법제도를 우회하여, ‘타협 없는 적폐세력 처벌’과 ‘패배주의적인 사면과 면책’의 제3지대에 있는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설립하였다. 둘째, 만델라는 선거를 통해 집권했지만 여전히 사회, 경제적 지배층은 백인 기득권자들이었고 그들은 만델라의 개혁에 저항하고 무산시킬 잠재력이 있었다. 만델라는 의회 소수파의 약점을 인정하고 진실과 화해위원회에서 무죄라는 진실이 밝혀지면 기득권 세력들도 사면대상이 될 수 있다는 타협을 하였다. 셋째, 사면 타협에도 불구하고 만델라는 전환기 정의 세우기에 충실하였다. 민주화 연구자들이 만델라의 전환기 정의 세우기가 성공한 것은 처벌보다 화해와 용서를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크게 잘못된 해석이다. 만델라는 과거 독재정권의 적폐, 인권유린과 침해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자들을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으나, 백인 기득권을 압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면카드를 제시해서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출범시키고 3년간 적폐세력을 조사, 처벌, 사면했다. 만델라는 적폐세력의 사면을 통해 국민통합을 이루려 하지 않았다. 진실과 화해위원회에 사면을 신청한 건수는 7112건이었으나 5392건은 아예 접수가 거부되었고, 불과 849명이 사면받았다. 만델라는 사면을 통해 백인 기득권과 타협했으나 그는 철저하게 적폐세력을 처벌하여 다시는 민주주의를 전복시키려는 기도를 하지 못하게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압도적 대다수 국민들의 통합을 이루어내었다. 넷째, 만델라의 전환기 정의 세우기의 우수성은 모든 적폐에 대해 포괄적으로 진실을 밝힘으로써 처벌대상자들이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게 했으며, 피해자에 대한 물적 보상과 인권회복을 통해 모든 국민들이 민주주의하에서 ‘정의는 더 이상 강자의 이익’이 아니라는 데 동의하게 되었고 이는 국민통합에 기여하였다.
한국에서는 촛불혁명이 아직도 현재 진행형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소수가 나라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구덩이를 파서 과거를 모두 묻어버리자고 주장하면서 재판도 끝나지 않은 박근혜를 조기 사면하자고 우기고 있다. 적폐청산이 늦어지는 동안 적폐세력은 다시 힘을 회복하고 사사건건 문재인 정부의 개혁을 저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소야대하에서도 전환기 정의 세우기는 반드시 추진되어야 하고 그 방식은 만델라가 한 것처럼 포괄적인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구성하여 적폐청산과 국민통합을 이루어내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처럼 각 부처, 검찰, 국정원 등에서 각개약진 방식으로 적폐청산을 추진하면 초점이 흐려지고 중복 범죄와 적폐를 저지른 자를 은폐할 가능성이 있다. 문 대통령은 여소야대 때문에 적폐청산 작업을 미룰 것이 아니라, 여소야대를 돌파하기 위해서 담대하게 압도적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전환기 정의 세우기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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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적폐청산 없이는 국민통합도 없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입력 : 2017.05.26 21:24:04 수정 : 2017.05.26 21:36:16
[세상읽기]적폐청산 없이는 국민통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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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 기간 내내 촛불정신의 완성을 위한 개혁 우선순위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그중 가장 뜨거웠던 논쟁은 ‘적폐청산 대 국민통합’ 논쟁이었다. ‘통합론자들’은 적폐청산과 국민통합을 대립적 위치에 놓았고, ‘청산론자들’은 ‘적폐청산을 통한 국민통합’을 주장하였다. 촛불혁명 기간 중 탄핵국면에서 촛불민심은 압도적으로 적폐청산을 지지하였으나, 선거국면에 들어서면서 촛불을 지지한 일부 후보들이 적폐청산 피로감을 이야기하면서 이제 국민통합에 나서야 한다면서 촛불시민들을 분열시키려 했다. 그럼에도 문재인 후보는 시종일관 흔들리지 않고 적폐청산을 통한 국민통합이 촛불민심이라는 선거유세를 하였다. 대선 결과는 문재인 후보의 완승이었고 ‘적폐청산론’이 촛불민심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통합론자들은 적폐청산과 국민통합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실패했다. 핵심 범죄자들을 사법처리하고, 희생자들에게 보상하고 인권을 회복시켜 정의를 다시 세워야 국민통합이 이루어진다. 적폐청산 없이는 국민통합도 이루어질 수 없다. 청산대상인 극소수의 적폐세력까지 대연정에 참여시켜 이룬다는 통합론자들의 국민대통합은 ‘가짜 국민통합’이다. 이는 가해자인 적폐세력을 진실을 밝혀 징벌하지도 않은 채 사면하는 것과 같다. 영화 <밀양>에서 본 바와 같이,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았는데도 피해자의 인권을 유린한 가해자가 먼저 스스로 용서받았고 화해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적폐청산을 통한 국민통합은 한국에서의 ‘전환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 세우기이다. 1974년에서 2000년까지 민주화가 일어난 100개국 중 52개국에서 과거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진실위원회와 전환기 재판(transition trials)이 설치되었다. 한국은 남아프리카, 아르헨티나, 칠레와 함께 진실위원회와 전환기 재판이 모두 설치된 17개국 중의 하나이다. 전환기 정의 세우기는 이제 보편적 현상이 되었고, 민주화 연구의 핵심 분야로 자리 잡았다.
민주정부에서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자행된 적폐에 대한 ‘과거청산’ 노력이 있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그 결과 박근혜가 반과거청산을 조직적으로 자행하고, 스스로 국정을 농단하는 권위주의로의 퇴행을 막지 못하였다. 따라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시대정신인 ‘적폐청산을 통한 국민통합’이라는 전환기 정의 세우기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적폐청산을 통한 국민통합’이라는 전환기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첫째, 적폐청산이 정치적 편견과 ‘승자의 정의’(victor’s justice)가 아닌 전환기 정의 철학과 이론에 기초해야 한다. 한국에서의 전환기 정의 세우기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자행된 적폐, 국정농단, 국민농단, 국가폭력, 국가약탈, 범죄, 그리고 인권침해와 유린을 ‘재해석’하고, 징벌하고, 피해자에게 보상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정의 세우기이다.
둘째, 이러한 적폐를 청산하고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과거정권의 적폐에 대한 철저한 진실규명이 있어야 한다. ‘진실 밝히기’보다 더 적폐세력의 반격을 막고 제압할 수 있는 무기는 없다. 이를 위해 진실위원회를 설치하여 인권침해, 과거 범죄, 국가폭력, 국정농단, 국가공권력의 갈취행위(racketeering)에 대한 진실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 진실위원회는 포용, 상호주의, 심의주의 원칙에 기초하여 청문회, 공청회, 미디어 공개를 통한 투명성 확보를 통해 진실을 밝힌다.
셋째, 국정을 농단한 핵심 범죄자들을 전환기 재판에 세워서 징벌해야 한다. 징벌은 철저히 법의 지배 원칙에 의거하여 처리해야 반적폐세력에게 반격의 빌미를 주지 않게 된다. 그러면서도 진실위원회는 더 많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징벌적 정의 원칙과 타협하면서까지 ‘진실을 위한 사면’ 제도를 활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넷째, 진실이 밝혀지면 희생자의 인권과 존엄성을 회복시키고 희생자에 대한 보상, 상처 치유가 이루어져서 국민통합의 단계에 들어간다. 범죄자에 대한 징벌과 함께 희생자 보상과 치유가 이루어지면 이제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전 국민이 다시 화해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마지막으로, 다시 화해와 통합이 이루어지더라도 적폐세력의 범죄와 국정농단에 대한 기억 그리고 적폐를 청산한 기록과 기억은 잊혀져서는 안 된다. 적폐세력을 용서할 수는 있으나, 그 기억을 지우면 우리는 다시 그 적폐세력에 의해 농단당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적폐를 기억하고 있을 때 우리는 반인권, 반인륜적인 적폐와 국정농단의 재발 방지를 제도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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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 정의’ 캄보디아 재판, 통일 후 북한에도?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60627.html#csidx3bc7fedfece2565be018557f496f351
고위층 단죄과정 첫 본격 연구
통일 뒤 북한 적용 가능성 검토
강경모 지음/TJM전환기정의연구원·2만2000원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60627.html#csidx6691dfd7342508c91d657714fe39b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