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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 정의-임혁백 칼럼

DemosJKlee 2017. 6. 24. 01:33


[세상읽기] 만델라식 ‘전환기 정의 세우기’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입력 : 2017.06.23 20:54:00 수정 : 2017.06.23 21:01:51
 
 

[세상읽기]만델라식 ‘전환기 정의 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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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란 독재정권이 저지른 적폐를 청산하고 적폐희생자에게 보상함으로써 사회정의를 세우고 인권을 확고히 보장하는 것이다. 전환기 정의는 민주주의가 탄생한 고대 아테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테네 시민들이 기원전 411년에 과두정을 무너뜨렸을 때 전환기 정의를 세우는 데서부터 민주주의를 재건하려 하였다. 그들은 독재자들의 재산을 몰수해서 시민들에게 되돌려주었고 독재가 부활하지 못하게 여러 법적 조치를 하였다. 그러나 제1차 전환기 정의 세우기가 미진하여 민주주의는 붕괴하였고 기원전 405년 아테네는 다시 독재 치하에 들어갔다. 기원전 403년 아테네 시민들이 다시 민주화를 이룩했을 때, 그들은 독재로의 회귀를 영구히 막을 수 있는 헌법개정을 하는 등 철저하게 전환기 정의를 세웠다.


아테네의 사례는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위해서 제일 먼저 취해야 할 개혁이 ‘전환기 정의 세우기’라는 것을 알려준다. 전환기 정의를 세우지 못하면, 귀에르모 오도넬 교수가 이야기한 바와 같이, 민주주의는 ‘급격히 사망’(quick death) 또는 ‘서서히 사망’(slow death)한다. 그러므로 전환기 정의 세우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전환기 정의를 세우지 못할 경우 구권위주의 체제의 적폐세력 잔당과 찌꺼기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와 민주정부의 개혁을 사보타주하고, 뒤집고, 무력화시킴으로써 권위주의로의 회귀의 기초를 쌓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유세에서 적폐청산이 새 민주정부의 최우선 과제라면서 적폐청산특별위원회를 만들겠다고 공약한 것이다.


현재 한국은 20년 전 남아공의 만델라가 전환기 정의를 세우려 했을 때와 매우 유사한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그러나 만델라는 이러한 난관을 뚫고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통해 전환기 정의를 세웠다. 우리는 만델라에게서 한국의 전환기 정의 세우기 모델을 발견해야 한다. 첫째, 만델라는 남아공에서 형사문제를 다루는 검찰과 법원 내에 인권유린과 침해에 책임이 있는 적폐세력이 잔존하고 있어서, 형사사법제도를 우회하여, ‘타협 없는 적폐세력 처벌’과 ‘패배주의적인 사면과 면책’의 제3지대에 있는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설립하였다. 둘째, 만델라는 선거를 통해 집권했지만 여전히 사회, 경제적 지배층은 백인 기득권자들이었고 그들은 만델라의 개혁에 저항하고 무산시킬 잠재력이 있었다. 만델라는 의회 소수파의 약점을 인정하고 진실과 화해위원회에서 무죄라는 진실이 밝혀지면 기득권 세력들도 사면대상이 될 수 있다는 타협을 하였다. 셋째, 사면 타협에도 불구하고 만델라는 전환기 정의 세우기에 충실하였다. 민주화 연구자들이 만델라의 전환기 정의 세우기가 성공한 것은 처벌보다 화해와 용서를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크게 잘못된 해석이다. 만델라는 과거 독재정권의 적폐, 인권유린과 침해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자들을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으나, 백인 기득권을 압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면카드를 제시해서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출범시키고 3년간 적폐세력을 조사, 처벌, 사면했다. 만델라는 적폐세력의 사면을 통해 국민통합을 이루려 하지 않았다. 진실과 화해위원회에 사면을 신청한 건수는 7112건이었으나 5392건은 아예 접수가 거부되었고, 불과 849명이 사면받았다. 만델라는 사면을 통해 백인 기득권과 타협했으나 그는 철저하게 적폐세력을 처벌하여 다시는 민주주의를 전복시키려는 기도를 하지 못하게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압도적 대다수 국민들의 통합을 이루어내었다. 넷째, 만델라의 전환기 정의 세우기의 우수성은 모든 적폐에 대해 포괄적으로 진실을 밝힘으로써 처벌대상자들이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게 했으며, 피해자에 대한 물적 보상과 인권회복을 통해 모든 국민들이 민주주의하에서 ‘정의는 더 이상 강자의 이익’이 아니라는 데 동의하게 되었고 이는 국민통합에 기여하였다.


한국에서는 촛불혁명이 아직도 현재 진행형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소수가 나라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구덩이를 파서 과거를 모두 묻어버리자고 주장하면서 재판도 끝나지 않은 박근혜를 조기 사면하자고 우기고 있다. 적폐청산이 늦어지는 동안 적폐세력은 다시 힘을 회복하고 사사건건 문재인 정부의 개혁을 저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소야대하에서도 전환기 정의 세우기는 반드시 추진되어야 하고 그 방식은 만델라가 한 것처럼 포괄적인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구성하여 적폐청산과 국민통합을 이루어내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처럼 각 부처, 검찰, 국정원 등에서 각개약진 방식으로 적폐청산을 추진하면 초점이 흐려지고 중복 범죄와 적폐를 저지른 자를 은폐할 가능성이 있다. 문 대통령은 여소야대 때문에 적폐청산 작업을 미룰 것이 아니라, 여소야대를 돌파하기 위해서 담대하게 압도적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전환기 정의 세우기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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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적폐청산 없이는 국민통합도 없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입력 : 2017.05.26 21:24:04 수정 : 2017.05.26 21:36:16
 
 

[세상읽기]적폐청산 없이는 국민통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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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 기간 내내 촛불정신의 완성을 위한 개혁 우선순위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그중 가장 뜨거웠던 논쟁은 ‘적폐청산 대 국민통합’ 논쟁이었다. ‘통합론자들’은 적폐청산과 국민통합을 대립적 위치에 놓았고, ‘청산론자들’은 ‘적폐청산을 통한 국민통합’을 주장하였다. 촛불혁명 기간 중 탄핵국면에서 촛불민심은 압도적으로 적폐청산을 지지하였으나, 선거국면에 들어서면서 촛불을 지지한 일부 후보들이 적폐청산 피로감을 이야기하면서 이제 국민통합에 나서야 한다면서 촛불시민들을 분열시키려 했다. 그럼에도 문재인 후보는 시종일관 흔들리지 않고 적폐청산을 통한 국민통합이 촛불민심이라는 선거유세를 하였다. 대선 결과는 문재인 후보의 완승이었고 ‘적폐청산론’이 촛불민심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통합론자들은 적폐청산과 국민통합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실패했다. 핵심 범죄자들을 사법처리하고, 희생자들에게 보상하고 인권을 회복시켜 정의를 다시 세워야 국민통합이 이루어진다. 적폐청산 없이는 국민통합도 이루어질 수 없다. 청산대상인 극소수의 적폐세력까지 대연정에 참여시켜 이룬다는 통합론자들의 국민대통합은 ‘가짜 국민통합’이다. 이는 가해자인 적폐세력을 진실을 밝혀 징벌하지도 않은 채 사면하는 것과 같다. 영화 <밀양>에서 본 바와 같이,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았는데도 피해자의 인권을 유린한 가해자가 먼저 스스로 용서받았고 화해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적폐청산을 통한 국민통합은 한국에서의 ‘전환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 세우기이다. 1974년에서 2000년까지 민주화가 일어난 100개국 중 52개국에서 과거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진실위원회와 전환기 재판(transition trials)이 설치되었다. 한국은 남아프리카, 아르헨티나, 칠레와 함께 진실위원회와 전환기 재판이 모두 설치된 17개국 중의 하나이다. 전환기 정의 세우기는 이제 보편적 현상이 되었고, 민주화 연구의 핵심 분야로 자리 잡았다.


민주정부에서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자행된 적폐에 대한 ‘과거청산’ 노력이 있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그 결과 박근혜가 반과거청산을 조직적으로 자행하고, 스스로 국정을 농단하는 권위주의로의 퇴행을 막지 못하였다. 따라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시대정신인 ‘적폐청산을 통한 국민통합’이라는 전환기 정의 세우기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적폐청산을 통한 국민통합’이라는 전환기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첫째, 적폐청산이 정치적 편견과 ‘승자의 정의’(victor’s justice)가 아닌 전환기 정의 철학과 이론에 기초해야 한다. 한국에서의 전환기 정의 세우기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자행된 적폐, 국정농단, 국민농단, 국가폭력, 국가약탈, 범죄, 그리고 인권침해와 유린을 ‘재해석’하고, 징벌하고, 피해자에게 보상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정의 세우기이다.


둘째, 이러한 적폐를 청산하고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과거정권의 적폐에 대한 철저한 진실규명이 있어야 한다. ‘진실 밝히기’보다 더 적폐세력의 반격을 막고 제압할 수 있는 무기는 없다. 이를 위해 진실위원회를 설치하여 인권침해, 과거 범죄, 국가폭력, 국정농단, 국가공권력의 갈취행위(racketeering)에 대한 진실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 진실위원회는 포용, 상호주의, 심의주의 원칙에 기초하여 청문회, 공청회, 미디어 공개를 통한 투명성 확보를 통해 진실을 밝힌다.


셋째, 국정을 농단한 핵심 범죄자들을 전환기 재판에 세워서 징벌해야 한다. 징벌은 철저히 법의 지배 원칙에 의거하여 처리해야 반적폐세력에게 반격의 빌미를 주지 않게 된다. 그러면서도 진실위원회는 더 많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징벌적 정의 원칙과 타협하면서까지 ‘진실을 위한 사면’ 제도를 활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넷째, 진실이 밝혀지면 희생자의 인권과 존엄성을 회복시키고 희생자에 대한 보상, 상처 치유가 이루어져서 국민통합의 단계에 들어간다. 범죄자에 대한 징벌과 함께 희생자 보상과 치유가 이루어지면 이제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전 국민이 다시 화해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마지막으로, 다시 화해와 통합이 이루어지더라도 적폐세력의 범죄와 국정농단에 대한 기억 그리고 적폐를 청산한 기록과 기억은 잊혀져서는 안 된다. 적폐세력을 용서할 수는 있으나, 그 기억을 지우면 우리는 다시 그 적폐세력에 의해 농단당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적폐를 기억하고 있을 때 우리는 반인권, 반인륜적인 적폐와 국정농단의 재발 방지를 제도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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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 정의’ 캄보디아 재판, 통일 후 북한에도?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60627.html#csidx3bc7fedfece2565be018557f496f351


자국민 인권유린 ‘크메르 루주’
고위층 단죄과정 첫 본격 연구
통일 뒤 북한 적용 가능성 검토
유엔캄보디아 특별재판부 연구
강경모 지음/TJM전환기정의연구원·2만2000원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시도가 늘 지옥을 만들어낸다.”


철학자 카를 포퍼가 캄보디아를 피로 물들인 ‘크메르 루주’를 겨냥해 이 말을 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들의 오도된 이데올로기가 초래한 참혹한 결과를 표현할 이보다 더 적확한 말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크메르 루주는 실제로 공산주의에 입각한 ‘농업 유토피아’의 건설을 꿈꿨다. “대중은 그들(자본주의자와 봉건주의자)로 인하여 피흘리며 고통받고 있다. 혁명의 목표는 그들로부터 인민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1975년 4월17일 집권 이후 크메르 루주 지도자 폴 포트는 모든 도시에서 인민을 농촌으로 소개시키고, 시장과 화폐를 폐지하며, 가정을 해체하고 사회를 협동조합 중심으로 재조직하는 내용 등을 담은 8개항 지침을 만들어 실행에 옮긴다. 부동의와 저항은 혁명과 해방의 이름으로 분쇄했다. 이들이 북베트남과 무력분쟁 끝에 다시 밀림으로 쫓겨난 1979년 1월7일까지 채 4년이 못 되는 기간 170만~220만명이 학살당했다. 당시 캄보디아 인구가 800만명쯤이었으니, 국민의 약 4분의 1이 희생된 셈이다.


“피해자들은 파헤쳐진 구덩이 끝자락에 무릎을 꿇린 상태에서 총살되거나, 삽·곡괭이 등으로 뒷머리를 가격당하거나, 비닐봉지 등으로 질식되어 살해되었다. 이들은 거대한 무덤에 100여 구 정도씩 매장되었다.”


‘킬링 필드’의 생지옥이 막을 내리고도 고위 책임자들의 단죄를 포함한 과거사 청산, 즉 ‘전환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를 시작하기까지는 다시 한 세대가 걸렸다.


강경모 미국 워싱턴주 변호사가 쓴 <유엔캄보디아특별재판부 연구>는 크메르 루주 지도자들에 대한 최초의 형사처벌 논의부터 유엔의 결의, 실제 재판부 설치와 수사 및 기소, 공판 과정, 관할과 적용 법률 등 법정에서의 쟁점, 판결 요지, 이 재판소의 성과와 한계 등을 관련 기록과 문서를 토대로 꼼꼼히 정리하고 소개한 국내 최초의 본격 연구서다.


전환기 정의라는 개념이 낯설다면 제2차 세계대전 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이나 도쿄 전범 재판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 수사와 재판,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과거사 정리와 진상규명 작업도 좁은 의미에서 전환기 정의 조치에 해당한다.


크메르 루주의 잔인한 인권 유린은 행위 시점에서 국제법과 캄보디아의 실정법을 공히 위반한 것이었다. 때문에 그들이 실각하고도 30년 만인 2006년 출범한 캄보디아특별재판부(ECCC, Extraordinary Chambers in the Court of Cambodia)는 유엔이 재판의 절차와 운영을 지원하는 국제 재판소이면서 캄보디아 법원의 일부로 설치됐다. 이 ‘혼합형 재판소’의 성과와 한계는 분명하다. 국가주석을 지낸 키우 삼판, 당 2인자였던 누온 체아, ‘캄보디아판 아우슈비츠’인 투올 슬렝(강제수용소) 소장 두치 등 고위 책임자 일부를 법정에 세웠지만, 살육을 실행한 중·하위 관리들까지는 처벌 범위에 넣지 못했다.


그럼에도 지은이가 이 재판소에 주목한 이유는 북한 때문이다. “이 책은 캄보디아에서 진행 중인 전환기 정의의 이행 과정을 통해 통일 이후 북한에서 전환기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하나의 시도다.”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2014년 2월 발표한 북한인권 보고서를 보면, 북한의 인권 침해 실상은 크메르 루주 시절 캄보디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유엔이 인정한 주권 국가의 공식 대표로 집권하고 있으면서 강제수용소 등을 설치해 대규모 인권 침해를 저지른 것이나 국제정치 환경에서 묵인 또는 비호하는 강대국이 뒤를 봐주는 점 등이 그러하다. 위원회는 당시 전환기 정의를 언급하면서 ‘인도에 반하는 죄’ 등을 물어 북한의 최고위 책임자를 국제형사재판소(ICC) 또는 임시국제재판소 법정에 세울 것을 권고했었다.


“내전 종식 후 유엔의 지원으로 성립한 현재의 캄보디아 정부가 과거 캄보디아를 지배하던 크메르 루주 구성원들을 처벌한 과정은 통일 이후 북한의 인권범죄를 처리하는 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10년 전 시작된 크메르 루주 재판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강제수용소 소장 두치는 35년형을 받아 복역 중인 반면, 1심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은 키우 삼판과 누온 체아는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했다. 이미 기소된 사람들 외에 5명의 수사가 추가로 개시됐으나, 한때 크메르 루주 구성원이었던 훈센을 수반으로 하는 캄보디아 정부의 비협조로 난항을 겪고 있다. 그보다 앞서 최고 지도자 폴 포트는 1998년 4월 병사해 단죄를 면했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60627.html#csidx6691dfd7342508c91d657714fe39b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