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와 국제 정세

바이든, ‘극단적 상황’선 핵무기로 선제 타격 방침

DemosJKlee 2022. 4. 1. 20:34

바이든, ‘극단적 상황’선 핵무기로 선제 타격 방침

입력2022.03.31. 오후 10:38
 
 수정2022.04.01. 오전 4:33
우크라 사태·북핵 등 영향으로
‘소극적 핵사용’ 공약 전격 폐기
기존 핵 정책으로 강한 억지력 가져
핵 사용요건은 ‘의도적 모호성’ 유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적국의 핵 공격에 대한 억지와 보복 목적으로만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이른바 ‘단일 목적’ 공약을 사실상 폐기했다. 지난 30일(현지 시각) 미 국방부는 의회에 제출한 ‘핵 태세 보고서’(NPR)와 ‘미사일 방어 보고서’(MDR)의 기조에 대한 보도자료에서 “미국은 미국과 동맹, 파트너의 근본 이익을 방어하기 위한 극단적 상황에서만 핵 사용을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극단적 상황’은 핵보유국의 대규모 재래식 무기 공격, 생화학 무기 사용, 사이버 공격 같은 ‘비핵(非核) 전략 위협’을 포괄한다. 오바마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도 각각 2010년과 2018년 의회에 제출한 핵 태세 보고서에서 사용했던 표현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바이든 대통령이 선거 공약에서 물러서서, 핵 위협 외에 재래식 무기와 다른 비핵 위협을 억지하기 위해서도 잠재적인 핵 대응을 위협할 수 있다는 미국의 오랜 접근법을 받아들였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유사시 적국이 미국을 핵 공격하려 할 경우 선제 공격 등의 방침을 계속 유지하게 됐다. 미국은 핵무기 사용 요건에 대해선 ‘의도적 모호성’을 유지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EPA 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의 핵 태세 보고서에는 미국 민주당 일각에서 바랐던 ‘핵무기 선제 사용 금지 선언’도 담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부통령 시절이었던 2017년 1월 “미국의 재래식 전력과 현재 위협의 본질을 고려할 때 미국이 핵무기를 선제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거나 타당한 그럴 듯한 상황을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해 10월 바이든의 핵 태세 보고서에 핵무기 선제 사용 금지 선언이 담길 것을 우려한 동맹국들이 기존 핵 정책을 바꾸지 말라고 미국 정부에 로비를 벌이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결국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이 적에 대한 선제 핵 공격을 포기하고 보복 핵 공격에만 나서겠다고 밝히면 미국이 동맹들에 제공하는 ‘핵우산’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인 1994년 시작된 핵 태세 보고서는 통상 대통령 취임 초기에 한 차례만 작성하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에서 ‘단일 목적’이나 ‘핵 선제 사용 금지’가 다시 논의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 국방부는 “이런 전략적 검토의 완료와 함께 대통령은 미국 핵 억지 전략에 대한 비전을 표현했다”며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미국 핵무기의 근본적 역할은 미국, 동맹, 파트너에 대한 핵 공격을 억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2009년부터 8년간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으로 일하며 오바마 대통령이 ‘핵 없는 세상’을 추진하는 데 일조했던 바이든은 핵무기 사용 목적을 ‘핵 공격 억지’로 제한하고 싶었지만 ‘근본적 역할’이란 표현을 쓰는 데 그친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핵과 생화학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중국과 북한 등이 극초음속이나 다탄두 미사일 개발로 미국의 미사일 방어를 무력화하려 하자 핵무기 관련 기존 정책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볼 수 있다. 동맹에 대한 확장 억제에 충실하겠다는 뜻으로, 북한에 대한 압박은 더 커질 전망이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미·북 간 대화 분위기가 되기 직전인 2018년 2월 발표한 핵 태세 보고서에서 전임 행정부들이 30여 년간 유지해온 평화·군축 기조를 전면 폐기하고 핵 재무장을 공식화한 바 있다. 당시 보고서는 중국과 러시아, 북한, 이란발(發) 핵 위협 요인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미국은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점 이후 핵무기 비축을 85% 이상 줄였고, 20년간 신규 핵무기를 배치하지 않았지만, 이 같은 방침에도 잠재적 적으로부터 점점 더 노골적인 핵 위협을 받고 있다”며 핵 무장 당위성을 강조한 바 있다.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geumbori@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