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가주의에 반대하지만, 태극기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혹자는 국기, 국가(國歌)에 대한 부정을 하지 않는 경우 국가주의에 포획된 것으로 단정해 버리지만 국기와 국가에 대해 맹세와 제창을 의식과 행사에서 강제적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것과 국기와 국가에 대해 존경과 자랑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양립가능하다.
특히, 각 국가의 국기와 국가는 서로 다른 역사와 의미를 갖고 있음을 부정해서도 않된다. 나치의 휘장과 히노마루도 국기이기 때문에 같은 국기인 태극기도 마찬가지이다라고 하는 것은 과도한 일반화이다.
프랑스의 국기에 자유 평등 박애의 프랑스 혁명 정신이 담겨 있듯, 대한민국의 태극기는 구한말 격동의 시기에 만들어져
민족해방투쟁 과정에서도 단결과 투쟁의 상징이었다. 그 태극기의 역사를 독재의 정당화를 위해, 일본의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시절의
역사와 뒤섞어 왜곡시킨 것은 박정희의 만행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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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고종 20) 조선의 국기로 채택되고, 1948년부터 대한민국 국기로 사용되고 있다.
국기 제정 논의가 처음으로 거론된 것은 1876년(고종 13) 1월이다. 운요호사건[雲揚號事件]을 계기로 한·일 간에 강화도조약 체결이 논의되는 동안 일본측은 "운요호에는 엄연히 일본의 국기가 게양되어 있었는데 왜 포격(砲擊)을 가하였느냐?"고 트집을 잡았다. 그러나 조정의 인사들은 국기가 무슨 의미와 내용을 지니고 있는 것조차 몰랐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국기 제정의 필요성이 활발하게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태극기의 효시에 대하여 종래에는 1882년 8월 9일 특명전권대사(特命全權大使) 겸 수신사(修信使)인 박영효(朴泳孝) 일행이 인천에서 일본 선박 메이지마루[明治丸]를 타고 도일할 때, 박영효가 태극사괘(太極四卦)를 창안하고 도안한 것이 정설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 일본에서 발행된 일간신문 《시사신보》에서 고종이 직접 도안을 하고 색깔까지 지정하였다는 보도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따르면, 중국 청나라의 마건충(馬建忠)이 청나라의 국기를 본받아 조선의 국기를 만들 것을 강요하자, 이에 분개한 고종이 청나라의 국기를 따르지 않고 청색과 적색으로 이루어진 태극원과 사괘를 그려 국기로 정한다는 명을 내렸다고 한다. 박영효는 고종의 명을 받아 태극기를 그리는 역할을 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태극기는 흰색 바탕에 태극문양과 건곤리감(乾坤離坎)의 4괘로 이루어져 있다. 흰
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성을 나타내고 있다. 태극문양은 음과 양의 조화를 상징하며, 우주만물이 상호작용에 의해 생성·발전하는 자연의 진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4괘는 음과 양이 서로 변화·발전하는 모습을 효(爻)의 조합을 통해 구체화한 것이다. 그 중 건은 우주만물 중에서 하늘을, 곤은 땅을, 감은 물을, 이는 불을 각각 상징한다.
이와 같이 만들어진 태극기는 그 후 널리 보급되었으나 도형의 통일성이 없어서 사괘와 태극양의(太極兩儀)의 위치를 혼동하여 사용해오다가 1948년 정부수립을 계기로 국기의 도안과 규격이 통일되었다. 국기의 제작·게양·관리 등에 관해서는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에 의거, 시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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