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벌어지기만 하는 한일 양국의 인식의 격차
- 언론들의 전 정권에 대한 적대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일본 언론의 보도 중, 노 전대통령에 대해 '~씨'를 붙인 것에 대해 한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부분은 논란을 만들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미 인터넷상에서도 얘기가 된 것처럼 일본 언론 혹은 공식 문헌 등에서는 공인에 대해 직함을 붙이지 않는 경우 '~씨'라고 쓰는 것은 통상적인 것이다.
나는 오히려, 다른 부분에서 한일 양국의 인식의 격차를 느끼고 있다. 흔히들, 한일 양국의 인식의 격차는 역사문제에 기인한 것으로 보곤 한다. 과거의 그림자가 길고도 짙게 드리운 한일관계라고라 할까...
그러나, 동시에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 바로 '대북 정책(관계)'와 관련된 문제가 한일 양국의 인식(관념idea)의 측면에 있어 또 다른 중요한 균열선으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물론, 한일관계에 있어 갈등과 대립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 원인이 노무현 정권의 '좌파적 성격', 한국 대중의 내셔널리즘에 영합한 포퓰리즘에 있었다고 분석하는 부분이 눈에 띈다. 특히, 마이니치신문의 경우 아예 노골적으로 노무현 정부가 '마찰을 일으켰다'고 표현한 것은 아연실색할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노무현 정권의 내셔널리스틱한 대응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고 비판도 했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일반시민들의 내셔널리즘을 자극한 원인은, 오히려 고이즈미 정권이 일본 국민들의 근저에 만연한 내셔널리즘을 자극해 정권의 지지를 확보하려는 포퓰리즘적 행태(야스쿠니 참배, 역사교과서 왜곡, 시마네현의 '다께시마의 날' 제정 등 독도를 둘러싼 영토문제...)였다는 점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거꾸로 인식하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역사왜곡'이라는 생각이든다.
두번째로는, 앞서서도 언급한 것처럼, 대북정책에 대한 불만이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로 인해 요미우리부터 산케이, 마이니치까지(아사히를 제외한-사실 이 문제와 관련해 아사히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기대를 표명하고 있다.
이 또한, 완전히 거꾸로된 인식이라고나 할까, 아전인수식 해석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나 또한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을 해왔다. 그러나 그 내용은 오히려 대북정책에 있어 '원칙적 입장-일부에서는 아마추어적이라고도 했지만, 그리 적절한 표현은 아닌듯-'만을 강조함으로써 대북강경책을 주도하고 있던 부시행정부에 말려들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노무현 정부는 부시행정부 등장 이후 급격히 악화되는 한반도와 그 주변정세에 있어 상당기간 무력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랬던 노무현 정부가 간신히, 부시 2기 행정부의 정책전환이라는 외적 요인 덕에 2차 남북정상회담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일본의 언론들, 특히 우익적 색깔이 짙은 요미우리와 산케이, 그리고 2002년 북일정상회담 이후 '구하는 모임'(일본인 납치피해자를 구하기 위한 모임)이 포섭하기 위해 가장 큰 공을 들였다는 마이니치 신문과 그 계열이 납치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공식적으로 지지를 표명하지 않을 것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불만이 있다고 해서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저널리즘의 기본을 저버린 행태라고 보여 진다.
주요 언론의 사설을 인용해 보면,
우선, 요미우리 신문 5월24일 사설///
- 이번 '사건'을 한국의 연고주의, 한국 정치의 반복된 '정치와 돈'의 문제로 분석한 이후,
노무현 전 정권의 시기, 한일 관계는 역사 인식 문제와 다케시마(竹島) 문제로 급격히 냉각되었으며, 정상간의 셔틀 외교도 중단되었다.
당시, 한국은 일방적인 북한 지원책으로 기우는 대북 융화정책을 고집했으며, 그로인해 일본, 미국과의 안보관계가 삐거덕거렸다.
정권교체로 출범한 이명박 정권은, 북한의 핵개발에 엄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으며 한미일 연계의 재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노무현씨의 죽음은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다음으로 산케이신문의 5월25일 사설
- 역시, 한국 정치의 정치문화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이후,
이미 퇴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대한 정치적 평가는 새삼스러운 감이 있지만, 대외 정책에 대해서만은 되짚어 보고자 한다.
노무현씨는 임기말이었던 2007년10월, 평양(平壤)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하는 등 김대중 정권에 이어「친북정책」을 진전시켰다. 그러나 결과는 주지하는 것처럼, 핵·미사일 문제를 비롯해 북한에 어떠한 변화도 이끌어 내지 못했다.
한일관계에서는, 영토문제나 야스쿠니(靖國) 문제를 비롯해 역대정권 이상의 대일강경책이 기억에 남는다. 여론의 반일애국 분위기에 영합한 인상이 짙다. 의혹에 대한 규명을 포함해, 이명박 정권에서는「노무현 시대」를 교훈으로 대내외에서 새로운 시대를 구축해주었으면 한다.
세번째는 마이니치 신문의 5월24일 사설
김대중정권의 후계자로서 출마한 대통령선거에서는, 경제발전을 주도한 「기득권세력」에 대한 적의 혹은 반미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젊은 세대 국민들의 공감을 얻었다. 대통령재임 중 국회의 탄핵 소추를 받는 등 파란이 계속되었고, 미국이나 일본과도 마찰을 일으켜 「혁명정권인 것 같다」라고 평해지기도 했다. 임기말에 가서 실현된 김정일 위원장과의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북한에 대해 차기정권이 이행할 수 없는 '후한' 지원 약속을 해서 화근을 남기기도 했다.
2000년대부터,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1997년 납치피해자 가족회 결성과 1998년 광명성 1호 발사를 계기로 일본 내에서 일기 시작한 '북한위협론'과 '북한 때리기'....... 유행하는 '반북의 정치'.....
그와는 정반대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10년간의 대북화해협력정책의 추진과 한국 사회의 대북인식의 변화.....
한일 양국의 정부와 시민사회에는 '과거의 그림자' 뿐만아니라, 현재의 과제에 대한 접근 방법과 미래의 비전에 대해서까지 무시하기 힘든 균열선을 안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균열선들이 특정의 계기를 만나 갈등으로 폭발한다든지, 양국의 국민적 감정의 충돌 양상으로 비화된다든지 하는 것은 앞으로도 피할 수 없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우익들과, 그리고 점점 그들의 움직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흘러가고 있는 일본의 언론들-정치인들은 '이명박 정권'의 등장에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년, 아니 1990년대 한국의 민주화의 급진전과 동시에 추진된 대북정책의 전환과 남북관계의 변화가 초래한 한국 사회의 '남북관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간과한 생각에 불과하다.
<참고>
>> 요격론에서 오보까지…일본에서 본 로켓발사 ‘소동’
http://blog.daum.net/_blog/BlogView.do?blogid=0BqbX&articleno=17198273&categoryId=362552
>>[한겨레21 기고]북 로켓소동, 일본 정국 전환의 배터리
http://blog.daum.net/_blog/BlogView.do?blogid=0BqbX&articleno=17198279&categoryId=757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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