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화 된 KBS 보도본부
‘권력 비판 실종’… 간부-기자, 팀장-팀원, 선후배 관계 단절
2010년 02월 03일 (수) 15:52:44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정권 홍보’, ‘권력비판의 실종’ 이라는 말은 어느새 KBS의 보도프로그램을 상징하는 표현이 돼 버렸다. 이런 비판은 이병순 전 사장이 취임한 직후부터 1년 여 동안 외부 시민단체 뿐 아니라 KBS 기자들조차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KBS에 김인규 사장이 취임한지 2일로 70일째를 맞으면서 그런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KBS 뉴스의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지난달 26일 열린 공정방송위원회에서 뉴스의 공정성이 훼손되고, 친정부 성향으로 바뀌었다는 노조의 비판에 대해 보도책임자들은 “일부의 주장일 뿐”이라며 수긍하지 않았다. 간부들의 이런 인식이 현재 KBS 뉴스를 규정하고 있음을 설명해주고 있다.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KBS 보도본부 내부의 구성원들에 의한 것이다. 논리적 사고와 이성적 판단의 집합체여야 할 기자조직이 갖는 특성을 고려할 때 현재 KBS 보도본부는 이미 그런 기능이 현저히 약해져있다는 평가다. 국장과 국원, 팀장과 팀원, 선배기자와 후배기자 사이에 원활한 소통과 활발한 논쟁이 사라져 기자조직의 활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자기검열 무기력감, 소통의 부재”=“요즘 기자들이 아침에 (4대강 등 정부정책이나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기사 아이템 발제를 한 것을 보면 ‘이런 아이템이 나가겠나’하는 생각들을 한다. 내 기사가 아니라 해도 ‘과연 우리 뉴스에서 제대로 하겠어? 노력은 하겠지만 안될 것’이라는 냉소가 퍼져있다.”(KBS 보도본부의 11~12년차 A기자)
지난 2008년 이병순 사장과 김인규 사장을 거치면서 KBS 보도본부 안에는 뉴스리포트에 대한 기자들의 무기력감과 자기검열이 팽배해 있다. “정부를 비판하는 아이템 하나를 내려면 그야말로 ‘생쑈’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간부가 세종시와 4대강 문제에 대해 “MB가 하는 일은 다 잘못된 거냐?”(KBS 기자협회 뉴스모니터단-지난해 12월23일)고 물었다는 사례는 KBS 보도국의 대정부관을 보여주는 사례다.
입사한 지 20년이 넘은 B기자는 “과거 같으면 활발히 토론하는 등 제작과정이 주로 자발적으로 이뤄졌지만 요즘은 자발적인 아이템이 내는 게 많이 줄어든 반면, 위에서 내려오는 아이템은 늘었다”며 “내봐야 취소되는 일이 반복되니 자연스레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뉴스를 바라보는 인식차보다 내부의 소통이 단절됐다는 점이다. 지난해 초부터 1년 가까이 KBS 기자들은 뉴스모니터단을 결성해 1~2주에 한 차례씩 KBS 메인뉴스 등을 분석해 보고서를 내왔다. 기자들의 비판은 외부의 시민단체나 언론의 비판보다도 강도가 높았다. 그럼에도 보도본부장, 보도국장 등 KBS 뉴스 책임자들은 줄곧 이에 대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A기자는 “외부든 내부든 비판에 대해 만성이 돼버린 것이 아니겠느냐”며 “우리들의 모니터 활동은 변화와 소통이라기 보단 이제 기록으로서 가치만 남은 것 같다”고 개탄했다. 이는 “소통의 부재와 활기의 상실”을 드러내준다.
내부적 견제장치인 보도본부 보도위원회(보도본부 책임자·기자대표 참여), 노사 공정방송위원회 역시 의미있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미디어법 파업과 관련해 마치 조중동처럼 보도했던 사례가 보도위원회 안건으로 올라 보도국장이 해당 팀장에 주의를 준 일이 있으나 사실상 강제력이 없다. 노사 대표가 참여하는 공방위 역시 공방을 벌이기만 할 뿐 실질적인 보도개선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보도국의 C기자는 “이런 장치가 뉴스에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며 “새 노조가 생긴 것도 이런 상황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자 선·후배간 관계도 단절=제작과정에서의 소통부재 뿐 아니라 기자 선·후배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지난달 14일 KBS 기자협회(회장 김진우)는 김현석 기자 보복성 지방발령 철회를 위한 제작거부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전체 회원 518명 가운데 155명이 투표에 참가해 147명의 찬성(94.8%)으로 제작거부가 가결됐다. 당시 참석했던 한 기자는 “이날 참석한 기자들은 대부분 일선 평기자들이며 적어도 15년차 이상 고참급 선배급 기자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고참 기자들은 ‘지방으로의 좌천인사로 제작거부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이유를 내세우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현재의 KBS 체제, 김인규 체제를 인정하느냐의 여부에 있었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11월24일 기자들은 노조와 함께 김사장의 취임식날 출근저지를 하겠다며 막고 있을 때 팀장급 이상 일부 고위 간부들은 사장 호위대 역할을 하기도 했다.
C기자는 “과거엔 선·후배가 이렇게 척을 지진 않았다”며 “후배 보복인사나 하고, 툭하면 프로그램 하지 말라고 하고, 해명하라고 하면 엉뚱한 얘기를 하니 일부 선배들과는 서로 마주치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A기자는 “이병순 사장 때와는 달리 시니어급 기자들은 김인규 사장에 대해 특보 출신이라는 반감과 함께 ‘만만치 않은 사람’ ‘실세’라 보고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젊은 기자들이 문제제기하고 싸워도 이젠 별로 나서주는 선배들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고 설명했다.
15년 차 이상의 고참 기자들도 이런 점을 일부 인정한다. D기자는 “거슬러 올라가면 문제는 특보 사장에 대한 시각차”라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선·후배, 위·아래의 단절감은 해소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KBS 내부에선 이런 침체된 분위기를 극복하려면 계속 싸워야한다는 조언을 한다. D기자는 “기자들의 보도비판 보고서를 국장·본부장이 외면해도 계속 비판을 해야 작은 것이라도 이룰 수 있고, 함부로 못한다”며 “절망적인 상황 속의 사투지만 계속 싸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른 기자도 “쉽게 풀리진 않겠지만 싸움은 지루하게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초입력 : 2010-02-03 15:52:44 최종수정 : 0000-00-00 00:00:00
‘MBC장악’ 정권핵심에 불똥튀자 꼬리자르기-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 사퇴 (0) | 2010.03.20 |
---|---|
[레디앙]현대차 전주 정규직 2차 잔업거부 -"비정규직 총고용 보장" 요구 (0) | 2010.03.11 |
[미디어오늘]고대 총장 망언-언론의 이상한 침묵 (0) | 2010.01.29 |
MB정부 교육예산- 복지비 덜쓰고… 일제고사엔 ‘펑펑’ (0) | 2009.12.22 |
루저들의 반란, MBC 드라마 <히어로>와 <용덕일보> (0) | 2009.11.30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