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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 노회찬 심상정 없는 한국 정치의 풍경

진보정당 및 진보정치

by DemosJKlee 2010. 6. 10.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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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회찬 심상정 없는 한국 정치의 풍경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입력 : 2010-06-09 18:02:11수정 : 2010-06-09 18:02:12

 


지방선거에서 이긴 야당의 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승리의 여세를 몰아 정권의 기반을 무너뜨리며 대선까지 한달음에 내달려 집권당이 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작은 선거는 다 이겨도 대선의 결정적 순간에 선택받지 못해 다시 야당을 하는 길이다. 전자는 2006년 지방선거 이후 한나라당이, 후자는 2002년 지방선거 이후 한나라당이 간 길이다. 민주당이 어느 경로를 밟을지 두고 보면 알겠지만, 이미 시사하는 바가 있다.

 

민주당이 노무현 정부 때의 한나라당처럼 강력한 야당이 아니며,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 정권처럼 호락호락한 집권세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공천 개혁도 안하고, 기득권에 매달려 선거 연합을 차버리고, 조직·노선·정책을 쇄신하지도 못한 민주당에서 그런 그림자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말하자면, 민주당이 선거에서 이겼다고 해서 쉽게 달라지지 않는, 어떤 견고한 특질 같은 것이다. 게다가 시민들의 균형 감각 덕에 횡재한 민주당은 혁신에 필요한 자극을 받을 기회도 놓쳤다. 이는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만일 민주당이 대안 세력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그동안 이 사회는 더 값있게 쓰여질 소중한 자원을 한여름 밤의 꿈으로 사라질 민주당의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제물로 허비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 가운데 진보정치가 있다.

 

선거 때마다 진보정당은 잔칫집 돼지였다. 말 꽤나 하는 이들은 이제 돼지도 잔칫집 손님으로 초대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했지만, 정작 돼지가 나타나면 너도 나도 달려들어 잡아먹으려 했다. 이번 선거도 예외는 아니었다. 진보정당을 삶아 먹고 배부른 이는 있어도 진보정치는 없었다. 물론 민주노동당의 성적은 지난 선거 때에 비해 나쁘지는 않지만, 민주당의 횡재에 비하면 초라한 것이다. 게다가 그조차 진보정치 발전을 통해 수확한 것이 아니었다. 진보신당과의 연합 대신 민주당과 단일화해서 얻어낸 것이다.

 

 

잔치집 돼지 신세의 진보정당

 

진보신당은 어떤가. 진보의 가치를 고수하느라 고립되고, 이명박 정권과 동반 패배했으며 심상정 사퇴 문제로 당내 갈등에 휩싸였다. 잔치는 이렇게 끝났다.

 

만일 진보세력이 그리 크진 않더라도 일정한 규모의 정치세력으로서 독립할 수 있다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의 힘으로 인해 상당한 발언권을 갖고 민주당과 당당히 선거 연합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연합의 성과로 민주당의 혁신을 이끌어내고 진보정치도 강화하며 함께 승리를 구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보정당은 연합의 대상이 될 만큼 가시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진보정당과의 연합을 차버린 민주당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 공허해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진보적 의제의 부상 속에서 왜소해진 진보정당의 역설. 이것이 바로 6·10 민주항쟁 23년째를 맞는 오늘 ‘진보 없는 한국 정치’의 실상이다.

 

반듯한 진보정당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진보·보수의 균형이라는 교과서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다수의 서민, 소외된 이들이 자기의 정치적 대표를 가짐으로써 사회적 평화를 누릴 것인가, 그들을 정치적 유령으로 취급함으로써 갈등과 모순 가득한 사회를 고수할 것인가 하는 매우 실질적인 문제이다. 그런데 진보정치에 대해 이 사회가 보이는 관심의 수준이란, 완주해서 이명박 정권을 도울 것인가, 사퇴해서 민주당을 도울 것인가 하는 왜곡된 양자택일의 문제에 머물러 있다. 노회찬이 왜 고립 속에서 완주해야 했는지, 심상정은 어떤 진보정치를 꿈꾸기에 눈물의 사퇴를 했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다.

 

 

이 세상 절반의 큰 짐 진 그들

 

노회찬·심상정은 그들이 아니면 누구도 대변해 주지 않는 이들의 삶을 위해,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도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들의 일은 다른 누구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6년 전 겨우 10명에 불과한 진보정당 의원이 이 사회와 삶에 대해 던진 질문의 무게를 한 번 기억해 보라. 그런데 어느새 우리는 그들을 잊었다. 이 세상의 절반을 떠받치는 일을, 너무 큰 짐을 두 사람에게 맡겨 놓고 돌아서 버렸다. 그 때문에 고립에 빠진 노회찬, 고립을 탈출하려는 심상정 모두 한쪽 날개를 잃은 새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보수든 진보든 이 땅에 사는 이는 모두 두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다. 동의한다면, 그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자. 노회찬이 지키려는 것, 심상정이 확장하려는 것에 대한 우리의 지지를 보여주자. 그리고 다시 한 번 지·못·미.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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