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발턴 : 소수 엘리트를 제외한 민중 전체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24) 라나지트 구하 Ranajit Guha
라나지트 구하는 영국에 의해 아시아 최초로 근대적인 토지제도와 교육기관이 설립된 벵골 지방에서 1923년에 태어났다. 구하는 캘커타 대학에서 역사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학문의 길을 포기하고 1946년부터 본격적으로 공산주의 운동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에 항의하여 인도 공산당을 탈당한 뒤 1959년 영국에 건너가 그곳에서 21년간 머무르면서 역사 연구를 재개하게 된다. 1982년 학술지 <서발턴 연구>를 창간하고 1983년<서발턴과 봉기>를 출간하면서 서발턴 연구를 주도했다. 1997년 <헤게모니 없는 지배>를 출간한 뒤 은퇴하여 현재는 오스트리아에 거주하고 있다.
구하는 식민주의나 민족주의 역사학이 실은 공모 관계에 있는 엘리트주의 담론들이라며 허구적 역사학들이 배제한 인도의 민중을 역사 주체로 복원하고자 했다. 궁극적으로는 민중의 정치 진출과 역사적 재현을 가로막아 온 엘리트주의와 권력관계의 강고한 벽을 깨뜨리려는 것이었다.
서발턴(subaltern·하층민) 연구가 출범했을 때, 구하는 인도에 관한 식민주의 역사학이나 민족주의 역사학이 외견상으론 서로 대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은 서구적 근대성을 지향하고 민중을 배제한다는 측면에서 공모 관계에 있는 엘리트주의 담론들로 간주하면서 그 둘의 대립적 관계를 해체시켰다. 그에 따르면, 인도의 식민지 역사를 유럽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계몽을 통한 근대 사회로의 이행 서사로 구성하거나, 부르주아 민족주의 엘리트가 이끈 인도 민족(국가)의 자기실현의 역사로 서술하는 것은 명백한 허구다.
구하는 이 허구적인 엘리트주의 역사학들에서 대상화되어 온 인도의 민중을 역사의 변화를 만들어 낸 주체로 복원하고자 했다. 이 복원 작업을 위해 그는 그람시로부터 차용한 서발턴 개념을, 그리고 경제 결정론이나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우선성을 고수하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아니라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을 인도사의 맥락에 접합시켜 포스트식민적 관점에서 서발턴의 역사를 재구축했다. 이런 구하의 기획은 1960년대 이후 역사주의와 휴머니즘적 보편 주체를 비판해 온 포스트마르크스주의의 산물이었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에서 현지의 조건에 맞게 마르크스주의를 수정하면서 근대성/식민성에 관한 새로운 이론들과 실천들을 전개해 온 ‘트리콘티넨털 마르크스주의’(Tricontinental Marxism)의 상관물이었다.
구하는 서발턴을 계급·카스트·연령·젠더·지위를 비롯한 모든 층위에서 권력관계에 종속된 상태를 가리키는 이름이라고 말한다. 또 엘리트들을 제외한 나머지 ‘민중’(people) 전체를 서발턴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권력관계의 여러 층위에서 종속상태에 놓여 있는 다양한 사회집단들을 가리키는 민중으로서의 서발턴 개념은 고정적이고 통일적인 어떤 본질적 정체성을 전제하거나, 계급이나 민족 등 어느 하나의 범주를 특권화하지 않는다. 서발턴은 여러 범주들 사이에서 혹은 그것들을 가로질러 작동하는 지배와 종속의 복잡하고 다중적인 관계들 안에 있는 민중이라는 의미에서 통일적이거나 본질주의적인 주체가 아니다. 이 비본질주의적 주체의 이름인 서발턴은 권력관계에서의 종속적 위치를 가리키지만, 이와 동시에 그것의 불변의 특징은 엘리트와의 차이와 지배에의 저항이다.
1783년부터 1900년까지 인도에서 발생한 110개의 농민 봉기들을 다루고 있는 <서발턴과 봉기>는 인도의 식민정부와 지배집단이 남긴 사료들에 대한 ‘징후적인’ 혹은 ‘결을 거스르는’ 독해 전략을 통해 엘리트의 지배에 대한 서발턴의 저항을 입증한 서발턴(의) 역사의 전범이자 서발턴 연구를 이론적으로 정초한 저작이다.
이 책에서 구하는 전근대 시기의 농민운동을 전(前)정치적인 것으로 본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사회사가인 에릭 홉스봄의 근대성 논리와 유럽중심적인 보편사 논리를 비판한다. 그는 인도 농민들이 일으킨 봉기 그 자체가 서발턴 농민의 정치적 의식에 관한 이름이며, 그런 의미에서 인도의 농민은 전근대적이거나 전정치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농민들은, 비록 서발턴의 부정성을 보여 주는 요소들을 버리지는 못했지만, 일정한 조직과 강령을 구비하고 있었고, 또 그들의 오랜 삶의 전통에서 유래하는 독자적 전술을 구사하면서 근대적/식민적 권력관계에 의식적으로 대항하여 지배적 기호체계의 작동을 단절시킨 동시대의 정치적 주체였다. 서발턴 농민들은 식민주의 역사학에 의해 식민 행정의 측면에서 처리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되거나, 민족주의 역사학에 의해 민족(주의)의 서사를 돋보이게 하는 장식물로 취급되어 왔다. 하지만 구하는 서발턴 농민을 식민 행정과 민족 서사의 틀 안에 귀속되지 않는, 그 어떤 것으로도 환원 불가능한 고유한 의식을 지닌 행위주체로 복원해 냈고, 그 농민의 봉기/의식의 구조 혹은 일반적 형식을 규명했던 것이다.
구하가 보여 준 것은 인도의 식민 역사에는 엘리트의 정치와는 구조적으로 분리되는 서발턴의 정치, 즉 식민 권력과 토착 권력에 대항하면서 독자적인 정치적인 행위/의식을 드러낸 ‘민중의 정치’가 엄연히 존재했다는 점이었다. 그에 의하면, 이 민중의 정치는 그 정치적 동원(動員)의 측면에서 엘리트 정치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민족주의 정치는 물론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정치와 같은 엘리트 정치들이 식민주의가 이식한 근대적 정치 제도에 의지하는 합법적이고 수직적인 동원을 보여 준 반면, 민중의 정치는 전통적인 친족 관계와 영토의식, 카스트 제도, 종교 관념 등에 의지하는 수평적 동원을, 또한 전투적이면서 자발적인 형식의 동원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비록 단속적(斷續的)이고 국지적이긴 했어도 서발턴으로서 민중의 정치 영역이 역사적으로 현존했다는 사실은 권력을 쥔 지배 엘리트들이 민중에게 헤게모니를 행사하지는 못했음을 보여 주는 증거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압축해서 보여 주는 것이 그의 세 번째 저서의 제목이자 널리 알려진 ‘구하 테제’인 <헤게모니 없는 지배>(Dominance without Hegemony)이다. 그 테제에 따르면, 서발턴의 저항은 권력관계 안에서의 저항, 다시 말해 늘 지배의 심급에서 실행되는 강제와 설득의 효과 안에서의 저항이므로, 지배에 저항하는 서발턴의 정치는 엘리트 정치와 분리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엘리트 정치에 완전히 통합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엘리트 정치와 ‘이접’(離接)해 있다. 이 이접되어 있는 위치를 ‘지배 내의 외부’라고 할 수 있다면, 서발턴으로서의 민중의 정치가 표상하거나 위치하는 저항적 차이의 공간은 엘리트 정치의 ‘내부에서의 외재성의 공간’이다. 그 공간은 엘리트 정치가 강제하거나 동의하기를 요구하는 이데올로기적 정체성에 맞서 그 정체성에 차이를 만들어 균열을 내는 장소, 엘리트 정치가 유지하고자 하는 지배 질서를 그 내부로부터 교란시키는 장소이다. 다시 말해 그곳은 서발턴이 엘리트의 지배의 완성을 저지하는 정치적 주체로 출현하는 장소인 것이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최근의 저서 <세계-사의 한계에 있는 역사>(History at the Limit of World-History·2002년)에서 구하는 헤겔의 제국주의적인 역사철학이 역사의 산문을 국가의 기록과 동일시함으로써 국가의 삶으로서의 역사학이라는 인습적 통념을 철학적으로 확립했고, 그 국가주의적인 역사학의 굉음으로 인해 일상의 삶 속에서 민중들이 내뱉는 신음소리와 나지막한 속삭임은 들리지 않게 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 네 번째 저서에 이르기까지 구하의 역사 연구 작업 전체를 관통해 온 문제의식은 근대 역사학이 국가 권력의 서사양식이자 지배 이데올로기의 재현 체계로 작동해 온 방식을 심문하고 그것의 모순과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서발턴 민중의 정치적 진출과 역사적 재현을 가로막아 온 엘리트주의와 권력관계를 파열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김택현/성균관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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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민주화 틈새 ‘유령들’을 말하다 |
파독 간호사·도시 빈민 등 ‘서발턴 연구’ 통해 ‘희생 정당화’ 뉴라이트·‘전형화’ 민중사 비판 “박정희 시대는 이들이 주체성 빼앗긴 때”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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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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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시대의 유령들-기억, 사건 그리고 정치> |
파독 간호사·도시 빈민 등 ‘서발턴 연구’ 통해 ‘희생 정당화’ 뉴라이트·‘전형화’ 민중사 비판 “박정희 시대는 이들이 주체성 빼앗긴 때” 강조
‘박정희 시대의…’ 펴낸 김원 교수
박정희 시대 경제성장의 성과를 강조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때 우리나라엔 산업화에 목숨을 건 사람들만 가득했던 것만 같다. 그 시절 치열했던 민주화 투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억압받던 모든 사람들이 ‘민중’으로 하나 되어 독재에 맞섰던 것처럼 느껴진다. 과연 박정희 시대 사람들을 산업화 세력 또는 민주화 세력으로 뭉뚱그려 부르는 것이 가능할까?
바로 여기에 역사의 주체를 설정해 온 근대 역사학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김원(41·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과학부 교수가 최근 펴낸 <박정희 시대의 유령들-기억, 사건 그리고 정치>는 그동안 지배담론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목소리 없는’ 주체들을 중심으로 박정희 시대를 읽어낸 책이다. 책에서 제시하는 목소리 없는 주체들은 파독 간호사, 광산 노동자, 도시 빈민, 소년원생, 범죄자 등이다.
지난 16일 만난 김 교수는 “지배담론으로는 그 존재가 포착된 적이 없는 ‘유령’들을 통해 민족, 국가 그리고 표준화된 근대를 정상사회의 기준으로 만든 ‘아버지 세대’의 유산을 극복하려고 했다”며 이 책을 쓴 동기를 밝혔다.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 <여공 1970, 그녀들의 반(反)역사> 등 전작들에서부터 김 교수가 일관되게 펼치고 있는 연구는 크게 ‘서발턴 연구’라 부를 수 있다.
‘하위’(sub)라는 말과 ‘타자’(altern)라는 말이 결합된 서발턴은, 민족이나 계급 등 지배적 담론들이 규정하는 정체성에는 포함되지 않는 존재를 뜻한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처음 썼던 이 말을 인도 학자 라나지트 구하가 적극적으로 수용해 하나의 연구 경향으로 발전시켰다. 그 뒤 가야트리 스피바크, 호미 바바 등 탈식민주의 학자들의 비판을 통해 그 개념이 더욱 확장됐다. 학자들마다 입장의 차이는 있지만, 근대적 주체라 부르기 어려운 농민, 노동자, 룸펜, 노숙자 등 광범위한 비서구 사회의 종속 집단을 연구한다는 경향은 대체로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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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41)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과학부 교수 |
60~70년대 한국현대사를 전공한 김 교수는 “조직된 것, 곧 제도화되고 질서화된 것만을 유의미하다고 보는 기존 지배담론에 의문을 느껴 서발턴 연구에 파고들게 됐다”고 한다. 그가 박정희 시대의 서발턴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택한 방법은 두가지다. 하나는 파월 병사나 파독 노동자, 기지촌 여성, 도시 하층민 등의 ‘구술’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재현하려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등산 타잔’ 박흥숙, 광주대단지에서 일어났던 봉기, 소년원생들의 탈주 등 ‘사건’들을 통해 그들의 존재를 읽어내는 것이다.
이런 연구작업을 통해 그가 먼저 비판의 화살을 겨누는 지점은 뉴라이트의 역사인식이다. ‘산업전사’로 불렸던 파월 병사나 파독 노동자, 기지촌 여성, 도시 하층민들이 말하는 고통과 트라우마를 통해, 그는 ‘국민국가 건설과 조국근대화’를 내세워 이들의 희생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는 뉴라이트 계열 역사인식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이들을 산업화의 피해자로 전형화하는 기존의 민중사·계급사에도 비판의 날을 세운다. 무등산 타잔 사건이나 광주대단지 사건 등은 비정상인의 폭력과 범죄로 치부됐고 민중사·계급사도 이들을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 교수는 도시공간의 형성이 도시 빈민을 만들어내고 이들을 분리하고 배제했던 사회적 상황 등을 냉철하게 분석하며, 이들 도시 하층민들이 일으킨 사건들과 광주항쟁 등 ‘민중’ 봉기로 평가되는 사건들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묻는다. 민족·계급 등 근대적 정체성을 기준으로 민중이라는 주체를 설정하고, 이에 걸맞지 않으면 배제하고 묻어버린 지식체계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다. 부마항쟁의 성격을 두고 ‘반독재민중항쟁’이 아니라 근대화 과정에서 배제된 도시 하층민들이 대규모로 참여한 ‘서발턴들의 봉기’로 풀이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렇지만 김 교수는 자신의 연구가 기존 지배담론들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진 않는다. 그는 “내 작업은 기존의 지배담론에 경계와 자극을 줘, 그 한계를 일깨우기 위한 작업”이라고 말한다. 그는 박정희 시대가 무엇이든 제도화하고 질서화했던 ‘아버지 세대’의 출발점이며, 아직까지 극복되지 못한 현재진행형이라고 본다. 뉴라이트 역사나 민중·계급사가 모두 묶여 있는 ‘아버지 세대’의 담론에 불온한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 서발턴 연구의 구실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특히 서발턴들에게 박정희 시대가 “사회구성원이자 정치적인 것을 구성할 수 있는 주체의 자격을 빼앗긴 때”라는 점을 강조하며 서발턴 연구의 정치 담론으로서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아줌마’란 이름으로 정치로부터 추방당했던 ‘현실 속 서발턴’들이 2007년 이랜드 비정규직, 2011년 홍익대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점거 농성’이란 사건을 통해 새로운 자기 정체성을 찾아 나선 것을 그 사례로 제시했다.
글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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