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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60돌과 평화의 의미

한반도

by DemosJKlee 2013. 1. 23.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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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휴전’ 60돌과 평화의 의미 / 김연철
기사등록 : 2013-01-03
한겨레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2013년은 휴전협정을 맺은 지 60년이 되는 해다. 1953년 그해 동족상잔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다만 일시적으로 중단되었을 뿐이다. 종전이 아니라, 휴전의 상태로 우리는 한 갑자의 세월을 살았다. 이렇게 불안정한 휴전체제에서 계속 살아도 되는가? 새해를 맞으며 7·27의 의미를 묻고 싶다.

 

휴전체제는 불안정하다. 이명박 정부 5년을 지나며 탈냉전의 노력들은 후퇴했고, 전쟁이 남긴 증오의 기억들이 증폭되었다. 차가운 전쟁, 즉 냉전 시대로 복귀했다. 세계적인 탈냉전이 끝난 지 20년이 지났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시대착오의 세월을 살고 있다. 휴전협정조차 지켜지지 않은 한반도에서, 휴전체제를 관리할 수 있는 군사정전위원회의 기능도 중단된 지 오래다. 세계적으로 가장 중무장한 비무장지대, 그런 역설의 공간에 인적이 끊기고 대립이 살아나고 있다.

 

평화는 어디에 있는가? 북핵 협상의 동력이 사라졌다. 6자회담도 아스라한 과거가 되었다. 평화체제 논의는 결빙된 채로 방치되고 있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평화 프레임이 안보 프레임에 졌다. 평화가 길을 잃은 것인가? 최근 몇 번의 선거에서 확인된 접경지역의 합리적 선택도 번복되었다.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접경지역은 긴장효과로 재산권의 피해를 보고, 관광객 감소로 지역경제가 악화되고, 그래서 전통적인 안보가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평화에 표를 던졌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일까? 고통스런 성찰이 필요하다. 전쟁의 기억과 평화의 상상력 사이에 거대한 벽이 있었다. 세대 간에 기억의 단절이 존재했음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과거를 향한 현재의 정치를 너무 소홀히 했다.

 

망각하고 타협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불안정한 휴전체제에 살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불감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점점 북한 변수에 둔감해지고, 남북관계의 군사적 긴장상황을 망각하고, 분단의 현실을 잊어버린 채 평화를 이상주의로 치부하는 경향이 슬그머니 번지고 있다. 인식과 현실의 격차가 벌어지는 동안, 휴전체제는 안으로 곪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북핵 문제의 악화된 현실과 북한 체제의 느린 변화를 부정하기 어렵다. 평화는 일방의 의지가 아니라, 상호 관계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맞다. 결코 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야권 일부의, 분단의 현실을 망각한 채 대중의 안보논리에 편승하자는 의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중도라는 이름으로 혹은 새로운 정치라고 말하면서, ‘안보는 보수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정치란 그렇게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과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정치는 감동을 줄 수 없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휴전과 종전 사이에서, 전쟁과 평화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전쟁의 기억은 넘쳐나는데, 평화의 상상력은 여전히 미약하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불안정한 휴전체제를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 그것이 우리 시대에 맡겨진 역사의 책무다. 단순히 과거 정부의 성과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정세 변화를 반영해서 새롭게 평화의 길을 제시해야 한다. 일상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평화가 당위가 아니라, 일상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의 심정으로 평화를 기다려야겠다. 내일은 평화가 올까? 다시 희망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내는 것이 힘겹지만, 휴전협정 60년의 새해가 다시 우리에게 평화의 의미를 묻고 있다. 평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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