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의 국내 정치와 외교는 ‘벤저민 버튼’의 시간 같다. 안으로는 유신 잔재가 되살아나고, 밖으로는 냉전구도가 부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국가기관들의 대선개입은 과거지사가 아님에도 과거라 강변한다. 과거에 머물러야 할 유산은 현재로 만들고, 현재는 과거로 만들면 국가의 미래는 있을까?
올해는 한·미동맹 60년이 되는 해다. 양국관계의 특별함과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켜온 공헌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그럼에도 탈냉전이 도래한 지 20년이 넘도록 대결적 군사동맹이 강화되고 있는 것은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물론 이유는 있다. 여전히 분단 상태고, 북한발 위협이 잔존하는 데다 핵무기까지 개발했다. 그러나 중국과 소련의 위협이 사라졌고, 남북한 국력차가 심대한데 군사동맹이 오히려 강화일로에 있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이며, 국가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것일까?
냉전이 무너진 직후 미국도 동맹 질서의 축소를 모색한 적이 있다. 하지만 9·11 테러 이후 군사주의로 회귀했고, 동맹 자산에 더 집착하게 되었다. 부시는 군사력의 첨단화와 기동화를 통해 해외주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함으로써 패권을 행사하고자 했다. 오바마에 와서는 절박한 재정위기로 국방비를 더 많이 축소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로 인해 동맹국들에 아웃소싱하려는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는데, 중심에 한국과 일본이 있다. 한·미동맹의 상대는 북한이지만, 미국의 최종 타깃이 중국이라는 것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즉 미국 패권 하락이 현실화하고 중국 부상이 가속화하는 가운데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선택은 한·일 두 동맹국에 비용과 책임의 상당부분을 떠넘기는 것이다.
동북아 세력 재편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미국과의 동맹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의 현 동북아 전략이 한국에 요구하는 비용이 엄청나고 선택은 딜레마에 가깝다는 것이다. 요구에 그대로 응할 경우 한·중 갈등은 피하기 어렵다. 중국과의 교역량이 전체의 4분의 1이 넘는 상황에서 대중 포위망의 한 축을 한국이 맡는다는 것을 중국으로서는 수용하기 힘들다.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는 것은 일본이다. 아베 정권의 우경화 드라이브는 미국의 구상과 일치하는 반면, 한국의 대일 강경책은 미국의 구상을 꼬이게 만든다. 이것이 한국이 반대하는데도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한 이유다. 특히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서 우선 목표가 한·미·일 삼각동맹의 결성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의 선택은 더 어렵다.
동북아에 부활하고 있는 대결적 진영외교를 반대해야 하는 당위성은 너무나도 분명하지만, 사실상 우리가 미국의 전략에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편입되었기에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적극적인 친미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체결하고, 박근혜 정부가 승계한 ‘전략동맹’은 한·미동맹이 대북 억지를 넘어 미국의 세계전략에 종속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또한 미국 미사일 방어(MD) 참여도 정부는 부인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MD라는 열차에 올라탄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국 정부의 레드라인은 한국의 MD 참여인데, 아직은 관망 중이지만 미국의 압박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입장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난처해질 가능성이 높다.
미·중 갈등이 본격화하지는 않았지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데다 우리가 한·미동맹에 깊이 중독되어 있다는 점이 큰 문제다. 동맹은 국익의 수단이지 목표가 될 수 없는데도, 한·미동맹은 목표는 물론이고 신화가 되어버렸다. 세계 11위권의 국력과 북한의 40배나 되는 국내총생산(GDP)을 가지고도 동맹 없이는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한·미동맹도 국가전략의 일부일 뿐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며, 한·미동맹의 중독에서 빠져나오는 일이 시급하다. 한·미관계는 깊어져도 되지만, 군사동맹은 축소되어야 한다. 아무리 60년간 맹방이었다 하더라도 한국을 용병화하려는 현재의 미국에 무조건 올인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외교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미국의 대중정책과 일본의 군사 대국화에 강력한 명분을 제공하고 있는 한반도 위기를 조속히 해결하고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는 것이다. 남북 긴장이 완화되면 미국에 대한 군사적 의존도와 일본의 군사 대국화 명분이 줄어들고 우리의 입지는 넓어질 수 있다.
<김준형 |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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