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두 개의 북한과 마주하고 있다. 하나는 우리의 밖에, 하나는 우리의 안에 있다. 우리 밖의 북한은 허구처럼 우리의 손에 잡히지 않는다. 북한은 경험되지 않는 추상이다. 굶주림, 사치, 핵, 은하수관현악단, 데니스 로드먼, 총살, 초대형 스키장 등 서로 모순되는 것들이 뒤섞인 그곳은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낯선 장소다.
그 북한이 외부세계를 초대했다. 거기에서 우리는 단 하나의 실재(實在)를 목격했다. 자기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존재이유만을 가진 권력. 오직 그것만이 모순되지 않았다. 오직 그것만이 허구도 추상도 아닌 단단한 사실이었다. 오직 그것만이 모든 현상의 귀착점, 모든 것의 원인이었다. 2인자 장성택이 묻힐 땅도 없이 사라졌다고 놀랄 것 없다. 그건 권력이 그 순수한 핵심인 폭력을 통해 자기를 드러내는 흔한 방식이다.
이대근|논설위원
군대는 폭력의 제도다. 권력을 원하는 자는 그런 군대 장악의 필요성을 본능으로 느낀다. 김정은의 첫 공직이 군대를 지휘하는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것, 실세 중 리영호 총참모장을 먼저 제거했던 것, 군대를 통제하는 총정치국장을 군 대신 당 출신 최룡해에게 맡긴 것도 그 때문이었다. 폭력을 손에 쥔 자는 자신이 폭력의 주인임을 확인받으려는 욕구를 참지 못한다. 그래서 그의 옆에 있지만 그가 부여한 적이 없는 권력을 누리는, 강력한 상대를 시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폭력이 누구의 손에 쥐어졌는지 분명해졌을 때 장성택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장성택은 반당·반혁명 분자로 낙인찍힘으로써 재기불능의 처지가 되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그 이상을 했다. 남들은 못하는 걸 하고자 욕망했다. 남들이 기피하는 것을 함으로써 세계 앞에 자기를 극적으로 노출시키고 싶어 했다. 더 많은 사람이 들여다보고 더 많은 사람이 놀랄 스펙터클, 이게 그가 바라던 것이었다. 과잉에 대한 집요한 욕구, 금기에 대한 거부, 적나라한 욕망의 분출과 과시라는 점에서 그의 폭력은 하나의 포르노였다. 김정은은 사람들을 포르노 극장에 몰아넣었다. 누구도 시선을 돌리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그걸 똑똑히 지켜보도록 했다.
해방 공간의 북한에는 친일부역 세력이 득세한 남한과 달리 항일 유격대원과 반일 저항세력이 주류였다. 토지개혁으로 봉건 잔재를 일소하며 남한에 ‘북풍’을 불러온 진원지였다. 당대의 지식인들, 세상을 바꾸고자 꿈꾸던 이들의 발길이 향했던 그 땅이 이제는 특정 혈연 집단의 이기적 유전자가 지배하는 포르노 국가로 남았다. 그 형해(形骸)가 슬프다.
우리 안의 북한은 종북이라는 변종이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어떤 의미의 진보성도 없는 북한 정권을 비호하고 따르는 소수세력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이 사회의 타자, 발언권이 없다. 이들은 종북 소동을 일으킬 목소리가 없다. 종북을 퍼뜨리는 건 이들이 아니라, 경제민주화·복지 시대에 길을 잃은 자칭 보수들이다. 이들은 경제민주화·복지의 명분을 건성건성 따를 뿐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런 어정쩡한 상태는 그들이 위기에 처했다는 걸 말해준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활로를 찾아야 한다.
진보가 눈엣가시지만 경제민주화·복지의 시대 흐름을 고려할 때 진보를 악마화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들은 소수세력의 발상을 창조적으로 모방하기로 한다. 종북의 악마화, 그리고 악령 추방. 김정은의 고모부 살해가 보여주듯 종북의 악마성만큼 그들의 기획에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없다. ‘종북이라는 악령만 퇴치하면 천년왕국이 도래한다’는 미신을 퍼뜨려 자기들의 시대를 연장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구석구석에 종북의 씨앗이 뿌려졌다고 남들이 믿어야 하고 남들이 믿을 만큼 그들 스스로 확신해야 하고, 진지하게 대응해야 했다. 이걸 이해해야 그동안 사회의 주요 현안들이 왜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남북정상회담 북방한계선 포기 논란, 이석기 내란음모사건,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와 같이 모두 북한과 관련한 것들이고, 왜 그토록 오랫동안 논란이 지속되는지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들은 종북이 자신들이 유포한 관념의 바이러스로서 식중독을 일으키는 박테리아처럼 퇴치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래서 그들의 목적도 사실 ‘퇴치’가 아니라, ‘퇴치하는 자’의 자격으로 사회의 주인 자리를 계속 차지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 상대를 진보가 아닌 북한·종북에서 찾고 그들의 정체성도 그것에 의해 규정된다. ‘전 사회의 종북화’를 위해 매진하고 종북에 의해 정치적 생명을 얻는 그들이 바로 이 사회 종북의 실체다. 종북이 없으면 그들은 21세기의 유령이 된다. 이들이 바로 진정한 우리 안의 북한이다. 이들에게 보수라는 월계관을 씌워주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포르노 극장과 종북 엑소시즘이라는 환각과 광기에 휩싸인 두개의 북한. 우리의 상처속으로 깊숙이 들어오며 여기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짖누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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