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8일 오후 서울 중구 경향신문 본사에서 서강대 사회학과 이철승 교수가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세대론은 위계에 대한 저항이다”
이철승 교수, 특정세대의 의사결정 독점 구조 탈피 강조
“노동운동을 연구하다보니 386의 속살을 알게 된 것이다. 세대 간 갈등을
유발해서 얻을 게 뭐냐’는 말도 들었다. 얼핏 세대갈등처럼 보이지만 분배나 공정성 문제에 대한 이슈 제기다”
이철승 교수의 논문 초고를 접한 것은 지난해 하순이었다. 논문의 함의는 ‘86세대의 정치·경제 점유’로 끝나지 않는다. 젊은 세대의 기득권에 대한 저항에서 태극기부대로 대변되는 가짜뉴스에 사로잡힌 노인세대까지 관통하는 문제다. 이번에 <한국사회학>에 발표된 논문에 이어 이 교수는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을 출판할 예정이다. 미국 시카고대 사회학과 교수였던 이 교수는 한국으로 돌아와 2017년부터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난 3월 18일 이 교수를 만나 인터뷰했다.
-우석훈 교수의 ‘88만원 세대론’을 기점으로 수많은 세대론이 나왔다. 엄밀한 의미에서 유형론적 접근인 세대는 사회과학적 단위가 될 수 없고, 누군가의 정치적 목적에서 호명되는 것이라는 반론, 즉 ‘세대전쟁’이 아닌 ‘세대게임’이라는 주장이 있다.
“세대론은 다른 측면에서 봐야 한다. 위계에 대한 문제제기이고 저항이다. 88만원 세대 이후 세대론이 왜 계속 소환되는가 하는 측면을 볼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에는 동아시아적 연공서열에 기초한 독특한 위계구조가 있다. 서양적 관점에서 보기에 착취라고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세대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 위계에 대한 정면공격이다. 1980년대 출생세대까지는 (위계구조를) 참고 기다려주는 세대였다면 요즘 20대에서 30대 초반 세대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이탈한다. 논문에서 다루고 있는 함의는 두 가지다. 이 ‘위계’에 대한 문제제기가 한 측면이라면, 이 위계구조가 앞으로도 바람직한 사회구조 원리인가,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아 작동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다른 측면이다.”
-동아시아적 발전의 특수성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그동안 많이 제기되었는데, 독특한 시각인 것 같다.
“직전 프로젝트가 노동운동 연구였다. 노동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이 어떻게 연대를 이루고, 이 연대가 어떻게 보편적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기여했는지를 묶어 책을 냈다. 한국 사회의 노동시장 구조 변화를 신자유주의의 일반화로 해석하는데 그것만이 답이 될 수 없다. 농촌의 공동체 구조가 산업조직에 어떻게 이식되어 작동했는지를 한 챕터로 썼다. 모내기에 기반한 벼농사 구조가 자본주의 발전과 선택적 친화력이 있었던 것이다.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서구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이야기한 것처럼 벼농사의 생산시스템이 자본주의 발전에 친화적인 구조가 있었던 것으로 봤다.”
-그런 발전경로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변곡점을 겪었다는 말인가.
“노조운동을 보면 확실히 1997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97년 이후 새로운 386세대가 회사 노동운동 조직에 투입되면서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진다. 비정규직이 일반화되고 노동의 유연화가 이뤄진다. 노조는 기존 정규직 보호에 강한 이해를 갖는다. 역설적으로 노조가 잘 싸울수록 분절화가 강화된다. 상층과 중·하층 노동자 사이의 갭이 커지는 것이다. 이 부분은 노동운동가들을 인터뷰하면서 깨달은 것이다. 노동시장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다 안다. 정규직과 자본이 비정규직을 함께 착취하는 구조다. 노동운동(노조), 정규직, 대기업의 세 가지 분절구조가 결합해 독특한 위계구조를 만들어 왔다. 이 구조의 최대 수혜집단이 386과 일부 소수의 포스트386세대다. 상층 노동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현 중·장년층 세대가 너무 많이 가져가고 있다. 청년실업이나 구조적 문제는 이렇게 도래한 것이다. 노동시장 문제이면서 세대론의 문제라는 것이 내 주장이다.”
-민주화를 이뤄낸 386 중심의 세대연대를 공격하는 논리로 흐를 위험이 있다.
“386세대가 운이 좋아 가장 혜택을 많이 받았다 치자. 이게 뭐가 문제냐고 반론할 수 있다. 첫째는 엘리트 독점이다. 다음 세대에도 엘리트가 있는데, 386세대의 조직화와 정치력이 너무나 강하다. 말하자면 너무 잘해서 문제다. 386 중심의 노동운동이 너무 세서 국가나 자본도 건드리지 못한다. 386세대는 자신이 20대일 때 전국적인 저항조직을 만들어 유지한 경험이 있는데, 그런 경험이 기업에서 살아남는 데 한몫한다. 그 결과로 다음 세대 인재들이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둘째로 어느 조직이든 지대추구(새로운 부의 창출 없이 기존의 부에서 자기의 몫을 늘리려는 행위)가 발생해 네트워크를 만들고 자기들끼리 조직과 정보를 독점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386네트워크도 그런 측면이 강하다. 기업권력이 그것을 잡아내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비효율성이 증대하는 것이다. 셋째, 강력한 조직력을 이용해 세대 네트워크, 엘리트 네트워크의 수명 연장을 시도하는 것이다. 성장하는 경제에서는 문제되지 않지만 성장하지 않는 경제에서는 이것이 ‘제로섬 게임’이 된다. 하나 더 문제를 제기한다면 기존의 386세대 엘리트는 남성만 충원하는 남성 지배구조다. 386 내부의 여성들 중 살아남은 엘리트가 없으니 지금 세대들이 문제제기하는 것이 아닌가. 노동시장이 지금처럼 어렵지 않았다면 젊은 세대 사이의 젠더 경쟁이 이토록 치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위 ‘질 좋은 일자리’ 공급이 부족하니 남성 탈락자들이 늘어나고 이들의 분노가 기존 약자 중 하나인 여성에게 쏠리는 것이다.”
3월 18일 오후 서울 중구 경향신문 본사에서 서강대 사회학과 이철승 교수가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한국 사회의 위계구조를 해소할 방법은 있는가.
“쉽지 않다. 결국 재분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이나 기술 발전이 가속화될수록 현재 조직의 최상부층을 차지하고 있는 중·장년층은 이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다. 이들이 의사결정을 독점하고 있는 구조를 탈피해야 한다. 즉 30~40대로 의사결정 권한의 상당 부분을 이양해야 한다.”
-그동안 일본 사회의 연공구조와 한국의 유사성이 지적되곤 했다.
“유사한 구조인 것은 맞다. 연공에 따라 임금을 받는 구조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논문 말미에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신입사원이 들어왔을 때 받는 임금을 100이라고 한다면 서유럽의 경우 가장 낮은 핀란드는 20년 후에 120을 받는다. 직무급제도를 갖고 있는 서유럽의 경우도 200이 안 넘는다. 그런데 일본은 240, 한국은 270~300까지 간다. 전세계에 유례 없는 연공구조다. 조직에서 살아남기만 하면 임금이 올라간다. 힘든 일을 하는 조직이나 개인에게 임금을 많이 주는 직무급이 받아들여져야 하는데, 유교적 연공사회이다보니 사람들이 인정하지 못한다.”
-세대와 위계문제에 천착하게 된 계기가 있나.
“논문을 쓰고 나서 많이 들은 이야기가 ‘내부 총질한다’는 이야기다. ‘386은 아직 역사에서 할 일이 많은 세대’라는 반응도 들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내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외국에 20년 있었고, 미국에서 교수하다가 왔다. 노동운동을 연구하다보니 386의 속살을 알게 된 것이다. ‘세대 간 갈등을 유발해서 얻을 게 뭐냐’는 말도 들었다. 얼핏 세대갈등처럼 보이지만 분배나 공정성 문제에 대한 이슈 제기다. 젠더 갈등도 뜯어놓고 보면 동시대 민주주의, 자본주의에 대해 각 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의 가치와 역할에서 충돌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적극적으로 제기해서 풀어야지, 덮으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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