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지성대담] ①마르크 오제 '세계화 본질은 제국주의'
편집시각 2000년02월03일17시24분 KST
*마르크 오제는 1935년생이며 현재 파리 사회과학대학원(EHESS) 인류학 교수로 있다. 그는 1985~1995년 사이 10년 동안 이 대학원의 총장을 역임했으며, 국제적으로도 많이 알려진 학자다. 아프리카 현지답사로 연구를 시작해 뒤에는 남미 사회로까지 연구영역을 넓혔다. 90년대에 들어와서는 유럽 현대사회를 주된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연구 주제도 지구화, 역사의 가속화, 정보와 영상의 전파 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는 문화적 경계선을 초월해 상징체계를 통한 개인적, 집단적 정체성 이론 구축에 노력하고 있으며 이를 '일반화한 인류학'이라 부른다.
오제는 지난 89년 정성배 교수가 중심이 돼 사회과학대학원에 한국경제사회연구소를 설립하였을 때 총장으로서 적극적인 지원을 했다. 그 뒤 오제 총장은 한국-프랑스 학술교류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초청으로 90년과 94년 두 차례 서울대학교에서 강연을 한 바 있다.
정성배=2000년을 맞은 오늘날의 세계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신자유주의라는 지배이데올로기를 철학으로 하는 세계화의 가속화와, 신자유주의자들이 제기하고 있는 탈인간성론인 듯싶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문명사적 관점에서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나?
마르크 오제=우선 인류학자로서 내가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세계화의 최초 형태는 식민주의였다는 사실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는 대의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사이의 사전합의를 추정하고 있어 마치 모든 사람들 사이에 동의가 성립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닌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방식은 마치 문제의 해결책을 포고형식으로 선포하여 진실한 논의를 막아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다. 또 마치 자연적 진리, 당연한 진리 같은 것이 존재하여 이에 거슬리는 것은 모두 역사에서 제거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자연적 진리라는 말은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프랑스 학술회의에서도 신자유주의를 유일사상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최근 특히 `시애틀 뉴라운드 협상 사태' 이후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오제=이 `자연적 진리', 특히 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결과는 무엇인가. 빈부 격차가 이중적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격차, 또 하나는 선진국 안의 빈부 격차다. 이러한 상태는 교란과 분쟁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인류사는 어느 대륙에서나 조화와 균형의 발전사는 아니었다. 역사는 언제나 대결, 이해력 결핍, 전쟁, 청산을 통한 역사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 역사 앞에 뚜렷이 윤곽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또 폭력이고 대결이다. 어떤 이들은 차라리 이것이 더 낫다고도 한다. 왜냐하면 그래서 역사는 미리 쓰인 숙명론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되기 때문이다. 물론 폭력을 한탄해야 하지만 실은 인류사 자체를 개탄해야 할 문제다.
이런 현실을 숨기려는 이데올로기가 바로 세계화 이데올로기다. 미국을 중심으로 해 시장과 통신기술을 통해 전 지구적으로 자기의 시스템(잠재적 지구정치 시스템이라고 불러도 좋다)을 투사한다. 현재 세계정부는 없지만 지배적 강대국은 있으며, 유엔이나 나토 같은 수단을 통해서 그의 잠재력을 현실화한다. 세계화 이데올로기는 일종의 추상으로서 통신기술과 세계 경제시장의 일면만 가지고 세계사를 추리하고 결론을 내린다. 곧, 일정한 분야만을 격리하여 이로써 전체를 설명하는 수법이다. 이러한 세계화 야망을 제국주의라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문화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조금 더 검토해 보자. 클린턴 대통령은 오늘날 대외정책이 점점 더 국내정치와 비슷해지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대단히 적절한 표현이다. 사실 지배적 강대국인 미국의 처지에서 보면 세계의 소란은 미국 국내의 소란이나 별 차이가 없어보일 것이다. 예를 들어 유고나 이라크에 대한 개입은 국내의 경찰동원과 비슷하다. 미국이 이런 나라들에 개입하는 이유는 이 나라들이 세계화 시스템 논리의 밖에 있기 때문이다. 이 나라들에 폭군들이 있어 미국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이럴 때에는 간섭권을 발동한다. 이 간섭권이 인권옹호와 무관한 것은 명백하다. 인권옹호가 목적이었다면 개입해야 할 곳이 다른 곳에도 아직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인권옹호 투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간섭권은 세계화를 위한 전 지구시스템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권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국은 몇가지 가치의 이름으로 때때로 개입한다. 그러나 폭력이 너무 크다든지, 강대국이 관여하고 있다든지, 문제의 나라가 시에라레온처럼 주변국일 때에는 간섭을 안 할 뿐 아니라 언급도 하지 않는다.
정=지금 진행중인 체첸사태가 또하나의 좋은 예라 생각한다. 인도주의를 표방하는 간섭권은 실은 미국의 세계전략의 한 수단으로서 보편성이 없으며, 희생자는 주로 약소국가들이다.
오제=세계화 이데올로기의 또다른 면은 시장법칙에 관한 것인데 여기에도 모순이 보인다. 가령 기업집중은 자유주의 논리에 합당하다고 하기 어렵다. 자유주의 세계화에 자유주의가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또하나의 현상은 빈곤의 악화 문제인데, 이것은 인류의 중요한 일부분이 경제능력 부족으로 시장에서 소외돼버린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장자체의 기능장애인가, 혹은 능력 있는 자들만 받아들여 기능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인가? 여하튼 이러한 상황에서는 장기로 보아 구매자 부족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문제는, 인류의 많은 부분이 소외된 상태에서 기능한다 하더라도 소외자들은 영원히 소외자로 있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욕구불만자의 수는 지구에서 수십억에 달할 것이다.
정=세계화의 최대 희생자는 제3세계다. 그 전에는 남북문제라는 개념이 있어 대학에서도 중요한 분야였으나 이제는 말 자체가 없어져버렸다. 뿐만아니라 신자유주의는 `남'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나라들도 투기자금 이동을 통해서 다시 남으로 몰아버리는 기능을 한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국내 노력만으로는 부족하고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본다.
이야기를 돌려 다른 질문을 해보겠다. 신자유주의 이론가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과학의 가능성에 끝이 없다고 하며 바이오 기술을 통한 인간성 개조를 주장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공산주의가 교육, 선전 또는 정신분석학적 방법으로 해내지 못한 것을 기술로 해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극단적 기술숙명론과 인간성 개조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오제=인간성 개조론, 탈인간성론은 솔직히 말하면 하나의 망상이라 생각한다. 인간성 또는 개인을 정확히 파악하려 할 때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지난 세기 동안에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상징체계, 즉 인간은 타인들과 관계를 맺을 필요성이 있으며, 또 이 관계는 가능한 것, 생각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상징체계라고 생각한다. 가령 언어는 하나의 상징체계인데 그 이유는 단어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려면 규칙이 있어야 한다든지, 또는 두 인간이 같은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혹은 공동 표기를 함으로써 서로 알아볼 수 있게 된다든지 하는 이유에서다. 인류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인간이 자기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에 비추어 볼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상징체계에 맞는 일련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부모, 친구 등등.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사회관계다.
인간성 개조를 통해서 사회변동을 일으킨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반동적인 생각이다. 인간은 전체다. 경제인간이면서 동시에 사회인간이다. 바이오테크놀로지를 이용해서 인간성을 개조한다는 생각은 위험천만이다. 과거에도 이런 생각은 있었다. 이것을 우생학이라 부른다. 즉 초인간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제 기술적으로는 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어떤 노벨상 수상자들 중에는 자기의 정자를 냉동 보존해서 판매하는 것을 허락했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만일 초인간 생산 기도가 본격화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이를 막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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