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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성대담] ②사카모토 요시카즈 "민족국가에서 시민의 시대로 변화"

대안의 사회과학

by DemosJKlee 2007. 3. 2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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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성대담] ②사카모토 요시카스 "민족국가에서 시민의 시대로 변화"

편집시각 2000년02월03일17시33분 KST


*사카모토 요시카스는 1927년생으로 도쿄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도쿄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1980년대 중반 국제평화연구학회(IPRA) 사무총장을 지내기도 한 사카모토 교수는 국제정치학의 대가로서 일본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1인자이다. 구미에서도 그의 탁월한 구상력과 분석적 연구업적은 널리 알려져 있다. 평생을 평화연구에 바쳐왔으며 일찍이 남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때 시민사회․시민운동의 중요성을 역설해 선구적 업적을 남겼다.


정성배=국제정치학자로서 21세기를 전망한다면….


사카모토 요시카스=지금 많은 사람들이 `21세기'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대부분 70-80년 뒤의 일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20년 정도까지를 생각해 보자. 나는 이 시기의 특징으로 세계의 변화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들고 싶다. 이런 `변화의 가속현상'의 큰 원인 중 하나는 세계대전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는 철저히 자기파괴를 하고 폐허에서 다시 시작한, 제1․2차 대전과 같은 역사를 그 뒤 반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그런 `변화의 가속현상'은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 것으로 보는가.


사카모토=크게 두 가지다. 한편으론 과학기술의 발전에 이어진 시장경제의 세계화로 탈국가화가 좀더 진전될 것이다. 또 경제적 격차 확대와 불평등 심화, 지구환경 악화가 보다 심각해질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민주주의의 보편화와 국경을 초월한 시민사회의 탈국가화도 보다 가속화할 것이다. 이에 따라 평등한 인권에의 요구도 그만큼 강해질 것이며 자연과의 공생을 위한 지구시민적 관심도 전 세계적으로 더욱 높아질 것이다.


정=두 경향 사이에는 큰 모순이 있는 것 아닌가.


사카모토=그렇다. 따라서 21세기의 큰 과제는 국경을 초월한 평등한 인권이라는 시민사회의 입장에서 세계화한 시장경제를 어떻게 규제해나갈 것인가라는 문제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가는 이 두 가지 경향의 대립 사이에 서서 민족국가의 틀을 초월한 민주적 다민족/다국가로 구성된 `지역조직' 또는 `지역연방'으로 재구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유럽연합과 같은 형태의 확산을 의미하는가.


사카모토=유럽은 유럽연합이라는 민주주의를 공유하는 지역연방 구축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 21세기의 동아시아도 지역이 갖는 여러 특수조건에 적응하면서도, 이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다. 이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현실적 필요인 것이다.


정=그러나 동아시아의 경우 민족주의와 군비경쟁이 심하며 국가간의 관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세력균형정치이다. 또 집단안보체제는 존재하지 않으며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양자관계로 묶여 있다.


사카모토=동아시아에는 이미 아세안이라는 지역조직이 있다. 이 조직은 구성원과 비구성원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다양성에 따라 여러 층으로 조직을 중첩시켜 대화와 협력의 범위를 넓혀간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즉 아세안 가입 10개국 주위에 10개의 아세안 대화국, 기구(즉 유럽연합), 옵서버 2개국이 있다. 이들이 아세안지역포럼(ARF)을 형성하며 또한 유럽연합과는 아셈(ASEM)을 형성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민족국가를 초월하는 지역협력조직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지혜가 필요하다. 아세안지역포럼의 눈에 띄는 특징은 그곳에 한국, 일본,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등과 함께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라는 유엔안보이사회의 다섯 상임이사국이 모두 들어 있다는 점이다. 5개 강대국 모두가 가입하고 있는 지역조직은 지구 전체에 이것밖에 없다.


정=이 구도를 잘 발전시키면 바람직한 `지역조직'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인가.


사카모토=그렇지는 않다. `동아시아의 새 지역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지역조직은 당연히 중국, 미국, 러시아를 포함해야 하지만 이 나라들은 그 자신이 이미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라 부를 만한 큰 단위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동아시아의 새 지역조직'의 중핵은 한국(장래는 통일한국)과 일본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비 패권적 축을 형성하고 여기에 중국, 미국, 러시아가 가입하는 것이 순리다. 북한은 현재의 4자회담을 겸하여 당분간은 `대화국'으로 이 조직에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이 지역조직이 아세안과 제휴하여 장기적으로는 아세안지역포럼을 동북아시아에 확대하면서 `동아시아지역포럼'을 형성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정=물론 21세기의 역사는 달라져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한-일 두 나라간 상호인식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지금까지 서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카모토=이 지역조직 형성에는 `정체성의 지역적 공유'가 필요하다. 물론 이곳에는 유교문화․한자문화 등 공유유산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닌, 과거부터 존재해 온 사실들이다. 새로운 정체성을 창출하려면 미래를 지향하는 `가치 공유'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서는 평등한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가치의 실현을 공동목표로 하는,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정체성 공유가 선결과제다. 경제적 이해의 공유에 의한 공동시장만으로는 지역조직의 기초가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정=한국 사람들은 한국과 일본이 지역조직의 중핵을 이루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일단 납득은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착잡한 심정이 된다. 두 나라가 함께 큰 일을 해본 역사가 없고, 무엇보다 일본은 한국에게 오래 전부터 경계의 대상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사카모토=이렇게 동아시아인들의 관심의 초점을 과거에서 미래로 옮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성실한 자세로 과거의 역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화해의 기초를 만드는 게 불가결하다. 일본은 최근 겨우 시작한 북한과의 국교정상화협상 과정에서 `성의'를 테스트를 받게 될 것이다.


정=그러나 재무장화 등 일본이 `다른 길'로 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사카모토=최근 일본에 나타나고 있는 국가주의적 경향의 기저에 있는 것은 `국방' 의식이다. 특히 북한의 `핵의혹'이나 대포동미사일 발사 등을 계기로 이런 경향이 선동됐다. 그 배경에는 냉전 종결 뒤 미국이 동아시아의 군사적 질서 유지를 위해 일본에 군사적 분담의 증가를 요구하였다는 사실도 있다. 따라서 일견 일본의 독자적 국가의식처럼 보이는 이런 점도 사실은 대미 추종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모순이 있다. 만약 이 모순을 청산하기 위하여 일본이 독자적으로 국가주의와 미국과의 분리 경향을 강화한다면, 미국뿐 아니라 아시아 제국의 반발에 직면해 고립될 것이다. 따라서 일본이 정말로 대미추종을 약화시켜 자주성을 강화하려 한다면, 앞서 말한 동아시아의 지역적․다각적 평화협력조직의 형성을 촉진하는 길밖에 없다.


정=19․20세기는 민족국가가 형성․유지돼온 시대다. 지역협력조직에서 민족 문제가 어떨 것으로 전망하는가.


사카모토=지역협력조직은 민족을 달리하는 국가간 공생 외에, 국가 내에서의 `다민족 공생'이 가능할 때 비로소 성립된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단일 민족국가 신화'에 대한 집착이 강하지만 21세기에는 현재 이상으로 모든 국가가 이민노동자를 포함해 다민족국가가 될 것이다. 민족은 이미 국가와는 동일한 정치적 기본단위가 될 수 없으며 무리하게 그렇게 하려고 하면 `민족 분쟁'의 참극을 일으킬 것이다.


정=문화의 다양성 존중 문제에서는 유럽연합의 경험에서 배울 것이 있다고 본다. 유럽연합이 만일 문화적으로 먼저 통합을 시도했다면 실패했으리라는 것이 일반적 의견이다. 그래서 모든 회원국가의 문화적 정체성은 지켜져 왔다. 그러나 다양성과 차이만을 강조하고 공유문화창조를 소홀히 하면 궁극에는 분쟁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사카모토=민족은 문화적 정체성과 다양성의 담당자로서 계속 중요한 역할을 하고, 문화의 다양성을 통해서 인류의 정신생활을 풍부하게 할 것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민족문화의 대등성과 차이가 존중돼야 한다. 대등․동등하다고 하면서 동화하려 한다면 실제로는 지배하는 것이 되며, 차이를 인정한다면서 차별하는 것도 지배 행위가 된다.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한다는 뜻의 바탕에는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의 권리를 서로 인정한다는 사상이 있다. 평등하기 때문에 차이를 존중하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와 민족의 벽을 넘은 시민사회의 사상적 입지점이다. 19․20세기는 민족국가의 시대였지만 21세기는 `시민의 시대'가 될 것이다.


정=`시민의 시대'는 한국에 더 없이 중요한 개념이다. 민족국가의 다민족국가화 불가피론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한국의 현실을 보면, 그야말로 극한 상황이다. 한국에는 군사정권 이후 `지역국가신화'까지 만들어져 있다. 그 배타성과 차별성은 다른 지역 동포와의 공생도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이나 민주화는 요원하다. 한국이 이 어처구니없는 함정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시민운동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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