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지성대담] ④미라그로스 델 코랄 "다양성은 단일문화 해독제"
편집시각 2000년02월03일17시46분 KST
때 : 2000년 1월14일
곳 : 파리 유네스코 본부
*미라그로스 델 코랄(55) 유네스코 창조․문화산업․저작권국장은 유네스코가 정한 `2000년 평화의 문화 해'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평화의 문화 해는 세계 여러 나라의 분쟁 원인이 점차 이념에서 문화로 옮아가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유엔과 유네스코가 ꡒ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는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ꡓ는 취지에서 마련한 것이다. 델 코랄은 스페인 출신으로 마드리드대학 도서관 부관장과 스페인 문화부 도서관 담당 부국장을 지냈으며, 많은 나라에서 문화와 관련한 강연을 해왔다.
정성배=21세기로 접어들면서 이제 문화라는 말은 누구나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 됐다. 유네스코에서도 2000년을 `세계 평화의 문화 해'로 정했다. 하지만 그 개념은 여전히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 영국의 인류․사회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18세기부터 1952년 사이에 내려진 문화의 정의가 160가지에 이른다.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는 문화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델 코랄=유네스코는 1980년대 멕시코 회의에서 문화에 대한 정의를 채택했다. 그것은 문화를 예술과 동의어로 본 전형적인 유럽중심주의의 `협의의 정의'를 넘어서는 훨씬 넓은 의미다. 유네스코에서는 우리들 인간이 하는 모든 것, 우리의 행동양식, 우리의 예술적 표현, 가치, 전통, 신앙 등을 모두 문화개념에 포함시키고 있다. 곧, 유네스코에서는 인간은 누구나 자기 국민과 관계된 고유의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고 또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유네스코는 넓은 의미의 문화개념으로 다양한 인류문화를 보존․발전시키는 데 노력하고 있지만, 이는 이른바 문화세계화 경향과 상충되는 것 아닌가.
코랄=문화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다양성과 풍요성이다. 세계화가 시작되어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이 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이야말로 단일문화에 대한 `해독제'라는 것이다. 세계가 단일문화화한다면 큰 비극일 것이다. 비유해서 말한다면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니 모든 꽃이 장밋빛으로 변한 것과 같은 것이다. 장미꽃은 아름답지만 빛깔이 다른 여러 가지 꽃이 있음으로 해서 더욱 빛나는 것이다. 자연은 스스로 이런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유네스코는 일찍이 자연환경보호와 관련해 다양성 개념의 중요성을 인식했고, 그 뒤 세계화의 위험을 느끼면서 이를 재인식한 것이다.
정=다양성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문화 간의 공통분모를 찾는 일도 중요하다는 시각이 있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분쟁을 해소하는 길일 수도 있다.
코랄=그렇다. 우리도 그 양자는 모순이 없는 상호보완관계라고 보고 있다. 한편으로 다양성과 풍요성을 보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적 고립을 피해야 한다. 왜냐하면 외부의 자극을 받지 않은 문화는 빈약해지기 때문이다. 유네스코는 공통가치들, 곧 우리들이 다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세계를 건설하는 데 도움이 되는 요소들을 자유유통 및 교환개념과 함께 특히 중요한 개념으로 인식한다. 이는 유네스코의 창립결의문에도 들어 있다. 이 외에도 중요한 가치로서 관용, 연대, 일상적인 모든 행위에서의 윤리 등을 들 수 있다.
정=프랑스 정부가 프랑스 문화를 보호하기 위하여 `프랑스 예외' 항목을 설정하고 미국이 요구하는 영화․텔레비전 시장의 완전 개방을 거부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유네스코는 어떤 입장을 취했는가.
코랄=유네스코는 프랑스의 결정을 지지한다. 이것은 2년 전 스톡홀름에서 있었던 문화정책 유네스코 회의에서 회원국들이 만장일치로 프랑스의 결정에 동의한 데에 근거하고 있다. 사실 문화제품은 보통의 상품이 될 수 없다. 이 상품은 고도로 민감한 문화적 내용을 전파하는 제품이다. 그런데 각국의 상황이 공평하지 않다. 상황이 모두 공평하다면 소비자의 입장에서 볼 때에 미국 문화제품이나 아프리카의 반투지역 문화제품이나 또는 브라질 제품에의 접근 가능성도 같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실은 그렇질 못하다. 어떤 문화는 세계에 선전할 수 있는 엄청난 수단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어떤 문화는 그 존재조차 알릴 수 없는 상태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공평한 경쟁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불공평성을 교정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기능하기까지의 잠정기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프랑스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이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999년 1월 각국의 전문가 200명을 초청하여 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검토해보았다. 결과는 우리의 신념과 행동을 다시 한 번 굳히게 된 것이었다.
유럽은 문화적으로 세계에 많은 공헌을 했다. 그의 방대하고 다양하고 풍요한 문화재는 일반적으로 잘 보존되고 있다. 그러므로 유럽문화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현재의 살아 있는 문화영역일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 분야에 단일화의 경향이 보이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다양성 보존은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는 단일문화가 지배하는 격이 될 위험이 있다.
정=유네스코는 오늘날의 문화창조와 전달 시스템에 만족하고 있는가. 때로는 전달이 창조와 생산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코랄=사실 이 문제도 세계화, 특히 경제세계화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거대산업그룹들은 매일 합병을 발표하고 있다. 얼마 전 아메리카온라인과 타임워너의 합병이 발표되었다. 생산자와 유통자가 합병하여 거대그룹을 탄생시킨 것이다. 기업합병은 문화산업 분야에서 중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지금까지 언제나 기본이 되어 온 것은 내용생산자․창조자였는데 이제 용기생산자․유통자가 상업이윤이라는 구실로 전자를 지배할 위험이 있다. 그럼으로써 창조적 작품은 발표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될 위험이 있다. 이런 거대기업들의 문제 중 가장 큰 것은 창조성이 어느 시점에 도달해서는 고갈돼 버린다는 것이다. 거기에 거대조직의 피할 수 없는 관료주의까지 겹쳐 독창성 없는 제품을 반복 생산하는 취약기업으로 몰락할 수도 있다.
이 문제에 관련하여 유네스코는 중소기업 육성에 주목하고 있다. 가령 문학작품을 출판하는 출판사 중에는 독립적으로 독창성 있는 일을 하는 중소기업이 있다. 무명작가의 작품 출판에는 모험이 따르는 데 이들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정=영화에도 문제가 많은 것 같다. 옛날의 미국 영화계에는 `내면파'라고 하는 우수한 경향이 있어 관객의 차원 높은 정서함양에 도움을 주는 영화들이 있었는데 이제 그러한 경향은 거의 볼 수가 없다. 지금의 미국영화는 폭력이 지배적이다. 또 미국영화의 시장 독점으로 인하여 이탈리아․독일 등의 우수한 영화는 소멸 위기에 처하였다.
코랄=영화란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생활양식, 사고방식을 전파하는 문화제품이다. 유럽에서는 영화산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며 그 결실이 있으리라 본다. 현재의 영화위기는 스크립트(시나리오) 문제라고 본다. 미국 영화 중에는 스토리가 없거나 빈약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 대신 특수효과의 연속으로 휘황찬란한 장면이 많다. 이러한 특별효과에는 폭력이 잘 맞는다. 이러다보니 스크립트의 중요성이 없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유행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유네스코는 스토리를 장려하기 위하여 스크립트 상을 제정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스토리는 오락성이 있더라도 가치관․세계관을 전파한다. 폭력영화는 아무래도 젊은 층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정=마지막으로, 유네스코의 21세기 핵심과제는 무엇인지 알고 싶다.
코랄=세계에는 현재 많은 분쟁요소가 있으며 때로는 전쟁으로 폭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분쟁은 언제나 인종적․문화적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다. 보스니아와 코소보에서는 `인종청소'라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따라서 유네스코는 어떻게 하면 다민족문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를 21세기의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 이민 문제만 보더라도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알 수 있다. 우리의 접근 방법은 대화를 통한 문화간의 이해와 조화의 증진이다. 이 다민족문화사회 관리를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 위험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사회분쟁의 문화분쟁화를 피해야 한다. 사회분쟁의 근본 원인이 다른 곳에 있는데도 이질 문화 간의 충돌로 간단히 결론짓는 경향이 있다. 둘째, 통합이라는 구실로 이주민 또는 소수민족에게 탈문화화를 독려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사회결합을 위해서 자국의 외국인들에게 자신들의 풍습에 따르고 적응하라는 식의 단순한 논리로써 이주민들의 고유문화 향유를 강제로 금지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셋째, 외국문화를 격리수용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두 번째 경우와는 다르게, 외국인 또는 소수민족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고유문화를 자유롭게 향유하도록 허락은 하지만, 그들을 사회에서는 격리시키는 행위이다.
우리는 점점 더 복수의 정체성을 갖게 되는 세계에서 살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점차로 다민족문화 생활에 익숙하게 되고 그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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