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지성대담] ⑤울리히 벡 ꡒ예측불허 위험사회 진행중ꡓ
편집시각 2000년02월03일17시52분 KST
때 : 2000년 1월24일
곳 : 런던경제정치학원(LSE)
*울리히 벡은 1944년 생으로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뮌헨대학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전공했고 현재 뮌헨대학의 사회학 교수로 있다. 그는 오래 전부터 21세기 세계를 `위험사회'라는 개념으로 고찰해 많은 연구 결과를 거두었으나 외국에 성과가 알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한국에도 <위험사회>를 비롯한 몇권의 책이 번역돼 있는 울리히 벡은 독일 국내에서는 녹색당 고문으로 활약하는 실천적 지식인이다. 그의 저서로는 <위험사회> 이외에도 <세계화란 무엇인가>와 <정치의 재해석> 등이 있다.
정성배=울리히 벡 교수가 정의한 `위험사회' 개념은 아직 생소한 면이 있다. 우선 그 개념부터 묻고 싶다.
울리히 벡=`위험사회'란 발전의 어두운 면이라 할 수 있다. 근대화에는 물론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는데 지금까지는 주로 밝은 면만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제 어두운 면이 점점 더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온실효과 등으로 인한 지구의 온도상승, 유전자 조작, 유전자 식품 등이 몇가지 예다. 이런 것들에 관한 논의가 점점 커지면서 분쟁화 양상을 띠고 있다. 이 분쟁이 흥미있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결과에 대한 위험뿐 아니라, 모르고 있는 위험에 관해서도 행하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점점 더 미지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정=위험의 결과를 사전에 측정하는 전문가들의 상징이 보험회사라고 당신이 말했는데 그들도 위험사회의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는가.
벡=일반적으로 위험의 정의는 ꡒ예측 가능한 결과의 계산ꡓ이다. 그러나 나의 위험사회 정의는 전혀 다르다. 앞의 정의는 19세기초부터 20세기초까지 이어지는 `제1차 근대화 시대'에 걸맞은 정의였다. 교통사고, 공장에서의 산업재해 등이 그 주된 대상이었을 말이다. 그러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오늘날의 위험은 이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어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아직도 희생자의 수가 얼마인지도 모르고 15년 뒤인 오늘날 출생한 어린이들 속에 아직도 기형아 등 환자가 있다. 이제 재래식 계산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이렇듯, 계산 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을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수년간의 사고 끝에 도달한 결론이 보험회사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유전자 조작과 유전자 식품을 보험으로 책임질 수 있을까. 적어도 독일이나 다른 유럽나라들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여기에는 합리성의 분쟁이 있다. 생산기업에 물어보면 위험은 제로라고 한다. 그러나 보험회사에서는 위험도가 너무 높아 보험계약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은 대단히 흥미롭다. 자본주의사회에서 합리성을 원칙으로 하는 대표적 주자인 보험회사가 그 계약을 거부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많은 신기술들이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고, 가입을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정=그러므로 산업사회의 뒤를 이은 것은 위험사회이며 우리는 21세기에도 불확실성 속에서 살수 밖에 없다는 것인가.
벡=그렇다. 나는 바로 그러한 것을 설명하고 있다.
정=위험사회의 부작용은 사회시스템 자체를 위협하는 것은 아닌가.
벡=위험사회의 부작용은 환경, 자연, 건강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제도에도 영향을 준다. 정당이나 국회뿐 아니라 경제계도 불안하다. 왜냐하면 시장이 파탄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위험사회 개념이 전세계적으로 전파되고 있으며 많은 기업들이 자기 권력의 한계를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새로운 분쟁의 논리가 정치화되고 있고 나는 이러한 면을 위험사회의 긍정적인 면이라 평가한다.
정=위험사회에서 국가의 구실은 무엇인가.
벡=국가의 역할 문제는 중대한 역사적 문제이다. 세계화 시대에 국가는 도전을 받고 있다. 이제 국민국가는 권력중심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이것은 금융․경제의 세계화뿐 아니라 `세계적 위험사회'의 출현과도 관계가 있다. 해결책이 국가의 해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많은 문제들이 국가의 차원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국가 문제'가 제기된다. 이 초국가는 일반 국가와 협력하여 전지구적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정=미국이 이러한 초국가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벡=아니다. 미국은 강대국이지만 초국가는 아니다. 미국은 주권이양 문제에는 각별히 까다로운 나라이다. 국제회의에서 보면 전지구적 문제, 환경문제 등에 관하여 적극적으로 나서는 나라들이 있다. 이들 나라가 초국가의 기초를 수립하고 다른 국가들과 역할 분담을 해나가는 것이 순리다.
정=한국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한국도 1990년대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등 중대한 인재를 겪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1997년 11월의 금융위기에 관해서 논의하고자 한다. 당신의 위험사회 이론에 비추어 볼 때 금융위기도 위험사회의 산물로 보는가.
벡=나는 그것을 `세계적 위험사회'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이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도전이다. 우리는 세계경제의 위험이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보아야 한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우리가 이미 본 위험성이 다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원자력 위험, 기술위험, 금융위험 등이다. 나는 이것을 `경제 체르노빌'이라 부른다.
정=나는 이것이 새로운 형태의 위험사회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국내적 요소뿐 아니라 국제 통화질서에도 원인이 있다. 또 희생자는 주로 경제적 소외층이며 따라서 일종의 `위험계급'이 형성된다. 당신의 주장은 위험사회가 계급과는 상관이 없으며 다만 상황의 문제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점은 어떻게 보는가.
벡=계급문제에 관해서 당신의 의견에 동의한다. 이러한 위험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계급을 생산한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재래식 계급이 아니라 초국가적 개념으로 보는 계급이다. 그러나 누가 패자인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물론 경제적으로 소외받는 층이 가장 고통스럽지만 엘리트도 패자가 될 수 있다. 일종의 부메랑 효과라는 것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금융위기를 경제 체르노빌이라고 했는데 이 문제에서는 책임자가 누구인지도 알 수가 없다. 따라서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으며, 그것은 체르노빌 원자로보다 더 어려운 위험이라고 볼 수 있다.
정=위험사회의 해결책으로 `성찰적'(reflexive) 근대성을 제안하고 있는데 성찰적이라는 말은 설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벡=성찰적 근대성이라는 말은 어려운 말이다. 따라서 오해가 많다. 이에 관하여 두가지 설명을 하겠다. 하나는 성찰적이라는 말이 반드시 자각적이라는 뜻으로 쓰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성찰적 근대화는 그것에 관하여 국민이 알려고 하지 않더라도 일어나는 것이다. 둘째는, 성찰적 근대화는 두가지 근대성을 구별하는 것이다. 제1차 근대화와 새로운 근대화를 구별해야 한다. 제1차 근대화는 산업사회, 집단적 정체성, 민족국가, 노동사회 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 제1차 근대성은 예측하지 못한 결과에 의하여 약화되면서 새로운 근대성(새시대 또는 근대성의 새단계)을 발전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 실체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알기 위해서는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 우리 뮌헨대학에서는 이 새로운 근대성의 개념설정을 위하여 애쓰고 있다. 성찰적 근대화도 그런 노력의 하나다.
정=위험사회에서 사회운동․시민운동의 역할은 중요하다고 보는가.
벡=사회운동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초국가 사회운동은 인터넷과 결합하여 유전자 조작, 유전자 식품 등을 저지하기 위한 운동에 크게 공헌할 수 있다. 내가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소비자 운동이다. 초국가적 상황의 위험사회에 하나의 숨은 권력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소비자 운동이다. 이 운동은 제1차 근대화 시대에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시대는 노동운동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근대화 시대에는 소비자 운동이 중요한 행위자로 등장한다. 이것이야말로 초국가 기업의 대항권력이다.
정=마지막으로 위험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운명은 어떻다고 보는가.
벡=위험사회에서 기본적인 가치는 민주주의이다. 우리는 이 세계화 시대에 위험사회라는 조건 아래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 것인가를 연구해야 한다. 모든 결정에 대하여 누가 책임을 지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면 책임자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통성이 없어지는 사회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재창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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