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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문제, 출구는 있는가

일본 확대경

by DemosJKlee 2008. 2. 15.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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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문제, 출구는 있는가

 

이준규(평화네트워크 정책실장)/2006년 9월8일에 쓴 글이며, 월간 '통일한국'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지난 8월15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주변국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晴國) 신사를 참배했다. 집권 자민당 내에서조차 참배 자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종전기념일’ 참배를 강행한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언제 참배를 하더라도 비난을 받는다. 언제 참배를 해도 마찬가지다” “공약은 살아있다.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한 “8월15일 야스쿠니 참배” 공약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이다.

올 가을 자민당 총재선거를 통해 임기가 끝나는 고이즈미 총리의 공약에 대한 집착의 결과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한편 ‘어차피 비난받을 것이라면 8월15일에 하겠다’는 묘한 고집이 발동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헨진”(變人, 별난 사람)이라는 별칭이 잘 들어맞는 부분이다.


총리 야스쿠니 전격 참배의 파장

 

고이즈미는 2001년 총리에 취임한 이후, 매년 1차례씩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왔다. 2001년에는 8월13일, 2002년에는 4월, 2003년과 2004년에는 1월, 2005년에는 10월에 각각 참배했다. ‘종전기념일’ 참배는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총리가 ‘종전기념일’에 야스쿠니를 참배한 것은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공식 참배한 이후 처음이다.
 
그동안 고이즈미 총리는 매년 참배를 하면서도, 주변국의 반발과 국내의 반발 여론을 의식해 종전기념일을 피해왔다. 그러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잃어버린 10년’을 극복한 추진력 있는 개혁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완성시키고자 했던을 지도 모른다. 주변국들의 반발과 국내의 논란을 불러왔지만 “외국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국민과 한 약속은 기필코 지키는 지도자”라는 이미지 만들기에는 성공한 듯 하다.
 
그러나, 문제는 앞으로다.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입장은 “부전(不戰)의 맹세를 담아 전몰자(戰歿者)를 추도하는 사적인 참배”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한국과 중국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야스쿠니 문제와 역사교과서 문제로 한일, 중일 갈등이 계속되고 있고, 지난 7월에는 히로히토 ‘천황’이 A급 전범을 야스쿠니에 합사한 것을 알고 참배를 중단했다는 메모가 발견되면서 일기 시작한 일본 국내의 야스쿠니 논쟁에 불을 붙이는 결과를 낳았다.

 

‘A급 전범’이란 극동국제군사재판(토쿄재판)에서 평화에 대한 죄, 즉 침략전쟁을 주도한 죄로 기소된 28명을 일컫는 말이다. 이 중에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전 총리대신을 비롯한 총 14명이 1978년 10월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合祀)되었다.

 

상대적으로 진보적 논조를 유지해 온 <아사히(朝日) 신문>과 <마이니치(每日) 신문> 등은 야스쿠니 문제를 공론화하려고 나서고 있다. 자민당 총재선거에 나서는 후보자들에게도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부분은 일본 국민 여론의 추이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21일에 공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8·15 참배에 대한 지지는 48%, 반대는 36%로 나타났다. 이 여론조사는 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에 걸쳐 행해졌다. 8월15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이전에는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참배 반대가 50%를 넘었던 것과 비교하면 묘한 여론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여론조사의 결과 때문에, ‘고이즈미 극장’의 8월15일 야스쿠니 신사참배 ‘전격 개봉’이 효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여론조사의 결과는 일본 사회의 전반적인 보수화 경향성과 관련해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일본 사회의 보수화 경향성에는 과거회귀적 지향만이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식의 결핍도 포함된다. 어쩌면 이것이 더 근본적일 수도 있다. 침략과 군국주의의 상징이라는 야스쿠니 신사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른 상태에서, ‘부전(不戰)의 맹세, 전몰자(戰歿者) 추도’라는 총리의 공식입장이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변국들의 비판과 반발은 오히려 ‘불쾌한’ 내정간섭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A급 전범 분사’는 가능한가

 

그렇다면, 현재와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해결책은 없는 것인가? 일본 내에서 가장 많이 얘기되고 있는 것이 A급 전범의 '분사(分祀)’이다. 나카소네 전 총리도 한 때 A급 전범 분사를 추진했었다. 또한, 중국 정부의 입장이 여기에 가깝다. 중국 정부는 야스쿠니 문제에 있어 주로 A급 전범의 합사에 초점을 맞춰왔다. 2000년 7월31일 당시 주일 중국대사 우다웨이(武大偉)는 “일반 전몰자를 참배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A급 전범이 합사된 것이 문제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A급 전범 분사’는 야스쿠니 신사 측이 한번 신이 된 영령을 분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이어서 실현가능성이 낮다. ‘분사’라는 말은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야스쿠니 측의 입장이다. 설사, A급 전범을 분사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B급 전범과 C급 전범이 여전히 합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A급 전범을 분사하고 나서 총리와 ‘천황’이 참배하는 것을 용인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도 남게 된다. 전범을 분사했다고 해서 침략과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에 천황과 총리가 참배하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A급 전범 분사론’은 '전쟁책임'을 축소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즉, 전쟁의 책임을 A급 전범 28명에게만 돌리게 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지난 7월 공개된 전 궁내청 장관 도미다 아사히코의 메모 내용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일본의 침략전쟁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히로히토 '천황'이 A급 전범이 합사된 것을 불쾌하게 생각해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중단했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맥아더 사령관과 미국의 비호로, 그리고 동아시아 냉전의 도래라는 국제정치의 소용돌이 덕분에 책임을 면한 히로히토 '천황'이 전쟁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처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른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제3의 국립추도시설 건설'이다. 최근 자민당 야마자키 다쿠(山崎拓) 전 부총재, 공명당의 간자키 다케노리(神崎武法) 대표, 제1야당인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간사장이 주도하고 있는 초당파 의원모임 '국립추도시설을 생각하는 모임'이 차기정권에 야스쿠니 신사를 대체하는 추도시설 건립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마이니치(每日)신문> 8월18일). 이들이 내세운 방안은 무명용사 추도시설인 '지도리가후치((千鳥ケ淵) 전몰자묘원'을 국립추도시설로 확대, 격상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조사비 명목을 내년 예산에 편성하기로 합의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서는 사민당도 긍정적이다. 


'제3의 국립추도시설'에 미온적인 아베 장관

 

그러나, 제3의 국립추도시설의 추진은 미지수이다. 작년 6월20일 개최된 한일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새로운 무종교적 국립추도시설' 건설을 제안했지만, 그동안 추진실적은 제로상태이다. 특히, 차기 총리로 유력시 되는 아베신조 관방장관이 소극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를 둘러싼 일본과 동아시아국가들의 반목을 해소하는 해결방안으로서 새로운 전몰자 추도시설을 건설하는 안이 주목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민당 등의 야당은 새로운 국립추도시설을 평화의 기조로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지난 2001년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후쿠다 야스오 장관의 사적 자문기관으로 출범한 '추도, 평화 기원을 위한 기념비 등 시설 본연의 모습을 생각하는 간담회'의 보고서가 대표적인 예이다.

 

간담회는 보고서에서 "거국적으로 추도, 평화 기원을 올리기 위한 종교적 색채가 전혀 없는 항구적 국립시설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B급, C급 전범은 물론 A급 전범 처리문제에 대해서도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는 극동군사재판(토쿄재판)을 내켜하지 않는(혹은 부정하는) 일본 사회의 보수적 기류를 반영한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역사인식의 결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야스쿠니가 상징하는 역사관과 단절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새로운 국립추도시설이 '제2의 야스쿠니'가 될 수도 있다.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으로 대응해야

 

역사인식의 문제는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전범 처리 이외에도,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지배에 앞장섰던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도 논란거리이다. 이 또한 일본의 전후 역사인식과 직결된다.

 

전후 일본에서 '전쟁책임'- 전쟁책임을 인정하는 이들 혹은 인정하지 않는 이들을 포함해서 -이라는 것은 거의 대부분이 만주사변과 중일 전쟁, 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지는 "15년 전쟁"에 대한 책임을 의미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이전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은 고려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A급 전범 분사'와 '새로운 국립추도시설 건설' 어느 쪽에서도 제대로 언급되지 않고 있는 부분이 있다.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있는 한국인과 대만인 등 식민지배 하에서 강제 징집되어 전사한 이들을 유족들의 품으로 돌려 보내는 것이다.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는 한국인 2만1천명, 대만인 2만8천명이 합사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정확한 실태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핵심은 역사인식과 일본의 정치사회적 보수우경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국립추도시설안과 같은 대안을 제시하면서도, 그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일본 사회의 보수우경화에 대응해 갈 수 있는 마스터플랜이 필요한 것이다.
 
야스쿠니 문제와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를 둘러싼 분쟁이 개별사안이 아니다. 또한, 동시에 각각의 사안은 그 대응방식에 있어서 각각에 걸맞는 적절한 수위와 수단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계획이 없다면 한국 정부의 산발적인 강경대응과 일본 사회로부터의 감정적 대응이라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우리는 출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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