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동아시아](21) 동아시아 연대운동의 현황과 전망 | ||||||
입력: 2006년 12월 15일 15:46:00 | ||||||
“아시아에 47개 나라가 있어요? 그렇게 많은지 몰랐어요.” 카타르 도하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리고 있지만 평소 우리는 ‘아시아’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해봤나 싶다. 1년 365일 눈만 뜨면 아시아 이웃들에 대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간만에 한 자리에 모였다. 13일 ‘동아시아연대운동의 현황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서남포럼 토론회에서다.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열린 이 토론회는 아시아 연대운동을 하는 시민운동가와 연구자들의 한마당이다. 현장에서, 연구실에서 각자 느껴온 고민과 또 그동안 이뤄낸 성취들을 함께 나누는 자리였다. “한국에도 못사는 사람이 많은데…”라며 갸우뚱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왜 동아시아 또는 아시아 연대일까. “지역 연대운동이 국가간 갈등 해소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개별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개혁 과제를 촉진하는 데도 영향을 미칩니다. ‘한국’을 뛰어넘는 시야를 가진 시민들의 지지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과제는 지리적·문화적 거리가 가까운 동아시아에서부터 시작해 범위를 점차 확대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백영서 연세대 교수(역사학)의 말이다. 또 계간 ‘아시아’의 주간 방현석 중앙대 교수(국문학)의 말은 이렇다. “아시아 대지에서 출현한 상상력은 국경을 거의 넘지 못했고, 어쩌다 유럽 국적의 선박에 오른 것들만 서구의 시선으로 해설돼 간신히 아시아에서 풍문이 떠돌았을 뿐입니다. 아시아의 말로 아시아가 어떤 상상력으로 채워진 대륙인지 알아야 합니다. 놀랍게도 아시아의 47개국 언어 중 한국어로 번역이 가능한 근대문학을 가진 언어는 9개밖에 되지 않더군요.” 서남포럼 운영위원장인 최원식 인하대 교수(국문학)의 말처럼 “올해는 동아시아연대에 우호적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던 해”였다. 북한, 미국을 둘러싼 여러가지 일들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중국과 일본에서 불던 ‘TV드라마 한류’도 이제 내리막길이다. 최교수는 그러나 “상황이 절망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좋은 기회가 왔다”고 했다. “북핵 위기 속에서도 미국의 민주당이 약진했고, 중국의 역할이 커져 일본이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점”, 무엇보다 “‘배용준’으로 대표되는 한류 거품이 꺼져 이제는 정말 현실에 발 딛고 선 각 나라 사람들이 보다 본질적인 문화로 서로 만나는 게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기대” 때문이다.
그간의 연대활동을 체계화하기 위해 이날 발간된 ‘동아시아연대운동단체 백서’도 아시아 연대활동이 진일보했음을 보여준다. 백서 집필에 참여한 전제성 전북대 교수(정치학)는 “국제회의를 개최하거나 참석하는 것이 국제연대라는 생각은 이제 유치한 것이 됐다”면서 “웹사이트와 활동가들의 장기 해외파견, 타국 활동가들에 대한 물적 지원 등을 통해 연대가 일상화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 활동가들의 육성을 들어보면 동아시아 연대는 이제 본격적인 ‘성장통’을 겪고 있는 듯하다. 인적·물적 자원의 부족, 현지어 구사자의 부족 등은 다소 기능적인 문제라 하더라도 연대를 대하는 우리 활동가들의 태도에 ‘민족’ ‘국가’라는 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은 되새겨볼 만하다.
연대라는 것이 국가와 민족을 넘어 단체와 개인들이 교류하는 것이지만 여전히 우리 활동가들에게는 단체 중심 연대에 대한 집착,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느끼는 국익에 대한 미련 등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다는 말이다. 특히 ‘운동의 수출’에 대해 지적에 많은 시민운동가들이 공감했다. 해외 진출 한국 기업을 감시하는 일을 하는 국제민주연대의 최미경 사무국장은 “한국 시민사회가 한국의 운동을 알리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시민단체가 정치권력 못지 않게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며 그분들께 강요하는 방식으로 운동을 전파하는 경우는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혜정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혹시나 환경운동연합에 그런 측면이 있었다면 반성해야 할 듯하다”면서 “다만 세계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시민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으며 상호 교류를 통해 함께 나아가자는 태도로 임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민족’을 얘기하는 사람들을 아시아 연대와 평화 논의에서 배제해서도 안된다는 얘기도 나왔다. “평화운동의 흐름 중 군사기지 반대 운동을 하는 분들은 백서에서도 빠졌고 우리 논의에서 철저히 배제돼 있습니다. 그쪽 분들과 정보교류도 필요합니다.” 이준규 평화네트워크 정책실장의 말이다. 미얀마에서 온 이주노동자이자 시민운동가인 마웅저씨는 이날 포럼의 유일한 외국인 참석자였다. 그는 “최근 언론에서 대우인터내셔널이 미얀마 독재군부에 기술을 수출한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불법체류자를 많이 보내는 나라, 아웅산 폭파 사건, 민주화의 상징 아웅산 수치 등 여러분들이 어떤 식으로든 버마를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한민국이 그 위상에 걸맞게 아시아의 민주화와 평화에 기여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끝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태국 영자신문 ‘더 네이션’의 2005년 11월28일자 칼럼(백서 53쪽)을 인용한다. “아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개발 NGO 가운데 한국의 평면TV, 휴대폰, 드라마뿐만 아니라 한국의 민주주의를 수출하기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시아의 다른 국가에 민주주의를 수출한다는 것은 매우 거창하게 들리고, 심지어 자랑하고 싶어 하는 듯 보이며, 선심 쓰는 듯하게도 느껴진다. 한국사회의 폐쇄된 성격으로부터 판단하자면, 한국 시민사회의 목표는 단순히 더 많은 개발 원조나 민주주의를 수출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대신 먼저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편견을 성찰하고 한국사회가 다른 사람들과 문화를 수용할 수 있도록 문을 여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다문화주의란?=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는 한 사회가 인종, 성별, 성적 취향 등에 따라 구별되는 이질적인 주변문화로 이뤄져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이들을 포용해야 함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우리 문화가 우수하다는 자부심이 다른 문화를 무시하는 것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문화적 상대주의(cultural relativism)와 함께 문화인류학에서 강조되는 개념이다. 1971년 캐나다에서 공식 정책으로 채택돼 유럽 국가들로 확대됐으며 주로 선진국에 들어온 이민자 집단의 문화에 대해 많이 쓰이는 말이다. 〈손제민기자 jeje17@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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