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정치인들의 논쟁 부추겨라 | |||||||||||||||||||||||||||
[비평] 심상정 대 노무현의 한미FTA 논쟁과 언론보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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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상황에서 미국 대선 이후 한미FTA 비준 시기에 대해 정치권이 시끌하다. 이런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과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가 한미FTA 협상을 놓고 ‘의미있는’ 공방을 이어가고 있어 화제다.
현재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여야가 한미FTA의 정책적 효과를 논하기에 앞서, 일단 찬성을 전제로 비준시기를 놓고 다투고 있는 모습과 비교해볼 때, 노무현-심상정의 논쟁은 한결 책임있는 내용이 오가는 ‘정책 토론’으로 보인다.
이에 지난 16일 노 전 대통령은 “금융위기와 한미FTA는 무관하다”면서 한미FTA는 신자유주의의 전형이라는 심 대표의 비판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18일 오전 심 대표는 “토론이 시작돼 반갑다”며 그의 반론을 반겼다. 심 대표는 이날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미FTA를 추진하는 단계에서도 논란이 컸는데 이제 미국의 금융위기가 모든 논란을 분명하게 해줬다”면서 “한미FTA는 지금의 금융위기를 불러온 노무현 정부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재반론을 편 데 이어 19일 오전 자신의 블로그에 반박의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를 ‘유의미하게’ 보도하는 신문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다수 언론의 무관심 속에 그나마 이를 다룬 신문들은 그간 정치권을 대하던 방식대로 이맛살을 찌푸리기부터 했다.
<한국일보>는 18일자 3면 특집 ‘정치권은 지금 논쟁중’에서 “정치권이 난전 양상”이라면서 “한미FTA 비준을 놓고는 여야 각 정파가 다른 생각을 내놓다가 급기야 노무현 전 대통령과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 간에 논쟁이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마치 노-심 논쟁이 ‘난전 양상’의 일부인 것처럼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어 한국일보는 같은 면 하단에 ‘“FTA 고해성사부터 하시죠” vs “차 시장 궤멸 주장은 침소봉대”’ 기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온라인 논쟁이 점입가경”이라며 심 대표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반박글을 인용해 전달했다.
<경향신문>도 13일 ‘민주당 “노, 왜 자꾸 나서나 몰라”’에서 “민주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연일 정치무대에 등장하면서 여권과 민주당의 정국 대치 구도에 혼선이 생기는 데 대한 불만이다”며 지난 12일 노 전 대통령의 ‘한미FTA 재협상’ 글과 관련한 정치권의 비판적 반응을 전했다.
해당 기사에서 경향은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의 공개편지를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의 “제발 말씀을 아끼셨으면 좋겠다”는 발언과 함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으로 전했다. “입 다물라”와 “말해보라”를 구분하지 않고 한통속으로 묶은 것이다. 또, 심상정 대표의 토론 제의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향은 노 전 대통령이 심 대표의 글에 반론글을 올리자 18일자 2면에서 ‘불붙은 ‘FTA 공방’’이라며 심 대표의 맞장 토론 요구와 노 전 대통령의 반박글을 다뤘다.
<중앙일보>도 13일자 8면 취재일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적절한 언행’에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정치권 반응은 싸늘하다”며 경향의 보도처럼 심 대표의 토론 제의는 다루지 않은 채, 그저 정치권의 부정적 평가로 묶어서 전달했다. 중앙일보는 “정쟁의 도구가 돼선 안되는 한미FTA는 이미 첨예한 정치이슈가 됐다”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칼날을 쥐고 손잡이를 흔드는 것과 다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겨레는 19일자 6면 ‘심상정 “내 뜻은 FTA가 벼랑길이란 것” 노무현 “토론을 원하나, 비판을 원하나”’에서도 심상정 대표의 라디오 출연 발언을 인용해 ‘심-노, 맞장토론 2라운드’를 다뤘다. 이들 보도는 논쟁을 정쟁으로 몰아가지는 않았지만, 역시 양쪽의 입장을 단순 전달해 중계하는 방식에 그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심 대표의 최초 토론 요청 글은 보도하지 않다가 노 전 대통령이 반박글을 올리고서야 비로소 보도하기 시작한 것도 정치인들의 논쟁에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부동산 거품 등 미국식 경제 시스템의 붕괴로 촉발된 국제 경제 위기가 우리나라에도 큰 타격을 주고 있다. 미국식 경제 시스템이 한국 전반을 강타하게 될 ‘한미FTA 협상’에 대해서도 언론은 ‘여야 정쟁’에 집중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 가운데 협상을 주도해온 전 정권 대통령과 협상 반대를 주도해온 전 야당 국회의원이, 금융위기 사태 속에서 ‘재협상’과 ‘폐기’ 등을 놓고 정책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것이 단순 공방으로 처리할 사안일까.
이봉수 세명대 교수는 최근 심-노 논쟁관련 언론보도에 대해 “<인디펜던트> 등 영미권의 권위있는 퀄리티 페이퍼들의 경우 정치인들의 중요한 정책 논쟁에 대해 논쟁 내용이 바람직한지, 그리고 어느 쪽 주장이 타당한지를 검증하는 보도 태도를 보인다”면서 “우리 언론들이 정치인들의 논쟁을 ‘단순 정쟁’이나 ‘공방전’으로 전하는 것은 매우 선정적”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 교수는 “금융위기 속에서 한미FTA 협상 비준이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은 심상정 대표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논쟁 같은 생산적인 정책 논쟁을 오히려 부추겨야 한다”면서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인지를 따져가며 적극 보도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IMF 시절보다 더 어렵다는 이 시기, 더이상 언론은 노-심의 토론을 기존의 정치권 보도하듯이 ‘괜한 정쟁’인 것처럼 보도해 ‘정치혐오증’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국민들의 눈을 가려서는 안 된다. 지금은 심 대표와 노 전 대통령 사이의 논쟁으로 촉발된 ‘금융 위기와 한미 FTA 협상 국면의 명암’을 적극 분석해, 위기 타개책을 고민해야 할 때다. 부디 정쟁만 부추기지 말고 논쟁을 부추겨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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