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에서 드러나고 있는 대표 시스템(representative system)의 실패와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될 수 있는 '하시모토 현상'-하시모토는 전 오사카부 지사, 현 오사카시 시장이며 변호사 출신의 대중적 인기가 높은 정치인이다. 현재는 지역정당인 오사카 유신회를 이끌고 있다-에 대해 분석하고 있는 칼럼.
-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정치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의회에 대한 불신과 함께, 기성 정당고 정치세력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은 안철수 현상이라는 정치사회적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런 현상이 한국 사회에 가져올 효과는 무엇일까? 이것이 서구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대변하는 대표 시스템과 대의민주주의제도에 대한 비판,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다양한 직접 민주주의 실험들의 등장으로 이어지고 정치과정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참여의 폭을 넓혀 주는 계기로 이어질지.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정치문화의 창출과 제도의 확립이라는 결과, 민주주의의 질적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아니면, 아주 극단적인 결과일 수도 있지만, 강상중 교수도 언급하고 있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돈과 붕괴--->나치즘의 등장이라는 역사적 경로를 따라가게 될 지. 물론 그 경로를 그대로 재현하지는 않을 지라도, 예컨대 현대판 보나파르티즘의 등장으로 비유할 법한 '희극적 상황'들이 연출될 수도...
아직까지 후자보다 전자의 길을 가게 될 가능성은 일본보다 한국의 경우가 더 높아 보이긴 하다.
[강상중칼럼]아무것도 결정 못하는 정치
한국을 비롯해 해외에서 바라볼 때 일본 정치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파악하기 곤란할 것이다. 그 이유는 정권들이 단명에 그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권의 황망스러운 교체극에 일본 국민도 질려 있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일본 단명 정권의 괴이함이 두드러져 보일 것임에 틀림없다.
이 정도로 일본 정치가 불안하다면 역사 현안, 외교, 안보, 무역과 통상 문제 해결 등과 관련해 과연 일본 정부를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지 한국으로서도 회의적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적어도 중장기적으로 국가 간 대화와 협력, 국가전략에 기반한 문제 해결 노력 등을 기대할 수 없게 됐음에 틀림없다.
결국 정치 주도의 외교와 교섭, 새로운 차원의 한·일관계 구축 등에 결단력 있는 대응이 불가능하다면 정치의 공백과 부작위(不作爲)를 관료정치가 보충하는 수밖에 없다.
관료정치가 과거 조약과 협정의 일언일구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면 한일협약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체결 당시에는 논의되지 않았던 ‘일본군 위안부’와 역사 문제에 대해 새로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정치적 결단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세제와 사회보장 일체개혁’과 소비세 증세, 원자력발전소의 재가동, ‘1표의 격차’를 둘러싼 시정조치(선거구 조정 문제), 오키나와 후텐마(普天間) 기지 이설 문제 등 여당과 야당 사이뿐 아니라 여당 내부에서도 균열이 발생해 거의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문제 해결이 계속 보류되고 있다.
지지율 하락에 고심하는 노다 정권은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의 ‘네지레’(상·하원에서 각기 다른 당이 다수당인 상태)도 있어 최대 야당인 자민당에 접근하면서 동시에 여당인 민주당 내부 융화를 꾀하는 양동작전을 펴고 있지만, 타개의 길을 찾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이런 정권의 딜레마를 싸늘한 시선으로 보는 국민들 사이에선 정당정치 자체에 대한 원망과 한탄마저 자라고 있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는 정치’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정치’가 지속되면서 의회는 정당 간 흥정과 잡담장으로 변했고, 국민은 그 저급한 소극을 봐야 하는 분위기인 것이다.
일찍이 역사상 가장 민주적이라고 일컬어지던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도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다당병립의 소수여당 정권이 계속되는 가운데 결국은 나치스의 독재정치로 대체됐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무덤을 판’ 이들 중에서 헌법학, 정치학에 중대한 역할을 한 학자 칼 슈미트는 아주 적절하게도 의회민주주의를 ‘잡담 기관’이라고 야유했다. 민주적인 결단은 뒤로 미루고 당리당략에 빠진 우유부단한 의회정치를 비꼰 말이다.
일본의 경우, 1929년 월가 대공황에서 파급된 쇼와(昭和)공황의 위기 속에서 민정당과 정우회라는 양대 정당제가 기능부전에 빠지면서 군부가 대두했고, 마침내 정당정치에 기초한 의회정치는 ‘쇼와유신’의 파쇼적인 열광 속에 매몰돼 갔다. 확실히 현재의 일본 정치를 1930년대와 비교하는 것은 비약임에 틀림없다. 역사는 꼭 닮은꼴로 되풀이되는 것도 아니며 안이한 역사 유추는 금물이다. 다만,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정치,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는 정치라는 점에서 현재와 1930년대 사이에 공통점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전후 민주주의가 정착한 일본에서 옛날처럼 ‘혁신막료’ 같은 청년장교들이 등장하는 무대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기성정당과 다른 ‘제3세력’으로서 오사카시(市)와 오사카부(府)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정당이 구체제(앙시앙 레짐)의 타파를 내걸고 국민적인 큰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기이하게도 이번에도 ‘유신’이 슬로건인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핵심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정치를 바꿔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정치, 국민적인 ‘결단’을 촉구하는 강력한 ‘결단주의’의 거버넌스이다. 이런 움직임이 과연 기성 정당정치에 얼마만큼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또 ‘제3세력’과 기성세력 간의 융합이 얼마나 진전될 것인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일본 정치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돼온 이른바 ‘전후 민주주의’와 다른 ‘포스트 전후 민주주의’를 모색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새로운 움직임이 한·일관계와 역사 문제, ‘일본군 위안부’와 영토 문제 등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 것인지 주의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강상중 | 도쿄대 대학원 교수> 입력 : 2012-05-23 22:42:55ㅣ수정 : 2012-05-23 22:42:55
*** 하시모토 토오루 및 오사카 유신회 관련 기사자료
- 이시하라 신타로 선거준비, 하시모토의 오사카 유신회와 연계 가능성도
http://headlines.yahoo.co.jp/hl?a=20120615-00000222-yom-pol
- 일본 여론,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이 총리적임자
- 오사카 유신회, 총리 공선제 단원제 추진 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new_search/YIBW_showSearchArticle_New.aspx?searchpart=article&searchtext=%ec%98%a4%ec%82%ac%ec%b9%b4%20%ec%9c%a0%ec%8b%a0%ed%9a%8c&contents_id=AKR20120212037200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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