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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정치의 중심과 대통령- 경향신문

문화읽기

by DemosJKlee 2013. 11. 19.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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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정치의 중심과 대통령

현대 정치는 정당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정당이 입법부를 구성하고, 정당이 집권해서 행정부를 책임지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정당 간 경쟁 없이는 정치도 존재할 수 없다. 특히 정당들이 국사를 논하고 그 결과를 입법화하는 국회 활동은 가히 정치의 본령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도 명백한 정치적 실체다. 국정을 운영하면서 특정 정당의 후보로서 그 정당이 선거에서 공약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뿐 아니라, 사실상 집권당과 국회를 좌지우지하는 정치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그런 정당정치에서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은 하나의 허구이자 형용모순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정치적 역할도 하는, 상호 충돌하는 이중역할을 해야 하는 게 한국의 대통령이다. 그래서 보통 대통령은 선거 개입 발언 및 당파적 언행을 자제하고 여야에 기울지 않는 초월적 언어법을 구사하되 실질적으로는 정치권력의 정점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른바 줄타기를 했다. 그게 관행이라면 관행이 되었다. 물론 예외가 있다. 정치적 중립의 가식을 벗어던지되 권력은 분산하려 한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다. 대신 그 방식은 선거관리위원회의 경고와 야당의 탄핵소추 등 극심한 정치적 혼란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실패한 실험이 말해주듯 회오리처럼 권력이 한 곳으로 몰리는 한국 정치의 현실에서 정치의 중심은 대통령일 수밖에 없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처럼 권력 집중을 선호하는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어제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면서 “국회 안에서 논의하지 못할 주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사실의 기술(記述)이 아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가 아닌 박 대통령 자신이기 때문이다. 좀 바꿔서 말한다면 박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하는 공안기관이 정치의 중심이었다. 그렇다고 이 발언이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인 것도 아니다. 박 대통령이 권력을 새누리당 혹은 국회에 맡겨두고 그 결정을 따르기로 방침을 바꾸기 위해 한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말의 진정한 의미는 첫째, 국회가 정치의 중심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관한 고백이며 둘째, 앞으로는 정치적 책임을 대통령에게 지우지 말라는 자기 면책 선언이다.

<이대근 논설위원, 경향신문>


 

입력 : 2013-11-18 21:36:29수정 : 2013-11-18 21:3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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