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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문제와 북일관계

동북아와 국제 정세

by DemosJKlee 2007. 6. 13.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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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과 납치문제

이준규(평화네트워크 운영위원)/2004년 3월4


납치문제와 일본 속의 북한

두 번째 6자회담에 임하는 일본 사회의 최대 화제는 납치문제였다. 거의 대부분의 뉴스는 6자회담에서 납치문제를 어떻게 제기할 것인가였다. 일본측의 대표도 회의테이블의 애초 의도보다는 어떻게 하면 납치문제를 의제로 제기해 볼까 하는 것이었다.  

사실, 일본사회가 북한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1998년 일본 열도의 상공을 통과해서 날아간 ‘대포동’ 미사일과 “불심선”(不審船)-북한의 선박으로 추정-의 일본 영해 침범, 여기에다 2002년 9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납치문제 ‘고백’은 일본 속의 북한 이미지가 ‘범죄자 집단’으로 고착되어 버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일본의 입장에서, 납치문제는 북일관계의 ‘알파와 오메가’인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는 선정적인 일본 언론의 보도행태가 한몫 했다. 때문에, 2002년의 북일정상회담에서 납치문제의 처리 방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뿐만아니라 고이즈미 수상의 계산착오였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수상이 정상회담의 성과를 보고하는 회견을 보도하는 텔레비전 방송들은, 화면을 양분해서 한쪽은 수상의 담화발표를 또 다른 한쪽은 실망하고 분노하는 납치피해자 가족들의 모습을 담았던 것이다. 여론이 급격하게 들끓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뿐만아니라, 직후 이루어진 켈리차관보의 평양 방문과 핵 의혹의 제기는, 고이즈미 수상이 ‘부담없이’ 역코스(reverse course)로 방향을 선회할 수 있도록 하는 국제적 명분까지 주었다.

친북VS반북: 2003년 11월의 중의원선거

일본 내에서 납치문제가 얼마나 뜨거운 쟁점인가는, 작년 11월에 치루어진 중의원 선거의 과정을 보면 더욱 확실해 진다. 작년 중의원 선거는 그야말로 고이즈미 내각이 ‘올인’한 선거전이었다. 자민당은 연로한 국회의원들을 거의 강제로 은퇴시키고, 대중적 인기가 높은 젊은 의원(아베신조)을 간사장으로 앉히면서 선거를 치루어 냈다. 결과는 민주당의 약진으로 나타났다. 자민당은 목표했던 단독과반수 획득에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과정에 있다. 중의원 선거에서 고이즈미 내각과 자민당은 북한문제, 특히 ‘납치문제’를 최대의 선거쟁점으로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고이즈미가 북한에 대한 강경발언과 ‘납치문제의 해결사’라는 이미지로 대중적 인기가 높은 아베신조를 선거의 얼굴인 간사장에 기용한 점에서 이미 예견되는 것이었다. 뿐만아니라, 2002년 귀국해서 북한에 돌아가지 않은 5인의 납치피해자와 그들을 후원하는 시민단체들은 선거기간 내내 전국을 순회하며 강연회와 집회를 개최했고 그들의 움직임은 매일매일 텔레비전과 매스미디어를 통해 생중계 되다시피 했다.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을 주장해왔던 사민당과 공산당은 선거전에서 참패해야 했다. 공산당은 지역구에서 전멸하고 비례대표 의석에서 9석이 당선되는 수모를 당했다. 사민당은 의석이 6석으로 줄어들면서 미니정당으로 전락했다. 특히, 지역구에서 납치의원연맹 소속 후보와 격돌한 도이다카코 당수는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결국 패배하고, 비례대표로 간신히 부활해서 의원직을 유지하는 치욕을 당해야 했다. 도이다카코 사민당 당수는 지역구에서 ‘친북’ 정치인으로 낙인찍는 여론몰이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었다. 제1야당인 민주당 또한 납치문제를 피해가려 하다가 자민당의 공격이 가열되자, 납치문제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표명하게 되었다. 친북정당으로 몰리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대북(對北) 강경정책과의 시너지 효과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우선, 납치문제는 일련의 대북 강경책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지난 2월12일부터 평양에서 있었던 납치문제 관련 북일교섭이 별반 성과없이 끝나자 아베신조 자민당 간사장은 2월21일 나가노(長野)현에서 행한 연설에서 “북한이 핵문제와 납치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으면 북한에 대해 일본은 경제제재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올해 들어 일본이, 사실상 북한을 겨냥한 ‘외환관리 및 대외무역법’-독자적 경제제재법, 일본이 자국의 평화와 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판단되는 나라에 대해 독자적으로 송금정지와 무역제한, 자산동결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 -을 개정할 때도 즉각적으로 사용하려는 것은 아니며, 납치문제는 외교적 방법을 통해 해결한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던 것과는 다른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 '본심'(本音:honne)이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법안의 입법과정에는 제1야당인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사민당도 “발동은 신중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법안에 찬성을 표명했다. 이것은 , 이것은 일련의 대북강경법안이 “일본이 대외 협상에 있어 유효한 수단을 가지게 된 것이다”는 의미에 국한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민주당은 자민당과 법안 공동발의를 하면서 ‘납치문제 특별위원회’의 설치까지 요구했다. 다시말하면, 현 일본의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북한문제와 납치문제에 있어서만은 여야가 따로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자민당은 ‘특정선박입항금지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법안이 입법화되면, “일본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내각”의 결정에 따라 북한 선적의 선박과 북한에 기항한 선박 등에 대해 일정기간 입항을 금지시킬 수 있다. 결국, 이 법안까지 통과된다면, 일본은 독자적으로 북한을 경제봉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과거 우리의 손은 묶여 있었지만 이제는 해야 한다면 북한의 생명줄도 자를 수 있다“는 자민당 어느 의원의 말은 현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매스미디어에 이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납치문제에 관한한 아사히, 요미우리, 산케이가 하나같이 단호하고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보수계 신문 중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요미우리신문은 북일 양자 교섭이 시작된 다음날(2월13일) “압력이 있었기 때문에 대화가”-여기서 압력은 앞서 언급한 외환관리 및 대외무역법-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납치피해자 가족들을 즉시, 무조건적으로 귀국시키고 북한은 국가범죄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북한을 대화의 자리로 나오게 한 것은 국제적 공조를 통한 압력의 효과라고 주장했다. 또한, 회담이 별반 성과 없이 끝나자 2월15일자, 2월18일자 사설에서는 “납치문제의 해결은 북일 국교정상화의 전제”이며 “‘특정선박입항금지법안’의 입법화가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시 보수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산케이 신문은 신년 초부터 대북한 제재를 통한 압력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북한에 압력 필요”(1월5일), “북한 핵동결, 양보라는 사기 전술은 통하지 않는다”(1월11일), “대북제재법안 적절하게 발동하는 것이야 말로 효과”(1월29일), “납치문제, 조선총련의 관련성도 초점을”(1월30일), “납치문제 협의, 제재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임해야”(2월13일), “북한 태도 변화 없으면 경제제재 발동을”(2월18일) 등 그 제목만 보더라도 입장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일본 보수파와 보수계 매스미디어들은 북한이 비공식 채널과 공식채널을 통해 일본 정부와 협상을 하는 것조차, 비공식채널을 통한 협상은 분열전술로(산케이신문 1월9일자 사설) 공식채널을 통한 협상은 압력에 굴복한 것이라는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납치문제의 ‘이성적’, ‘합리적’ 해결을 주창하는 목소리는 설 자리가 없다. 북한의 전면적인 현상타개책으로 보려하지 않고 입맛에 맞게 해석하는 것은 한, 미, 일 보수파의 견해가 철저히 ‘공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납치문제에 얽힌 함수관계와 한국


이준규(평화네트워크 운영위원)/2004년 3월 15


납치문제는 북일관계를 중심으로 동북아 차원의 국제적인 문제이며 동시에 일본 국내의 다양한 변수들과 얽혀 있다. 때문에 그 향방도 다양한 변수에 의해 영향 받을 문제이다.

너무도 당연한 언급이지만, 납치문제는 북일간에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해결의 열쇠는 북한과 일본이 쥐고 있다. 그러나 또한, 이미 납치문제는 일본 국내의 정치구도, 매스미디어를 비롯한 여론의 향배에 의해서도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한번 형성된 인간의 ‘인식’(perception)은 변화되기 어렵고, 그 인식이 집단적 인식이라면 더욱 그러하다는 점에서 본다면, 일본 내 만연된 북한에 대한 범죄적 이미지는 그 극복이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뿐만아니라, 납치문제는 그것이 부각되고 부정적 방향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이 동북아 정세와도 긴밀하게 연동되고 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북미간의 대결구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북한에 대한 의혹들은 납치문제에 대한 합리적 접근의 공간을 원천적으로 봉쇄해 버리고 있다.

일본 내에 만연된 국민적 감정

아사히신문(2월23일자)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부가 납치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경제제재를 추가해야 한다‘는 대답이 49%에 달했다(좀더 대화를 해야 한다 38%). 또한, 토쿄방송(TBS)이 3월6-7일 인터넷에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는, ’납치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대응이 부족하다‘(82%), ’즉시 대북한 경제제재를 행해야 한다‘(36%), ’상황을 보아가면서 판단해야 한다‘(53%)였다. 반면에 경제제재를 해서는 ’안된다‘는 대답은 10%에 그쳤다. 북한의 선박 입항을 금지하는 특성선박 입항금지법안에 대해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가능한 빨리 입법화하고 금지해야 한다‘(37%), ’법안은 만들고 실행은 상황을 보아가며 해야 한다‘(57%), 반면, ’이런 법은 필요 없다‘는 대답은 4%밖에 되지 않았다.    

일본에서 납치문제가 ‘독점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이유는, 이러한 북한에 대한 부정적이고 강경한 국민적 감정의 문제이다. 대부분의 일본 국민들이 납치문제에 대해 ‘분노’의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북한을 위협적인 존재로 보고 있다. 납치문제를 통해서 일본 국민들에게 북한은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나라’에서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나라’로 인식되었다.

이것은 ‘대포동’ 미사일을 일본 영공을 통과해서 날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해변을 산책하는 연인을 납치하고, 해외유학생을 친구를 통해 유인해서 북한으로 납치하고, 아침에 인사하고 나간 자식이 중년이 되어 부모 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은 그 위협이 국민들 ‘일상의 문제’로 다가오는 것이다.

또한, 전후(2차대전 후) 가해자로서 항상 비난만 받고 살아왔던 일본의 입장에서는 최초로, 그것도 정당하게 피해자로 행동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또한, 일본은 그동안 막대한 정부개발원조(ODA)를 행하면서도-91년 이후 세계1위의 규모- 그 의도를 의심받고 제대로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했다. 걸프전에서도 막대한 전비(약130억달러)를 지원했지만, “피를 흘리지 않는 일본”이라는 비아냥만 들어야 했다. 일본은 국제무대에만 서면 항상 작아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했던 것이다. 그랬던 일본 국민들이 전후 처음으로 특정 국가를 “마음껏 비난할 수 있는 쾌감”을 느끼고 있다는 릿쿄대학 이종원 교수의 평가는 너무 ‘엄한 평가’라기보다는, 분명 어느 정도의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이해관계: 편승과 프로파간다

그러나, 국민적 정서는 또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일본의 정치인, 정치세력들이 북한에 대한 강경한 발언이나 입장을 취하는 것을 통해, 단적으로 말하면 ‘표’를 만들고 있다. 정부와 관료집단에 대해 더욱 강경한 대북 입장을 요구하는 것을 통해 일종의 선명성 경쟁을 하게 된다. 일본 정치인들의 이러한 행태가 일본 국민들의 감정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제1야당인 민주당이 납치문제에 있어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은 이것을 입증해 준다. 최근 국내 언론에 보도된 고이즈미 수상의 “김정일 장군”발언 해프닝도 국회에서 민주당의원이 북일평양선언에 납치문제가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보다 ‘과’가 훨씬 크다고 한 공격에 반박하면서 나온 것이었다.  

‘북한위협론’을 필요로 하는 일본의 보수우익 정치인들에게 납치문제는 확실한 위협의 사례이다. 예전에는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이 ‘조작’이라고 역공을 펴고 확실한 증거도 없었지만, 이제는 북한의 국가원수가 인정한 명백한 사실이 되었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공식화-사실, 일본은 이미 군사대국이다. 다만, 이것을 공개적이고 공식적으로 정당화하고 있지 못할 뿐이다-하는 것의 정당성을 보장해 주고 있는 것이다.

선제공격론, 전수방위개정/폐지론, 미사일방어의 도입 등은 모두 북한의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는 논리로 제기되고 있다. 탈냉전 이후 사라져 버린 소련으로부터의 북방위협론-냉전기 일본은 미국과 소련이 전쟁을 하게 되면 소련으로부터 일본이 직접 공격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최대안보 관심이었다-이나, 아직은 직접적이고 가시적이지 않은 중국위협론과는 다른 ‘현존하는’ ‘실제의’ 위협을 제기할 수 있는 좋은 소재인 것이다.

납치문제에 얽힌 이러한 정치적 이해관계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다. 올해 7월 일본의 참의원 ‘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납치문제의 뾰족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면 북한문제는 다시 뜨거운 선거쟁점으로 부상할 것이다. 게다가, 자민당 내에서는 이미 7월 참의원 선거를 헌법개정을 위한 전초전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납치문제의 해결의 실마리

고이즈미 수상은 3월3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개정된 ‘외환·외국무역법’에 의한 대북 경제제재 발동에 대해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나와 한창 평화적 해결을 해보려 하는데 번쩍거리는 칼날을 들이대면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며 “칼이 사람을 베기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니다. 칼을 뽑지 않고 끝내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자민당이 이번 국회통과를 추진 중인 특정선박 입항금지법에 대해서도 “일시적 감정으로 대북 교섭을 하는 것은 위험한 측면이 있다”며 “냉정하고 신중하게 대응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일본 정부가 아직은 대북강경책에 대해 신중한 입장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지난 2월 북한과 일본이 정부간 협의를 시작한 것도 의미 있는 진전이다. 특히, 2002년의 북일평양선언을 이끌어 내었던 다나카히토시 외무성심의관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외무성 관료들로부터 제기되고 있는 ‘대화론’이 힘을 얻고 있다는 징후이기도 하다. 또한, 북한이 일본과 납치문제에 대한 정부간 공식 대화를 시작했다는 것은 그동안 일본으로 귀국해서 머물러 버린 5인을 무조건 ‘귀국’시키라던 요구와는 다른 “전향적” 자세이다. 오히려 역풍이 불수도 있겠지만 북한측이, 5인이 평양공항에 와서 가족들을 맞이하는 방식의 구체적인 귀환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변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첫째, 일본의 입장에서, 특히 고이즈미 수상의 입장에서 납치문제는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즉, 납치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계속 지지부진하다면 결국 그 비난은 정부내각으로 집중될 것은 뻔한 것이다. 또한, 납치문제는 5인의 가족을 일본으로 귀환시키는 것만 아니라, 사망자로 통보된 8인에 대한 진상조사 그리고 아직 규명되지 않은 ‘납치사건’의 내용에 대한 조사 등 산적한 과제들이 밀려 있다. 이러하기 때문에 “납치문제로 인해 일본의 외교가 납치되어 버린” 현상황을 그대로 유지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납치문제를 가지고 북한을 압박해도 진전은 되지 않고, 오히려 동북아 외교무대에서 일본의 입지만 좁아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 북한의 입장에서 현재는 전방위적인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고, 또한 북일관계도 어떠한 방식으로든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사실, 그동안의 북일관계를 보면 동북아의 정세가 조금이라도 완화되면 수교교섭이 급진전되곤 했었다. 이는 북한이 현상의 고립상태를 탈피할 수 있는 중요한 출구(exit)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적극적이고 일관된 한국 정부의 외교철학과 전략이 필요

한국 정부는, 납치문제의 해결이 피할 수 없는 과제임을 인정하면서도 6자회담의 진행 궤도와 연계하려는 일본의 의도를 적절히 견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정치권의 압력과 여론에 밀려 6자회담에서 ‘원칙적으로’ 납치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그것도 모호한 화법으로-, 오히려 정부 관료들 내에서는 그러한 요구가 비효율적이며 실리도 없다는 목소리가 존재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2000년 7년여만에 북일수교 협상이 재개되었던 상황을 되돌아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대포동미사일 문제(98년8월), 금창리의혹(98, 99년) 등에 의해 경색되었던 동북아의 정세가 한국정부의 일관된 정책의 견지와 미, 일에 대한 설득으로 다시 화해의 무드로 반전될 수 있었다. 2000년 북일수교가 재개될 당시 일본 정부는 외무장관이 직접 나서서 국민들을 설득했다. 또한, 2002년 북일정상회담이 성사되었던 것은 남북정상회담과 평화무드, 그리고 서해교전과 부시행정부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진행되던 한반도 평화무드가 견인한 바 크다. 지금, 바로 그러한 한국정부의 적극적이고 일관된 외교력이 필요한 것이다. 외적조건이 변했을 때, 일본 국내의 여론은 변할 수 있다. 합리적 논의도 가능해 진다.

보편적 준거에 기반 한 한일 시민사회의 연대

또한, 일본의 시민사회 내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일본의 시민사회내에서는 납치피해자들의 고통을 조속히 끝내고 일본의 안보우려를 해소하는 지름길은 6자회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북일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상을 조속히 시작하는 것이라는 주장들이 존재한다. 또한 이들은 ‘납치문제’와 ‘6자회담-북일관계정상화’의 궤도(track)를 달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Two-Track Approach).

납치문제 해결은 2002년 북일평양선언에서 합의된 것처럼 “상호 신뢰 관계에 기초해 국교 정상화를 실현하는 과정”(同선언1항)에서, “조, 일 사이에 존재하는 제반 문제들에 성의 있게 임하는”(同선언1항)것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조, 일 두 나라의 비정상적 관계 속에서 발생한 유감스러운 문제가 앞으로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확인”(同선언3항)해 가면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2002년 북일평양선언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한국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의 입장에서 일본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고, 장애만 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또한, 강제징용과 징집으로 200만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고통을 당한 한반도의 입장에서는 국가원수가 인정하고 유감을 표명한 것을 물고 늘어지는 모습에 분노를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지적은 ‘정당할 수는 있지만’ ‘현명한 접근’은 아닐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올바르면서도 현명한 접근을 하는 것이다. 200만명이 희생당했든, 10명 혹은 20명이 희생당했든 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부당한 국가 권력의 횡포’에 의해 한 인간의, 한 가족의 삶이 철저히 파괴된 것은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들의 고통을 가능한 조속히 위무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일본 여론의 대세가 이중적 모습-다른 민족의 희생은 제쳐두고 자민족의 희생만 강조하는-을 보인다고 해서 한국의 시민사회 또한 마찬가지로 접근할 수는 없다. 식민, 전쟁, 냉전으로 이어졌던 동북아의 불행했던 역사의 한 장을 넘기는, ‘보편적 준거에 기반 한 연대의 관점’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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