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북.미 고위급회담→남북 동시사찰' 염두에 둔듯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 북한이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에게 제안한 내용이 서서히 드러나는 양상이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6일 '부시 정권에 제공된 마지막 기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북한이 현 교착상태를 타개할 수 있는 "대범하고 획기적인 해결책"을 힐 차관보에게 제시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부시 미 행정부가 "적극 호응한다면 상황 타개의 돌파구가 열려 조선반도(한반도) 정세는 크게 호전될 수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대범하고 획기적인 해결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으나 핵신고 검증 문제는 "단순한 기술실무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북.미 대립은 "핵문제가 본질적으로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전보장에 관한 문제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다"며 "현 시점에서는 조.미(북미)가 적대관계 청산의 이정표를 세워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이는 힐 차관보의 방북 후 북한이 미국에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와 북.미간 고위급 군사회담을 역제의했을 것이라는 관측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조선신보의 보도 내용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들은 또 있다. 바로 ▲지난해 7월 북한이 미국측에 군사회담을 제의했고 ▲핵신고 검증은 비핵화 최종단계에서 6자가 모두 함께 받아야 하는 의무이며 ▲북.미 관계의 현실에 입각한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요구한다고 언급한 것이다.
이를 풀어보면 당초 핵 검증은 비핵화 2단계 조치가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논의돼선 안 되지만 미국이 강력하게 주장하는 만큼 북측은 논의하기로 결단을 하되 대신 미국은 검증이 군사문제임을 인식해 군사회담을 하겠다는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으로 분석된다.
결국 한국전쟁을 치른 교전당사국인 북한과 미국(또는 한국과 중국을 포함)이 종전선언을 해서 군사현안을 논의할 명분을 확보한 뒤 군사회담을 열어 남북 상호사찰 등 현안을 논의하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주목되는 것은 역시 종전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2006년 11월 하노이 한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하는 종전선언을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2007년 10월에 열렸던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종전선언 얘기가 나왔다. 당시는 남북한 정상이 만나는 자리인 만큼 당연히 남북한과 미국이 참여하는 3자 또는 중국이 포함되는 4자 종전선언으로 해석됐다.
남북 정상회담 직후 조선신보는 종전선언과 관련한 기사를 통해 북한의 종전선언 논리를 대변하기도 했다. '북핵 9.19공동성명의 이행이 완료되기 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조지 부시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만나 종전선언을 하면 그 파급효과에 의해 비핵화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의 정세발전이 가속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비핵화 2단계 완료전에 최종단계에서나 논의될 수 있는 핵검증 얘기를 하자면 북.미 최고수뇌부가 참여하는 종전선언을 하고 구체적인 검증 문제는 군사문제를 포괄하는 고위급 군사회담을 통해 해결하자는게 북한측의 주장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6자회담의 틀을 뛰어넘는 것으로도 해석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6자회담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가 두개의 축으로 논의되는 상황, 또는 6자회담이 무력화하는 상황까지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북한의 이런 주장과 논리는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신뢰구축의 수단으로 상정한 참여정부의 이른바 '입구론'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직후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은 국정브리핑에 기고한 `종전선언 누가ㆍ언제ㆍ어떻게..'라는 글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은 신뢰구축이 더 필요한 당사자간에는 본격적인 평화체제 구축에 앞서 선행적 신뢰구축 도구로 상당히 유용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은 종전선언을 평화협정의 핵심 구성요소로 보면서 종전조항을 포함한 평화협정 체결 은 한반도 비핵화가 이뤄지는 마지막 단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출구론'에 서 있다.
조선신보는 6일 보도에서 북한이 이번에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방도를 전하고 이와 관련한 '최후통첩'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 뒤 그럼에도 합의점을 찾지 못할 경우 "조선(북한)이 6자구도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고 강조했다.
결국 미국에 선택을 강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신보의 보도가 힐 차관보가 워싱턴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서 방북 결과를 보고하기 직전에 나온 것도 이런 측면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임기 말에 몰린 부시 행정부가 어떤 결정을 할지는 두고 봐야 겠지만 검증의정서 마련이라는 과제를 넘기 위해 북한의 선택을 우호적으로 고려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럴 경우, 이명박 정부가 북한과 미국이 핵심주체가 될 상황을 인내할 것인가다. 비핵화를 선결과제로 강조하고 있는 현 정부가 비판적인 입장을 고수할 경우 북한과 미국간 신경전은 물론 한국과 미국간에도 미묘한 전선이 형성될 수 있다.
김 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3일 저녁 힐 차관보와의 회동이 끝난 뒤 기자들에게 "한.미 간 외교장관 또는 그 이상인 정상간 협의도 필요하다면 가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조만간 북한의 제의에 대한 의견이 정리되는 대로 북한의 제안내용은 물론 자국의 방침을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던진 '획기적 제안'에 미국은 물론 한국도 초긴장상태에서 후속대응책 마련에 부심하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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