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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북, 516 쿠데타 지지성명 준비했었다

한반도

by DemosJKlee 2009. 10. 16.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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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5.16 쿠데타 당시 성격파악 부심"


연합뉴스 | 입력 2009.10.16 02:33

 

한때 쿠데타 지지성명 준비하기도

(워싱턴=연합뉴스) 고승일 특파원 = 북한은 지난 1961년 남한에서 발생한 5.16 쿠데타의 주도세력과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북한주재 중국대사관과 접촉에 나서는 등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와 한국의 북한대학원대가 수집한 중국의 외교문서를 통해 15일 확인됐다.

 

당시 김일성 수상은 김 일 부수상에게 북한주재 중국대사관과 접촉하도록 지시했으며, 이에 따라 김 일 부수상이 이날 저녁 6시30분 대사관에서 중국측 관계자와 만나 5.16쿠데타와 관련해 정보를 교환했다.

 

김 일 부수상은 완전한 사태파악이 되지 않은 듯 "남한의 쿠데타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지 검토중이며, 쿠데타 지지성명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당시 북한 주재 중국대사가 본국 정부에 보고한 문건에 적혀있다.

 

북한 측이 쿠데타 지지성명을 검토한 이유는 남한내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다면 진보세력이 주도할 것이라는 종전의 정세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김 일 부수상은 그러나 "만약 중국이 중요한 정보를 확보하면 우리에게도 알려달라"고 요청, 남한내 쿠데타 성격에 대한 확실한 판단이 서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이와 관련, 중국측은 외교문서에서 "쿠데타 발생 초기 혁명위원회가 발표한 정치프로그램으로 판단해 볼 때 상당수가 좋지 않은 내용이어서 우리는 애초 미국의 사주에 의한 쿠데타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으나, 유엔사령관 카터 매그루더와 주한 미국 대사대리 마셜 그린이 장 면 정권 지지를 표방하는 것을 보고 남한 군부내 진보세력에 의한 쿠데타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또 중국측은 이같은 판단의 근거로 쿠데타가 ▲육군본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쿠데타 가담자중 일부가 진보성향이었다 ▲박정희 당시 소장이 한때 남로당원이었고, 형이 `혁명활동'으로 살해당했다 ▲과거 남한 군부내 진보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다는 첩보가 있었다는 4가지를 제시했다.

 

중국측은 "이런 이유로 이번 쿠데타에 미 제국주의가 배후에 없을 확률이 90% 된다"고 진단하면서도 "하지만 현 시점에서 쿠데타의 정확한 성격을 판단하기는 매우 힘들다"고 밝혔다.

 

앞서 북한주재 중국대사관이 남한내 정세를 본국에 보고한 같은해 3월 31일자 외교문서에 따르면 "만일 (남한내) 민중의 투쟁이 격화되고 군부내 애국적인 세력이 가세하면 장 면 정권이 전복될 수도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현 시점에서 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진단했다.

 

ks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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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5·16 예견 지지 성명 준비했다”

경향신문 | 워싱턴 | 김진호특파원 | 입력 2009.10.16 00:30

 

ㆍ 박정희 등 진보세력 판단… 쿠데타후 '반공' 내걸자 충격

ㆍ KBS "중 비밀문서 입수"

 

북한은 5·16 쿠데타를 두 달 전에 예견하고 쿠데타 당일 이를 지지하는 성명을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KBS 9시뉴스가 15일 보도했다.

 

그러나 북한은 쿠데타 이틀 뒤 쿠데타 세력이 반공을 국시로 내세운 데 충격을 받고 경제보다 군사력에 집중하는 현 체제로 전환한 것으로 드러났다.

 

KBS가 자체 입수한 중국 비밀외교 문서에 따르면 김일성 당시 북한 수상은 5·16 쿠데타 당일 김일 부수상을 시켜 당시 중국 대사를 만나 쿠데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김 부수상은 이 자리에서 중국에 "조선(북한)은 현재 관련 조처에 대해 연구 중이며 정변 지지와 관련한 성명 발표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이 같은 판단을 내린 근거로 쿠데타가 육군본부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고, 주동자인 박정희 소장을 비롯한 쿠데타 세력이 진보 세력에 속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특히 박정희가 과거 남로당원으로 그의 형(박상희)이 남한 내 혁명에 참여했다 피살됐으며 미국이 쿠데타 배후에 있지 않다는 점 등도 판단의 근거로 꼽았다.

하지만 북한은 쿠데타 이틀 뒤인 5월18일 개최한 노동당 중앙상임위원회 회의에서 쿠데타를 "진보군인의 독자적인 쿠데타에서 미군의 사주를 받은 반동 쿠데타"로 규정한 것으로 회의 자료에서 드러났다. 북한은 또 이 회의에서 국방력 강화에 역량을 모으기로 하면서 1차 7개년 계획 선포를 2년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이 자료를 입수한 미국 우드로 윌슨 센터의 제임스 퍼슨 북한담당 연구원은 "1961년 남한 쿠데타로 북한은 경제중심 정책 추진을 연기해야 한다고 결정했다"면서 이는 쿠데타로 안보 위기를 느껴 군사력 강화가 우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KBS는 우드로 윌슨 센터와 한국의 북한대학원대학교가 공동으로 중국 비밀외교 문서를 발굴했으며, 쿠데타 당일 지지성명을 준비하려 했던 북한 지도부가 초기 정세 판단에 실패한 것임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 워싱턴 | 김진호특파원 jh@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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