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정치에서 연대의 미래로
이준규(평화네트워크 정책실장)/2006년8월21일
두 개의 기억, 기억의 괴리
1945년 8월, 우리는 이 달의 가장 중심에 있는 15일을 군국주의 일본이 패망하고 조국이`빛을 되찾은 날'(光復節)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대다수는 종전일(終戰日)로 기억한다. 그들에게는 패전의 `아픈'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달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일본은 히로시마(8월6일)와 나가사키(8월9일)에 원폭이 투하된 미증유의 인류사적 대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이 달을 기억한다. 인류사 유일무이의 `피폭국'(被爆國) 일본이라는 기억이 오히려 더욱 일반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는 식민 침략의 유산이 남겨 놓은 분단과 전쟁의 가슴 아픈 역사가 일본에 있어서는 전후복구의 결정적 계기였다. 한반도는 전쟁 후 냉전 대결구조의 최전선이 되었지만 일본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고도경제성장이라는 전후 황금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본다면 두 개의 기억에서 느껴진 거리감은 절대 화해할 수 없을 듯 하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까지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나누는 동해의 수심보다 더욱 깊은 심연의 골을 남겨 놓은 근원일 것이다.
헤이와보케, 대포동 쇼크와 납치문제
물론 이러한 기억마저도 이제는 희미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헤이와보케"(平和ボケ: 우리말로 번역하면 평화불감증 정도가 된다)라는 말이 보여주고 있듯이 일본시민들 대다수는 평화, 전쟁, 분쟁 등의 말들에 무감각하다고 한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평화에 대한 소중함과 역사의식이 부족한 것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 부분은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에 관광을 가는 많은 한국인들은 가이드북을 따라 메이지신궁(明治神宮)을 찾는다. 그중 대다수는 일본 근대화의 상징인 메이지(明治)시대가 한반도 자주적 근대화의 좌절과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상에 묻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산소의 중요성을 모르듯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일상에 충격을 던진 것이 북한의 대포동미사일 발사였다(1998년8월31일). 대낮에 일본의 영공을 넘어 태평양 한가운데 떨어진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이 얼마나 큰 정신적 충격을 주었을지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탈냉전을 기해 소련에 의한 ‘북방위협론’이 떠난 자리를 ‘북한위협론’이 급속도로 자리를 채운 것은 이 시기를 전후해서이다. 또한, 2002년 북일정상회담 과정에서 진상이 드러난 일본인 납치문제를 계기로 90년대 이후 급증한 북한정보의 홍수에 '깡패국가'(rogue state)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일본 일반시민들에게 북한은 이해할 수 없는 '그로테스크한 범죄국가‘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이후 일본 뉴스 중 북한관련 보도는 납치문제로 도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자회담에 대한 보도도 그 실내용은 그 테이블에서 납치문제를 어떻게, 얼마나 제기하고 있는가가 중심이다. 작년(2003년) 유니버시아드대회에 북측참가단 관련 보도도 그 초점은 "미녀응원단"에 맞춰져 있었다. "납치", "미녀응원단" 이 두 이미지는 서로 상반된 이미지가 아니라 일맥상통하는 이미지다. 범죄집단과 그 집단에 `속한' 미녀들은 가장 선정적 주제이며, 또한 그 이면에는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체제라는 대북인식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류열풍 속에서 한반도와 일본의 거리가 무척이나 가까워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일본 일반시민들에게 “한국”[kankoku]과 “북조선”[kitachousen]에 대한 이미지는 별개로 존재하고 오히려 정반대의 이미지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 또다른 하나의 실체로 존재하는 “재일”[zainichi]코리안에 대한 이미지까지 더한다면 일본 안에는 한반도에 대한 3개의 ‘서로 다른’ 이미지가 분열증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히로시마에서 경험한 두개의 흐름
다수의 한국인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을 언급하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일본이 가해자로서의 역사를 피해자로서의 역사로 무마하고자 한다는 의혹이다. 이와같은 의혹이 근거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것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것과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는 한국인들의 ‘감정의 과잉’에 기인한 바 크다. 필자가 히로시마에서 경험한 흐름은 두개였다. 하나는 히로시마 자료관 앞 광장의 식전(式典)행사였다. 이것은 총리를 비롯한 ‘유명인사들’이 참가하는 대규모의 공식행사이다. 또다른 하나는 히로시마 원폭돔 주위에서 치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의 집회와 길거리 콘서트였다. 당일 행사는 시위진압경찰들의 포진에 의해 양분되어 있었다.
히로시마 피폭일인 8월6일과 나가사키 피폭일인 8월9일을 전후해서 만들어지는 시민사회의 흐름은 정부의 공식행사와는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도 다른 것이었다. 평화, 반핵, 환경단체들이 주도하는 학술회의와 연설회, 집회는 정부와 보수적 매스미디어들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정부와 보수적 매스미디어들은 피폭의 비참함과 핵무기에 대한 공포를 반복할 뿐이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만들어가고 있는 흐름 속에는 미국의 이라크침략과 그에 동참하는 일본 정부에 대한 강한 비판, 미국추종외교를 추구하면서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뿐만아니라 지속적으로 군비를 증강하고 국제연합과 국제군비통제레짐을 무력화하는데 동조하고 있는 자국 정부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또한, 해외 피폭자에 대해 일본인 피폭자에 상당하는 보상과 지원을 할 것을 요구하는 연대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피폭자연대운동에는 5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되는 한반도출신 피폭자들과 피폭2, 3세 그리고 동남아시아, 유럽, 미국 등지의 피폭자들과의 연대도 포함되어 있다. 이 부분에 있어 일본 시민사회의 양심세력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 내에서는 관심의 대상도 되지 못하고 있던 피폭자들에게 연대의 손을 내민 것은 일본의 시민사회였던 것이다.
총리와 정부, 보수적 매스미디어가 점유하고 있는 ‘공식행사’는 과거의 기억에 대한 국가의 독점에 다름 아니다. 또한, 피폭이라는 기억을 전쟁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회피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국가주도 기억의 정치인 것이다. 이에 대해 시민들이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성찰적 연대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연대 움직임은 국경과 국적을 넘어서고자 애쓰고 있다. 이와같이 경계의 다른 한편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국가가 임의로 그어놓은 경계를 넘어 압박하고 침투해 들어갈 때 국가에 의해 점유되어 버린 역사의 기억을 시민들의 손으로 쥘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 스스로 미래에 대한 비전도 구성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의 정치와 연대의 정치
혹자는 과거의 기억에 얽매여서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은 일본에서만 나오는 목소리가 아니다. 한국의 이른바 ‘지성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한국이 역사문제에 집착하는 것은 미래지향적이지 못한 퇴영적 행동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고방식은 역사를 지나간 과거로 치부해 버리면서도 자신들에게 필요한 기억만을 끊임없이 되새기는 국가(state)와 주류(mainstream) 논리의 자의성(恣意性)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동북아시아에서의 한일 시민사회연대는 국가- 그것이 일본이든, 한국이든 -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되어 버린 역사에 대한 기억을 시민의 손으로 제자리에 위치 지우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서만이 미래지향적이고 평화공존을 위한 연대의 토대가 튼튼하게 갖추어 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역사문제의 해결을 전제로 하는 한일 시민사회연대로 읽혀서는 안된다. 한일 시민사회의 연대는 ‘과거를 교훈으로, 현재에 발을 딛고, 평화와 공존의 미래를 여는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 비핵지대를 건설하기 위한 한일 시민사회의 연대는 바로 이와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일본의 「비핵3원칙」, 한반도의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남북공동선언」, 유엔총회에서 인준된 몽골공화국의 「비핵무기국 지위」, 대만의 핵비무장 상태 등의 현실에 기반해서 동북아시아 비핵지대를 창설하자는 미래의 비전이다. 또한, 식민침략과 피폭, 분단, 전쟁으로 얼룩졌던 한반도와 일본, 동북아시아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 한반도와 일본이 공히 ‘비핵․평화’의 이념을 공유하고 실현해 가는 것이다.
「DMZ」와「Hiroshima」를 연결하는 한일 시민연대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나누는 휴전선과 DMZ는 한반도 뿐만아니라 동북아시아 냉전과 전쟁의 상징이다. 우리는 155마일 휴전선을 걸으면서 제국주의와 미소간의 냉전이 낳은 비극적 유산을 기억하고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낀다. 하루아침에 두개의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었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자폭탄 투하는 인류사에 다시는 있어서는 안될 집단학살(genocide)이었다.
맨하튼 계획(Manhattan Project)-미국의 원자폭탄개발 계획-을 출범시킨 장본인이었던 아인슈타인은 이 참화를 목도한 뒤 여생을 반핵운동에 바쳤으며 죽기직전 영국의 철학자 러셀과 함께 발표한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은 세계 반핵평화운동의 지표가 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한반도와 일본 양국간에 기억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은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이 낳은 이국간주의(二國間主義)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와같은 이국간주의가 초래하고 있는 군사적 긴장과 전쟁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미국 안보우산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증가시킬 뿐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또한, 한반도는 일본에 대해 일본은 한반도에 대해 의혹을 갖는 불신의 악순환도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기회의 창’도 열리고 있다. 핵심은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역사의 교훈을 공유하고 현존하는 가능성의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DMZ」와 「히로시마」를 ‘반핵평화’라는 이념으로 연결하는 시민들에 의한 연대를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삼성․우메바야시히로미치․강정민․이준규 지음, 『동북아시아비핵지대』, (살림출판사, 2005)에 실었던 글임.
올림픽과 중국, 타자의 눈으로 중국을...and 개발독재의 향수 부르는... (0) | 2008.08.27 |
---|---|
국제 핵군축 논의 어디까지 왔나 (0) | 2008.08.22 |
미 국방부, 클러스터 폭탄의 새방침발표, 이용은 속행 (0) | 2008.07.24 |
중국의 한미동맹 겨냥 발언, 결코 우연이 아니다" (0) | 2008.06.02 |
한중정상회담 관련 기사정리 (0) | 2008.05.29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