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문일현 객원해설위원 ·베이징대 박사
중국외교부 대변인의 한미동맹 관련 발언이 길고도 깊은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친강(秦剛)대변인의 발언 핵심은 “한미 군사동맹은 역사적으로 남겨진 산물”로서, “시대가 변하고 동북아 각국 상황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냉전시기의 이른바 군사동맹으로는 역내에 닥친 안보 문제를 처리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달라진 중국 정부의 입장 때마침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방문 당일 터져 나온 탓에 이 발언이 ‘실언’이냐 ‘의도된 결례’냐는 의문이 한국 언론으로부터 제기됐다. 중국외교부는 단호하고 명쾌한 태도로 논란을 잠재웠다. “중국정부의 공식 입장”이자 “중국의 新안보관”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이 점이다. 중국정부의 입장이 과거에 비해 180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중국은 대외적으로 한 국가가 제3국에 어떤 형태로든 자국의 병력을 파견하거나 주둔시키는 것에 반대한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미동맹에 대한 중국정부의 입장은 비교적 우호적이었다. 한미동맹은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과정을 통해 남겨진 산물로서, 중국은 그 특수성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특히 주한미군과 관련, 내부적으로는 ‘전쟁을 억제함으로써 한반도 평화 안정유지라는 순기능적 측면이 있다’는 긍정적 평가를 내려왔던 것도 사실이다.
중국외교부의 두 번째 입장 표명이 있기 전 우리 외교부 관계자가 "군사동맹에 대한 중국측의 일반적 입장을 밝힌 게 아닌가 생각된다"면서 "중국은 동북아에서 한미동맹의 건설적 역할에 대해 일관되게 인정해 왔다"고 해명한 것은 중국정부의 기존 입장에 근거한 판단이었을 것이다.
중국이 주한 미군 주둔 반대로 돌아설 경우 엄청난 외교적 난관에 봉착그런데 당혹스러운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그것도 새 대통령의 첫 중국방문 기간 중 완전히 바뀐 중국의 입장이 발표됐다는 사실이다. 물론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중국의 입장 변경이 몰고 올 수 있는 파장이다.
한미동맹의 핵심은 주한 미군이다. 한미동맹은 냉전시기의 군사동맹으로, 역내 안보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는 곧바로 주한 미군 문제로 연결된다. 이런 논리의 연장선 상에서 중국이 미군의 한국 주둔을 반대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다면 한국 입장에선 엄청난 외교적 난관에 봉착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당장 6자 회담과 연결된 동북아 안보협력체제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에서부터 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핵 문제만큼 비중 있게 다뤄질 사안 또한 주한 미군 문제이다. 그만큼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이다.
그렇다면 중국이 왜 이렇게 돌아섰을까? 중국 내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의 미국 중심 외교정책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고 있다. 이들은 한미동맹 강화를 축으로 한 한-미-일 3국간 협력강화 구도가 중국을 견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과거 북한-소련-중국의 북방3각에 대항해 한국-미국-일본이 남방3각으로 맞섰던 냉전적 외교안보 질서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한미간 21세기 전략동맹 또한 주한미군의 역할을 한반도 이외 지역으로 확장시키고 이 과정에서 한국의 참여 확대를 꾀하겠다는 뜻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 직후 중국정부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제고나 미사일방어(MD) 및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여부 등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물어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뿐만 아니다. 중국 관영 CC-TV는 이명박 대통령의 미일 순방 직후 방송된 결산 특집 프로그램에서 이 대통령의 실용외교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이념이나 체제가 다른 국가들과도 평화공존 교류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이 실용외교라고 한다면 미국과 가치동맹을 강조하는 것과 이 대통령의 실용외교간에 어떤 관계가 있느냐는 문제 제기다.
그러면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들은 동일한 한자 문화권에 유교 문화권, 유구한 교류 협력 등 한-중-일 등 인접국 사이에 존재해 온 동양적 전통적 가치를 중시한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서구적 가치에 중점을 두겠다는 의미일 수 있다”는 중국학자의 견해를 곁들였다.
한국의 국익에 유익한 것 무엇인지 냉정하게 따져봐야물론 주한미군을 핵심으로 한 한미동맹 문제에서 한국과 중국이 추구하는 국익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과 중국이 양국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킨 것은 바로 이러한 사안들을 전략적 사고와 협력을 통해 원만히 해결하자는 정치적 선언이자 약속이다.
지만 현 정부의 외교정책이 중국이 우려하고 있는 것처럼 한미동맹 강화론에 매몰되거나 치우칠 경우 그것이 몰고 올 후유증이 엄청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어떤 길이 4강에 둘러싸인 한국의 국익에 가장 유익한 것인지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할 시점이다.
ihmun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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