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김정운 '국방위지도원'으로 후계수업 시작"
복수 소식통 "`선군정치' 따라 아버지와 다른 코스"
(서울=연합뉴스) 최선영.장용훈 기자 =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지명된 것으로 전해진 셋째 아들 정운이 최근 국방위원회의 말단 직책인 `지도원'으로 후계수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북 소식통은 26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회의가 열리기 며칠전 김정운에게 국방위원회 지도원 직책이 부여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고 다른 대북 소식통도 같은 소식을 전했으나 "정운이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담당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아버지 김 위원장이 노동당에서 후계 코스를 밟았던 것과 달리 정운이 국방위에서 후계 코스를 시작한 것은 김 위원장이 제일국사로 내세우는 `선군정치'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노동당 지도원에서 시작해 당 고위직으로 승진해가다 최고지도자에 오른 것처럼 아들 정운도 앞으로 지도원에 이어 과장, 참사, 국장 등 국방위 고위 직책으로 자연스럽게 승진하는 경로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 위원장은 1964년 김일성종합대학 졸업 후 당 조직지도부 말단 직책인 지도원으로 공직을 시작해 1966년 조직지도부 책임지도원, 1967년 선전선동부 과장을 거쳐 선전선동부 부부장, 부장, 1973년 총비서(김일성) 다음의 당내 실권자인 조직비서 및 선전비서에 임명됐고 이듬해 2월 당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 후계자로 추대됐었다.
김정운이 국방위원회 지도원에 임명된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이번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회의에서 국방위원회의 조직을 확대하고 위상과 역할을 강화한 것이 후계구도 구축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현재 상설기구 시스템을 갖춰가고 있는 국방위원회의 직제는 위원장, 제1부위원장, 부위원장, 위원 외에는 아직까지 노동당만큼 업무분장과 그에 따른 직책이 짜임새있게 갖춰져 있지 않으나 개별 인사에 따라 지도원, 과장, 실장, 참사, 국장 등의 직책이 부여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방위의 지도원은 노동당의 말단 직책인 부원과 같은 위치의 직책이다.
노동당 직책은 `부원→책임부원→부과장→과장→부부장→부장→당비서' 순이며, 원래 노동당의 말단 직책도 지도원이었으나 90년대 중반 '지도'에서 권위주의 냄새가 난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지적에 따라 부원으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운이 국방위원회에서 후계 내정자로서 공식 활동을 시작한 만큼 앞으로 북한은 국방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을 높여가면서 이른바 '선군정치'에 대한 강조도 더욱 강화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군대 문화가 '상명하복'에 기초하고 있는 만큼 선군정치에 대한 강조를 통해 북한 주민들의 '혁명 수뇌부'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는 한편 외부 '적대세력'과 대결을 부각해 김일성-김정일-김정운 세습구도를 중심으로 북한 사회의 단결을 다지는 시도를 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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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9/04/26 10:34 송고
<北 김정일-정운, 같은 세습 다른 코스>
'김정운 후계체제' 전도에 미칠 파장 주목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장용훈 기자 =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그의 셋째 아들 모두 절대 권력자인 부친의 권력을 세습했거나 할 예정이지만, 그 코스는 확연히 달라 이것이 '김정운 후계체제'의 권력구도와 성격, 견고성 등 앞으로 예상되는 '김정운 정권'의 전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위원장은 '왕자'로서 노동당 지도원(현재의 부원)으로 첫 공직을 시작했으나, 정운은 '왕세자'로서 국방위 지도원 직책을 부여받았다.
김 위원장이 1964년 김일성종합대학 졸업 후 당 조직지도부에 들어간 것은 후계자 신분으로서 후계 수업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김일성 주석의 아들에 대한 예우로서 공직을 받은 것이다. 김 위원장이 노동당 지도원으로 공직을 시작할 때만 해도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누가 될지는 아무도 예상하기 어려웠다. 당시는 김일성 주석의 동생이자 김정일 위원장의 삼촌인 김영주 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이 당 조직지도부장으로서 사실상 2인자로 군림할 때였다. 특히 후계자리를 두고 김 위원장과 권력투쟁을 벌였던 이복 동생 김평일 현 폴란드 대사의 생모이자 김 주석의 두번째 부인 김성애의 파워가 부상하던 시점이었다.
지난 1월 북한 노동당 당역사연구소가 펴낸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선군혁명사'라는 책도 김 위원장의 후계준비 기간을 1964년으로 잡지 않고 1969년1월부터라고 구분했고, 북한의 온라인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도 지난 2일 '선군정치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김일성 주석이 김정일 위원장을 후계자로 낙점한 시점이 1960년대 말이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왕자'로서 부여받은 직책을 이용해 김일성 주석과 항일빨치산에 대한 우상화 작업을 중심으로 후계자로서 능력과 자질을 증명함으로써 라이벌이었던 삼촌, 계모와 이복동생들을 모두 제치고 김 주석의 인정을 받아 당 전원회의에서 후계자로 추대되는 코스를 밟았다. 반면 정운은 공적 활동이 전무하고 공직 직책이 없던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당 조직지도부 리제강 제1부부장에게 정운을 후계자로 결정했다는 `교시'를 하달하는 형식을 통해 후계자로 내정됐고, 후계 내정자로서 직책을 정식으로 부여받아 활동을 시작했다.
대북 소식통은 "김 위원장은 후계자로 내정되기 이전에 당의 말단 직책에 들어가 일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아 공식 회의에서 후계자로 추대되는 과정을 거쳤다면, 정운은 현장 업무 경력이 전무한 상태에서 아버지가 먼저 비공개리에 후계자로 내정해 놓은 뒤 후계자 직책을 받아 후계수업으로 사회 첫 생활을 시작했다는 측면에서 확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결국 김 위원장은 노동당의 밑바닥에서부터 자신의 지지기반을 구축.확대하면서 후계자에 오름으로써 김일성 주석의 후광 외에도 이것이 나중에 그의 절대권력을 뒷받침하는 토양이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직 및 정치활동 경력이 전무한 정운은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을 중심으로 한 국방위원회의 후견을 받으면서 후계구도를 다져나갈 것으로 보임에 따라 그가 권력을 세습하더라도 후견그룹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클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버지에 비해 단축코스를 밟은 정운의 후계자 내정과 수업 과정은 속성으로 이뤄지는 만큼 그 권력의 독자적 기반이 아버지처럼 단단할 수 없고, 이는 김정운 후계체제가 1인지배 형태를 취하더라도 내부적으론 아버지정도의 절대권력을 행사하기 어려워 집단적 성격이 강해질 가능성을 말해준다.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일 위원장조차 북한 권부와 일반 주민 사이에서 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같은 '수령'의 위상을 확보하지 못한 채 김일성 주석의 후광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점을 들어 김정운의 3대 세습권력의 견고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들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스스로 빛을 발하는 '항성'이 아니라 김일성 주석이라는 항성의 빛을 받아야 밝아지는 '행성'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 스스로 김일성 주석의 생일을 '태양절'이라고 부르는 등 김 주석이 '태양'으로 불리는 것은 시사점이 크다.
결국 3대 권력자 김정운도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권력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선 김정일이라는 행성이 아니라 김일성이라는 항성의 빛을 받아야 하는데 김일성 주석의 후광이라 하더라도 손자 대에까지 미치자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김정일 위원장이 선군정치를 내세워 국방위원회를 강화하고 후계체제도 군대를 기반으로 한 국방위 중심으로 구축해 나가려는 배경의 하나로 분석된다.
노동당이 아닌 국방위를 통해 구축된 '김정운 후계체제'는 어느 때보다 군사체제적 성격이 강해질 가능성을 예고한다. 북한 사회에선 노동당이 여전히 최고 영도기관이긴 하지만 북한체제의 골격과 근육과 신경망으로서 노동당은 1970년대 전성기를 지나 1980년 6차 당대회 이후엔 30년가까이 당대회도 열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진 상태에서 그 빈 공간을 군대와 군부가 메우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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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9/04/26 13:11 송고
北김정운 후계 '업적쌓기' 본격 시동(종합)
연합뉴스 | 입력 2009.05.11 16:22 | 수정 2009.05.11 16:24
'150일 전투', 김일성생일 행사, 5.1절 행사 주도
김정일위원장 공개활동 줄곧 수행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장용훈 기자 =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내정된 삼남 정운(25)이 새로 시작된 '150일 전투'를 주도하는 등 후계자로서 업적쌓기에 본격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김정운은 지난 1월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위성관제종합지휘소'에서 장거리 로켓 발사 관찰을 포함해 김 위원장의 각종 공개활동에 빠짐없이 수행, 후계자로서 "수령을 보좌하고 받드는 혁명 활동" 행보를 이어가면서 미래에 내세우기 위한 구체적인 '업적쌓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통한 소식통들은 북한이 `2012년 강성대국 달성'을 위해 이달부터 시작한 새로운 속도전인 '150일전투'와 전례없이 성대하게 치른 5.1절(국제노동절) 기념행사와 고 김일성 주석의 97회 생일기념 `축포야회'가 김정운의 '작품'이라고 전했다.
김정운이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시절과 달리 후계자로서 업적이 전무한 점을 의식, 김 위원장에 대한 충성심을 과시하고 후계업적을 쌓기 위해 이러한 대중동원 운동과 행사들을 직접 기획하고 지휘했다는 것. 특히 `150일전투'는 김정일 위원장이 1974년 2월 김 주석의 후계자로 추대된 직후 경제부문 업적 쌓기 차원에서 발기하고 지휘했던 '70일 전투(1974.10.21∼12.29)'의 복사판이다.
김 위원장은 후계자로 추대된 1974년, 세계적인 제1차 석유파동 속에 북한의 인민경제계획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그에 따라 이듬해 노동당 창당 30주년 기념일까지 끝내야 할 6개년계획 전체가 목표에 미달할 것이 예상되자 70일전투를 직접 발기하고 이끌어 경제계획을 완수했다고 북한 언론은 선전하고 있다.
김정운 역시 김정일 위원장이 2012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기 위해서는 올해가 고비라며 아픈 몸으로 작년 12월말 천리마강선제강연합기업소 방문을 계기로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를 내세워 경제부문 시찰을 대폭 늘리고 있는 상황에서 `150일 전투'를 발기함으로써 김 위원장의 `70일 전투'를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셈이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 5일 '투쟁과 전진의 열풍으로 전환의 돌파구를!'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김 위원장의 70년대 '70일 전투'와 '100일전투' 및 80년대 '200일전투'를 회고하면서 150일 전투에 대해 "우리 당 역사에 특기할 사변으로 길이 아로 새겨지게 될 것"이라고 '사변'으로 규정한 데서도 이 속도전의 배경을 엿볼 수 있다.
북한이 5.1절날 북한 전역에서 금속공업과 연관부문의 노동자 1만5천여명을 평양에 불러들여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국가공훈합창단 공연을 관람케 하고 축포야회를 비롯해 다양한 경축공연을 관람토록 성대한 행사를 기획.조직한 것도 김정운이라고 대북 소식통들은 전했다.
정운은 김정일 위원장이 올해 천리마제강 등 금속공업과 연관부문에 주력하는 점에 착안, 이러한 행사를 만들었다는 것.
북한에서 김일성 유일지배체제가 시작된 1970년대 이래 김일성.김정일 생일행사나 노동당 창당 및 정권 수립 기념일 등에 밀려 한번도 크게 치른 적 없는 5.1절 기념행사가 '꺾어지는 해'도 아닌 올해 이처럼 성대하게 열린 것은 김정운이 주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소식통들은 설명했다.
고 김일성 주석의 97회 생일(4월15일)을 하루 앞두고 역시 '꺾어지는 해'가 아님에도 '강성대국의 불보라'라는 이름으로 김 위원장도 참석한 가운데 처음으로 열린 축포야회도 김정운이 중국, 대만 등에서 여는 춘제 불꽃축제를 본떠 아이디어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비공식 대변하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가 나흘 뒤 이 축포야회를 "국방위원회가 마련했다"고 보도했는데, 김정운이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회의(4월9일) 직전 국방위원회 지도원에 임명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정운은 실제론 지난 1월8일 후계자로 내정한 직후 축포야회 아이디어를 내고 치밀하게 준비, 김 정일 위원장의 생일인 2월16일 그 앞에서 시험발사를 선보여 김 위원장을 크게 감동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북한 노동신문(4.17)도 김 위원장이 "2개월전의 추운 겨울날밤 새로운 축포의 시험발사를 보아주시면서"라고 시험발사 사실을 밝혔다. 5.1절 축포행사는 오랫동안 방치됐다가 최근 공사를 다시 시작한 105층 류경호텔에 축포를 매달아 벌였는데 김정운이 대만 춘제 때 고층빌딩에서 실시하는 축포행사를 보고 류경호텔을 이용하는 아이디어를 냈다는 후문이다. 조선신보도 11일 '메아리'코너에서 "평양의 밤하늘을 불보라로 장식한 축포가 5.1절에는 초고층 건물에서 눈부시게 폭발하여 평양을 불의 절경으로 만들었다"며 "높이가 300m를 넘는 웅장한 건물이 온통 발사대가 돼 장쾌한 불의 폭포를 터쳤으니 장관이였다. 보통강반의 초고층건물. 일명 '105층호텔'이라고 불리우던 류경호텔"이라고 밝혀 류경호텔이 축포발사에 활용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번에 사용된 축포는 김 위원장 서기실이 수백만 달러의 자금을 제공해 중국에서 대량 구입한 것이지만,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 대한 강연에서 북한 군수공장에서 자체 개발한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당국은 아직은 정운의 후계자 내정과 활동을 주민들에게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후계자 내정을 주민들에게 공개할 경우 이같은 활동들을 업적 선전에 적극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특히 이미 사회과학자들을 선발해 정운의 어린 시절을 "혁명가의 유년시절"로 미화하기 위한 작업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문가는 "정치적 욕망이 큰 정운이 김정일 위원장과 달리 업적이 전무한 상태에서 후계자가 된 콤플렉스 때문에 앞으로도 150일 전투나 5.1절행사 같은 치적쌓기에 열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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